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봄, 갈림길에서

 
고위도 북반구 국가일수록 동절기 사망률이 높아집니다. 11월에서 3월 사이에 더 많은 이들이 죽는 것이죠(RGA 2017). 춥고 건조할 때 인플루엔자가 유행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파 그 자체가 건강에 치명적이기도 한 탓이랍니다. 물론 혹서기에도 죽음은 늘어납니다. 2003년 유럽 폭염으로 서유럽에서만 2만 명 이상의 초과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보고(Bruncker 2005)도 있으니까요. 육체적 건강에 타격을 주는 건 그러니까 여름 아니면 겨울인 것이죠. 그렇다면 정신적 건강에 타격을 주는 건 어떤 계절일까요? 
 
크리스토스 크리스토둘루(C. Christodoulou) 등의 연구(『Suicide and seasonality』 2011)에 따르면 ‘봄과 초여름’이 ‘자살의 계절’입니다. 혹한과 혹서 때문에 건강을 해쳐 사망률이 높아지는 건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만물생동’의 계절로 불리는 봄과 초여름에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건 어떤 이유일까 알 수 없습니다. 죽은 이들 모두의 개별적 죽음의 사유는 알기 어렵지만 그들 모두가 처했던 죽음에 이르는 마음의 구조는 우리 모두 추정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사람이란 역경을 당하면 힘을 다해 싸우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막상 역경을 극복하는 그 순간에 허탈해지는 존재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내가 이겨낸 이 혹한기는 내가 살아있는 한 되풀이 될 거야. 살아있는 내내 이토록 힘든 시간과 계속 만나야 한다고?’ 힘겹게 이겨낸 고통이 반복될 거라는 두려움, 내가 애써 이겨낸 이 싸움은 그래서 의미 없는 일이라는 오해, 그것이 우리에게 삶의 의지, 삶의 희망을 빼앗아 가는 마음의 구조입니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있습니다. 2020년 12월 코로나 세계 대유행 이후 급증한 우울증 환자의 병증을 이르는 말입니다. 마음의 감기쯤으로 가벼이 여겨지는 우울증은 사실 감기가 아니라 더 위험한 독감(인플루엔자)입니다. 코로나는 육체적 질환도 부르지만 우리에게 비접촉과 격리를 강요해 마음의 거리 또한 멀어지게 합니다. 모두가 코로나의 감염 위험에 처한 지금, 우리는 모두 코로나 블루의 잠재적 환자군입니다.
 
접촉이 전제된 소통을 근거로 한 우리의 경제는 코로나 전염 위험을 피해 만남 없는 온라인 경제로 대대적인 전환을 이뤘습니다. 이 전환이 감염률을 떨어뜨렸지만 경제 그 자체의 활력과 경제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던 인간관계를 축소시킨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전염시대의 3중고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전염에 대한 두려움, 고립된 정신의 탈력감, 그리고 점점 말라가는 지갑이 그것입니다. 몸도, 맘도, 우리를 먹여 살릴 경제도 ‘힘들다!’ 그리고 이 고통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인식은 봄의 자살자들이 앓던 마음의 병과 가까운 거리에 자리합니다. ‘이 혹한기는 내가 살아있는 한 계속될 거야!’
 
나만 특별히 더 힘든 건 아니라는 사실은 이성적인 판단이지만 우리는 지금 이성적인 판단이 작동하는 시절을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봄날에도 생명을 포기하는 이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BBC뉴스(2021.2.18.)는 일본에서 11년 만에 자살률이 다시 증가했으며 특히 여성 자살률이 15% 가까이 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코로나 블루의 확산, 경제적 위기, 가족과 이웃에 의한 돌봄 관계의 사회적 축소가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죽음을 부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세계적으로는 일본도 우수 코로나 방역국의 하나입니다. 그런 사회에서조차 자살률 증가가 심각하다면 우리 사회 또한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일 건 분명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코로나 이전에도 심각한 자살률을 보이던 국가였습니다. 
 
<생명존중시민회의>가 지난 3월 15일 발표한 ‘2021 자살대책 팩트시트’를 보면, 2018~2019년 사이 우리나라 자살률은 2년 연속 증가해 2017년 대비 11% 가까이 증가했고 특히 경제생활이 어려워 자살한 사람이 15% 가까이 늘었다고 합니다. 한편 통계청이 분석한 2019년 자살원인통계에 따르면 10~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었고 40~50대에서도 2위였습니다. 코로나 이전 시기를 분석 대상으로 했던 조사입니다. 그리고 코로나 감염이 본격화된 2020년을 보냈습니다. 날로 삶의 조건은 더욱 열악해졌습니다. 2021년 봄,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여전히 미래는 낙관하기 힘듭니다. 
 
어려워진 경제가 기존의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전염의 두려움으로 멀어진 마음의 거리가 이웃을 돌보기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살자들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초록이 ‘뿜뿜’한 이 봄을 죽음의 계절로부터 건져내는 일이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나 정치검사의 대권 대망론이나 가덕도 공항, 제주도 신공항 건설 같은 개발의제보다 중요한 사회의제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자살의 유혹에서 건지는 일이 우리 사회의 핵심의제가 돼야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최소한의 경제소득도 얻지 못하는 약자들을 구하는 기본소득 지급이 경기도뿐 아니라 전국으로 확대돼야 합니다. 10.7%를 기록한, 21년 만에 가장 높은 청년실업률(2020년 통계청)을 낮추기 위한 공적 자원의 확대도 필요합니다. 가족·유아·청년·고령자·여성·장애인·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 ‘돌봄 서비스’에 대한 사회경제적 인정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박차를 가해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마땅히 유가 보상을 받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경제적 어려움’을 자살충동의 1위 원인(통계청 2020 사회조사)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발 경제위기에서 경제만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함께 구하자는 제안을 사회적 의제로 세우고 정책이 수용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당신은 어떤 의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의제를 어떤 순서로 세우고 실천해야 우리가 코로나가 불러온 이 거대한 우울증에서 우리를 지킬 최소한의 방파제를 건설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살 수 있을까?’ 언제 우리가 그런 두려운 마음 하나 없이 만나 차와 술을 나누고 음식과 담소를 즐기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가 지금의 고통으로 채워질 거라고 비관하지 않아도 될 ‘희망의 증거’, 이렇게 세상을 바꾸어 나가면 반드시 고통의 연대를 통과해 나갈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희망의 증거’를 지금, 우리가, 여기서 만들어야 합니다. 2021 봄, 달콤하고 편리하며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자발적 죽음과 지금부터 오래도록 수고로울 희망의 갈림길에서 당신에게 요청합니다, ‘달콤한 죽음보다 수고로운 삶을 위해 분투하자’고. ‘희망의 의제를 발굴하고 사회화시키자’고 당신이 먼저 목소리를 내달라 호소합니다. 당신이 그래 줄 거라고 믿습니다. 당신도 내가 그리 할 거라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이 또한 우리가 만들어갈 ‘희망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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