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국가배상책임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 지 3년이 되는 2014년 9월 4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은 서울역 앞에 가습기살균제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의 기일과 유품을 전시하고 진실규명을 요구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이 글에서는 제1심 국가배상소송 판결이 나온 세퓨의 PGH의 유해성 심사와 관련해 국가의 법적 책임을 따져보고 있다. 옥시가 사용한 PHMG와 관련한 국가의 책임과 관련해서도 이 글에서 제시된 논리들이 기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필자주
 
2015년 1월 29일 법원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유해화학물질로부터 국민의 생명 "신체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게을리 하였다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가습기살균제를 유해물질로 지정해 관리하지 않은 데 주의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법원은 특히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PGH에 대한 정부의 “유해성 심사결과(급성경구독성이 낮고 피부와 눈에 자극성 및 부식성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물질도 아니며 돌연변이 유발 물질도 아니어서 유독물 또는 관찰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당시 관련 법령에 따른 판정으로 어떠한 주의의무의 해태도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법원의 판단에 의문이 생긴다. PGH의 사용 용도에 비추어 본다면 유해성 심사는 경구독성보다 ‘흡입독성’에 초점이 맞춰졌어야 한다. 그런데 2003년 유해성 심사는 경구독성 시험성적자료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법원의 판단처럼 유해화학물질관리법(유해성 심사의 근거법률)에 따른 ‘하자 없는’ 심사였을까 하는 점이다. 아는 것처럼 가습기살균제 사건 발생 이후 이루어진 경구·피부·흡입·어류 독성실험에서는 모두 유해한 것으로 나타나 환경부는 2013년 8월 5일 PGH를 유독물로 지정·고시한 바 있다(여기서, 2003년 흡입독성 실험자료가 제출됐더라면 유해성 심사 결과가 달라졌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한편, 2003년 유해성 심사결과는 어디까지나 PGH의 ‘경구’독성이 낮다는 판정이었다. 그렇다면 이 성분물질을 흡입 노출 형태로 사용하려는 경우 다시 흡입독성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화학물질은 노출 방식에 따라 독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독성학의 기본상식이다. 아래에서 이 두 가지 의문을 풀어보면서 국가의 책임을 따져보고자 한다. 
 

반드시 제출됐어야 하는 흡입독성 시험성적서

 
2003년 유해성 심사는 아무 하자 없는 심사였을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2003년 시행 중이었던 유해화학물질관리법령을 검토해야 한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르면 화학물질을 제조 또는 수입하고자 하는 자는 미리 환경부장관의 유해성심사를 받아야 한다. 환경부장관에게 유해성 심사를 신청하는 때에는 당해 화학물질의 독성·분해성 등에 관하여 시험성적서를 제출하여야 한다(제7조). 이때 환경부장관은 유해성심사를 신청한 자에 유해성심사에 필요한 서류 기타 관계 자료의 제출을 요청하거나 명할 수 있다(제8조). 같은 법 시행규칙은 제출해야 하는 자료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1. 주요용도, 녹는점·끓는점·증기압·용해도 및 옥탄올물분배계수 등의 물리·화학적 성질에 관한 자료
2. 급성독성·유전독성 및 분해성에 관한 시험성적서
3. 환경에 배출되는 주요경로 및 예상배출량에 관한 자료(제2조)
 
국립환경연구원장은 위 규정에 따라 제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유해성심사를 한다. 유해성 심사 결과 당해 화학물질의 제조·수입 또는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때에는 그 사유와 금지 또는 제한하는 경우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검토하여 환경부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제8조).
 
신청자가 제출해야 하는 자료를 더 상세히 적시한 화학물질의 유해성심사 등에 관한 규정은 급성독성 시험성적서는 원칙적으로 설치류에 대한 급성 ‘경구’독성 시험성적서를 제출하되, 다만, 물리화학적 성질이나 용도상으로 주 노출경로가 경피 또는 흡입으로 판단되는 경우 이에 대한 시험성적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7조)
 
위 규정에 따르면 유해성 심사 신청인이 경구독성 시험성적서만 제출해도 되는지 아니면 나아가 경피 또는 흡입독성 시험성적서까지 제출해야 하는지는 PGH의 용도에 따른 노출경로를 확인해야 한다. 국가는 사건 소송에서 “PGH 유해성 심사 신청서에 이 물질은 고무, 목재, 직물 등 보존을 위한 항균제로 사용될 예정으로 적시하였으므로, 심사 신청 당시 반복 흡입 노출에 의한 영향을 판단할 수 있는 독성자료는 법적 심사 신청의 구비서류가 아니었다”고 주장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2003년 유해성 심사 신청서에는 심사 신청 대상 물질이 환경에 배출되는 주요경로를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었다.  
 
