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1] 매향리는 지금도 전쟁중

매향리는 지금도 전쟁중

 
11월 17일 오전 11시 30분 경. 전세버스 8대에 나누어 타고 온 300여 명의 사람들이 대법원 정문 앞에 모여들었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이들은 누가 보아도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임을 금새 알 수 있었다. 마침 이날은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 될 거라는 예보가 있던 터였다. 그 추운 날 멀리 서울까지, 그것도 대법원 앞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정도 대열이 갖춰지자 주민들은 “원통하다 늑장 판결” “살아생전 확정하라”는 대형 구호 피켓과 함께 160명의 사망자 명단이 빼곡히 적힌 근조피켓을 앞세우고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소음 피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늦어지면서 그 사이 벌써 160명의 주민들이 사망했다는, 기막히고도 원통한 사연의 주인공은 바로 매향리 주민들이었다.
 

2000년 6월, 매향리 대투쟁 그 후

 
매향리. 한동안 많이 잊고 있었던 이름이다. ‘매향리’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된 건 지난 2000년 5월 있었던 미군 전폭기의 오폭사고를 통해서다. 미공군 소속 A-10 전폭기 한대가 매향리 쿠니 사격장에 500파운드짜리 포탄 6발을 투하해 그 충격으로 인근마을 170여 채의 농가 유리창이 파손되고, 벽에 균열이 생기는가 하면, 폭발음에 놀란 마을 주민이 대피 중 넘어져 경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한미 당국은 합동조사 결과 아무런 피해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뺌하면서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매향리 주민들과 청년학생,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해 눈물겨운 투쟁을 벌였고, 결국 육상기총사격을 중단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매향리에 폭격장이 조성된 지 반세기만에 얻어낸 쾌거였다. 각 언론사들도 이를 대서 특필했고, 이제 매향리에서 폭격연습이 완전 중단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육상사격장은 그대로, 계속되는 해상폭격

 
매향리 주민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육상사격 중단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사격만 중단되었을 뿐이지 육상사격장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당시 투쟁 때문인지 육상사격장을 둘러싼 철조망은 오히려 전보다 2중, 3중으로 견고해졌다. 또한, 국방부는 2002년 4월 29일 미군 측으로부터 육상사격장 부지 일부인 31만9455평방미터(약 9만6천평)의 토지를 반환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를 주민들에게 돌려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육상사격장 부지는 본래 군사정권 시절 매향리 주민들로부터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헐값에 강제 징발한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고향 땅을 떠날 수 없어, 국방부에 임대료를 내면서 폭격연습이 없는 때에 한해서나마 농사를 지어왔다. 자기 땅에 돈을 내고 들어가 농사를 지어야 하니 정말 기막힐 일이다.
 
매향리 주민들이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무엇보다 농섬을 표적으로 한 해상에서의 폭격연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이 설정한 폭탄 투하 위험지역은 농섬에서 반경 2400미터이다. 그에 비해 농섬에서 마을 민가와의 거리는 불과 1500미터. 그러다 보니 주민들은 지금도 계속되는 오폭사고의 불안과 극심한 소음피해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반세기 넘게 살아왔건만 지금껏 단 한번도 피해 사실조차 객관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주민들이 이번 소음피해 소송에 거는 기대가 큰 건 당연하다.
 

국가안보가 주민 생존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


주민들이 처음 국가를 상대로 소음피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건 1998년 2월의 일이다. 주민대표 15인이 국가를 상대로 소음피해에 대한 위자료 성격으로 1인당 1천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청구한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이 같은 판례가 없다보니 재판은 공연히 길어지기만 할뿐이었다. 그러다 2000년 오폭사고를 계기로 매향리 문제가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면서 소송도 진전이 있게 되었다. 결국 2001년 4월 재판부는 “사격장 소음으로 인해 발생한 주민들의 피해는 사격장의 공공성을 감안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며 “주민 14명(소송 중 1명 사망)에 대해 1인당 900만원에서 1천만원까지 총 1억32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어서 2002년 1월 항소심에서도 1심과 같이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은 손해배상 청구 시효상 배상기간을 소송이 제기된 1998년 2월부터 3년 전의 피해에 대해서만 국한하고 있는 점 등에서 반세기 넘게 지속된 주민들의 희생과 고통의 피해 보상이라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국가안보가 주민의 생존권보다 우선할 순 없다”고 판시함으로써 그 동안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국가폭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후 매향리 주민대책위에서는 원고인단을 확대 모집해 현재 2356명의 주민들이 추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놓은 상태다.
 

