[이야기 그림 74] 언니

 
동네 언니랑 택시를 탔다. 언니가 택시에 타자마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 언니의 직업은 간호 통합 병동의 간호조무사다. 고된 업무 탓에 어디서든 머리가 닿으면 잠든다. 
 
그런 와중에도 잠깐 깨어 “어머 저 강으로 흘러가는 작은 개천 이름이 뭐예요?” 택시 기사님께 묻는다. 
 
커다란 강의 이름보다 보일락 말락 한 실개천 이름이 궁금한 언니. 보이지 않는 슬픔을 헤아리는 사람이다. 하루는 병원에서 환자들의 침대 가림막 커튼을 모두 젖히고 기저귀를 갈려고 하자, 언니가 환자들에게 다가가 한 명씩 커튼을 닫고 작은 목소리로 “불편하셨죠? 이제 곧 기저귀 갈아드릴게요.” 했단다.
 
그랬더니 고령 환자들의 입가에 웃음이 스쳤단다. 사실 언니의 방식은 다른 간호조무사를 힘들게 하는 번거로운 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요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나의 순임 씨가 생각나 고마웠다. 
 
순임 씨는 나의 할머니다. 무려 10년이란 시간을 요양원에서 보내고 사랑하던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옥춘당』이란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제사상에서 볼 수 있던 크고 예뻤던 사탕 옥춘당. 할아버지가 제사를 끝나면 할머니 입에 넣어주던 사탕이다. 먼저 떠난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동그라미만 그리시던 할머니. 이제 두 분 다 내 곁을 떠나셨다.
 
사람들은 노년의 시간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정지된 상태라고만 여기기 쉽다. 하지만 그들도 수치와 모멸을 알고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얼마 전 세대 공감을 표현한 전시에 다녀왔다. 치매란 단어가 한자로 풀이하면 ‘어리석고 어리석다’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이 차별의 단어를 아무 저항도 없이 쓰고 있었다. 노년의 시간에 대한 존중이 없었던 거다. 
 
“언니, 나는 겨울나무가 좋아요.
푸르고 알록달록한 나무도 예쁘고 좋지만
잎사귀도 꽃도 열매도 없는데, 나무다운 겨울나무가 좋아요.  
그치, 언니야.”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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