3. 배출경로: 아그로셉트 또는 알카치드(Agrosept or Akacid) 23~30% conc.-수용액(희석)
-제품에 첨가(스프레이 또는 에어로졸 제품등/항균효과)
-세탁 시 하수로 배출 등 
 
이처럼 심사대상물질이 스프레이 또는 에어로졸 제품 등에 첨가된다면 노출경로에는 흡입도 포함되고 따라서 PGH에 대한 흡입독성 시험성적서가 제출돼야 한다(제출되지 않았다면 국립환경과학원은 제출을 요청하거나 명해야 한다). 결국, 당시 법령에 따라 반드시 제출됐어야 하는 흡입독성 시험성적서 없이 경구독성 시험성적서에 의지한 채 이루어진 당시 유해성심사는 하자 있는 심사인 것이다. 이 점에서 유해성 심사 판정은 법령의 규정에 따른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대한 무지 내지 오해에서 비롯된 그릇된 판단이라 하겠다. 
 

용도변경에 따른 재심사 제도는 최소한의 조치

 
가습기살균제 제품들 ⓒ함께사는길 이성수
 
경구독성 심사만 행해진 화학물질을 흡입 노출 제품의 성분물질로 사용한 데 대해 정부는 아무 책임도 없을까?
 
PGH를 원료물질로 한 세퓨의 가습기살균제는 2009년도에 출시됐다. PGH에 대한 2003년 유해성심사는 고무, 목재 보존제로 사용을 전제로 한 경구독성 유무였다. 그런데 이 물질을 가습기살균제 성분으로 사용한다면 노출 형태는 흡입으로 변경되므로 흡입독성 유무에 대한 유해성심사를 다시 하는 것이 독성학의 기본상식에 따른 타당한 결론이다.   
 
그런데 세퓨 제조자는 아무런 제약 없이 PGH를 사용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피고 국가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당시 유해성심사는 화학물질 자체에 대한 자료를 통해 유해성을 평가하는 물질 신고제도로 한번 신고가 이루어지고 나면, 후에 같은 물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해도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의해 다시 신고하거나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하자면 당시 유해성 심사제도가 용도에 대한 등록제도가 아니므로 국가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다. 그렇다면 등록제도는 내버려두고라도 왜 용도변경에 따른 재심사 제도를 두지 않았는지에 합당한 설명을 해야 한다. 물론 법이나 제도라는 것은 늘 완벽할 수는 없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회고적으로 보아 과거의 법과 제도가 불충분하였더라도 이를 이유로 일률적으로 국가에 법적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의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수준, 선진국 사례 등에 비추어 법과 제도에 효율적인 최소한의 조치마저 결여됐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는 법적책임을 물을 수 있다. 
 
육류를 구입하고 섭취하는 소비자들이 밀집사육시설인 이른바 ‘공장식 축산’을 허용하고 있는 축산법 등이 자신들의 생명신체의 안전에 관한 권리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제기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가축사육시설의 환경이 지나치게 열악할 경우 그러한 시설에서 사육되고 생산된 축산물을 섭취하는 인간의 건강도 악화될 우려가 있으므로, 국가는 건강하고 위생적이며 쾌적한 시설에서 가축을 사육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적절하고도 효율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소비자인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에 관한 기본권을 보호할 구체적인 헌법적 의무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의 보호의무와 관련해 국가는 국민의 중요한 기본권을 과소하게 보호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과소보호금지’ 원칙)인 것이다. 
 
미국의 독성물질관리법(TSCA)은 신규 용도 위해성 재평가 제도를 두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사전제조신고에 따른 검토가 완료돼 TSCA 목록에 등재된 물질이라 하더라도 용도가 주요하게 달라지면 제조자는 제조 전 환경청에 신규 용도 신고를 해야 하고, 환경청은 해당 물질이 변경하고자 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 안전한지 여부를 다시 검토한다.  
 
누차 말하지만 화학물질은 노출형태에 따라 독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용도변경에 따른 유해성 재심사 제도는 화학물질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조치다. 그런데 이러한 재심사 제도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유해성심사를 통과한 화학물질을 아무런 제약 없이 심사 당시 전제된 용도와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가습기살균제라는 프랑켄슈타인 같은 제품이 시장에 출시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는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조치를 다하지 아니한 데 대해 법적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국가는 법적책임을 면할 수 없다

 
나는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국가가 유해화학물질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헌법상 의무를 저버렸으므로 손해배상책임 등 일정한 법적책임을 진다고 본다.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먼저, 환경부(국립환경과학원)가 2003년 유해성 심사 당시 PGH에 대한 흡입 독성 평가를 하지 않은 채 유해성 여부를 판정한 것은 당시 유해성 심사 관련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환경부가 당시 관련 규정에 따라 유해성 심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PGH의 유해성을 확인하고 생명신체에의 위해 발생 가능성을 예견함으로써 사용 제한 등 적절한 손해 회피 조치를 취할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그랬다면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피할 수 있었으리라 본다. 이 점에서 국가는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손해배상책임 등 법적책임을 진다고 하겠다.   
 
또한 신규 용도 변경에 따른 유해성 재심사 제도는 유해화학물질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으로 보호하기 위한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다. 이러한 유해성 재심사 제도가 있었더라면 가습기살균제가 시장에 출시되기에 앞서 유해성 심사가 다시 이루어졌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PGH 사용은 금지되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참사를 피할 수 있었으리라 본다. 신규 용도 변경에 따른 유해성 재심사 제도를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국가는 법적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본다. 
 
글 /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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