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의 시 낙엽서(落葉書) [볕뉘읽기 107]

도심 광장에서 4대강 사업 반대 시를 읽는데
낙엽들이 날아온다
비 뿌리는 데로, 우레도 치는 저녁.

목소리 높여 시를 읽는데 낙엽들이 날아와
중앙파출소 앞 작은 광장을 기웃댄다.
천막 안 날아들어 행사용 음향 기기를 긁어댄다.

근방에 선 나무들이 바람 우체부 편에 보낸
응원 메시지 담긴 엽서들일까?
그렇다면, 저것들이야말로 늘 가장 읽을 만한 것.

그래, 한 데 시 읽는 곳으로 작지만, 아름답게 잘 물든
자연의 위문편지들이 온다.
제 뿌리 덮듯
우리 언 발들 덮어주러 온다.

- 시집 『연애 間』(문학과지성사, 2015) 중에서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프랑스의 시인 랭보는 노래했는데, 낙엽이야말로 ‘상처 입은 영혼’의 모양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인 듯합니다. 울긋불긋한 그 색깔을 아름답다고만 받아들이면 아름다움의 절실함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을 빚어낸 상처의 영혼으로서 그것은 자연을 훼손한 인간들을 일깨우러 지상에 내려오기도 합니다. ‘비 뿌리는 데로, 우레도 치는 저녁’ 날씨는 상처를 만들어내는 환경을 환기시켜줍니다. 자연에게 가혹한 시련을 안겨준 ‘4대강 사업’의 증인으로서 낙엽도 4대강 사업 반대 시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낙엽들이 날아와/중앙파출소앞 작은 광장을 기웃댄다’는 표현 속에서 그런 자세를 읽어낼 수가 있습니다. ‘행사용 음향 기기를 긁어댄다’니 낙엽들도 할 말이 많은 듯합니다. 시련의 전문가답게 말입니다. 낙엽의 참여가 든든해서 이하석 시인은 ‘저것들이야말로 가장 읽을 만한 것’이라고 인정해줍니다. 그런데 이 발언 속에는 중요한 다른 뜻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뜻은 바로 낙엽이 단지 상처 입은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뜻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아름다움’입니다. 낙엽은 상처를 입어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상처가 존재의 탄생과 소멸의 이치를 수락함으로써 숙성된 자취이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는 소멸의 이치를 수락하지 않으려는, 그리하여 더 큰 소멸의 상처를 스스로 불러일으키는 문명의 개발 욕구를 부질없다 꾸짖는 한편으로 그 개발 욕구 때문에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로해주는 따사로운 아름다움입니다. 자연의 품에서 살아가는 이치를 배우라고 우리를 이끌어주는 ‘자연의 위문편지들이’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마음을 낮추라고, 다른 존재를 살리기 위하여 스스로 밑거름이 되는 이치야말로 따사로운 손길이라고 낙엽이 이 계절에 ‘우리 언 발들 덮어주러’ 옵니다.

 

글 이경호 문화평론가, 상처학교의 시인 저자 leekh724@hanmail.net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