주민들이 모두 죽어야 확정판결을 내릴 것인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연이어 승소판결을 받은 기쁨도 잠시, 피고 대한민국은 “주민들에 대한 피해와 배상은 인정하지만 배상금이 너무 많다”며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그러나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지연되면서 주민들의 분노와 원성도 날로 높아만 가고 있다.

주민대표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추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선례가 될 수밖에 없다는점에서 하루빨리 확정판결을 내리는 것이 시급하다. 그럼에도 대법원 확정판결이 벌써 2년 가까이 지연되면서 전체 소송 진행이 답보상태에 있다. 그 가운데 확정판결도 보지 못한 채 사망하는 주민들도 늘어만 가고 있다.

주민대책위에 따르면, 1998년 2월 처음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한 이래 지금까지 160여명의 주민들이 사망했다. 그 중 항소심 판결 이후 지금까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다 사망한 주민만도 60여명이나 된다. 앞으로 확정판결이 지연되어 갈수록 또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사망할지 모르는 일이다. 원고인단 다수가 연로한 노인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결코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이에 매향리 주민들은 “주민들이 모두 사망하면 확정 판결을 내릴 것이냐”며 대법원 앞에서 확정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탄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어 손해배상을 받는다 해도 그것으로 반세기 넘게 계속돼온 미군 폭격으로 인한 고통을 보상받진 못할 것이다. 사실 그것은 결코 돈으로는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매향리 주민들에게 이번 소송이 갖는 의미는 자못 크다. 소음피해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다는 것만으로도 그 동안 폭격연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온 오랜 피해와 고통의 실체를 비로소 인정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만규 주민대책위 위원장은 “우리도 사람임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소감을 피력한 바 있다.
 

매향리 폭격장을 주민들의 품으로


대법원은 하루빨리 확정 판결을 내리고, 주민들이 국가로부터 응당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앞으로 더 이상 이러한 피해가 계속되지 않도록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앞서 살펴보았듯 육상사격 중단만으로는 주민들의 피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해상에서의 폭격 등 모든 폭격연습이 중단되고, 사격장을 전면 반환 받을 때만이 그 오랜 고통의 세월도 끊어질 것이다. 그러나 매향리 폭격장은 연합토지관리계획(LPP) 등 최근 미국 주도로 빠르게 진행중인 주한미군 재편계획에서조차 아예 배제되어 있다. 애당초 미국은 한국민들의 고통과 눈물엔 관심조차 없었다. 오로지 미국의 이해와 군사전략에 따라 전세계 미군 재배치 과정의 일환으로 미군기지 재배치 등 주한미군의 대대적인 재편작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주한미군도 미국의 대 테러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전세계 분쟁지역에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신속대응군 형태로 재편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매향리 폭격장도 이제 대북 전쟁연습을 넘어 전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미국의 침략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전쟁연습장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왜 매향리 주민들이 미국의 침략전쟁의 희생자가 되어야 하는가.

주한미군은 재편되어야 한다. 주한미군 주둔 반세기가 넘어오는 가운데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무조건 미국의 의도에 따라 끌려가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 자주적 견지에서 한국민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매향리 등 미군기지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어온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담겨져야 한다. 그럴때만이 그들의 오랜 고통도, 그리고 그러한 고통이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전가되는 일도 없을 것 이기 때문이다.

이소희 us@usacrime.or.kr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

 

매향리 주요 일지

 
1998. 2. 27. 주민대표 전만규 외 14인 국가 상대로 폭격소음 피해배상 소송 제기
2000. 5. 8. 매향리 오폭사고 발생
2000. 6. 1. 한미합동조사단, ‘오폭사건으로 인한 피해사례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발표함과 동시에 사고 후 일시 중단했던 폭격 재개
2000. 6. 3. 사격신호 깃발을 찢은 전만규 매향리 주민대책위원장을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2000. 6. 6. 매향리 미공군 국제폭격장 폐쇄를 위한 1차 범국민대회
2000. 6. 20. 최종수 신부를 비롯한 대학생 등 12명 농섬 점거
2000. 8. 18. 국방부, 육상 기총사격 중지 발표
2001. 4. 11. 소음피해 소송 1심 재판에서 주민대표 전만규 외 13인에 대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
2001. 8. 13. 주민 2222명 국가를 상대로 추가로 손해배상 소송 제기(이후 134명 추가, 현재 원고인단 총 2356명)
2002. 1. 9. 주민대표 전만규 외 13인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
2002. 2. 7. 피고 대한민국 대법원에 상소, 현재 대법원 계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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