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개혁과제 1순위

지난 5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가습기참사넷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의 가습기살균제 해결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대통령이 바뀐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나라가 바뀌고 있습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줄줄이 풀려나가는 느낌입니다. 
 
이제 가습기살균제 참사도 제대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4월 말까지 신고가 된 피해사망자만 1181명입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최소 피해 추산의 10퍼센트에 불과한 수치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재조사와 진상규명을 약속했습니다. 국회도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합니다. 
 
다행히 지금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 우원식 의원은 작년 국회의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이었습니다. 당시 우원식 위원장은 매우 적극적으로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이끌었지만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방해와 반대로 정부의 책임과 사과를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옥시레킷벤키저의 외국인사장과 외국인임원 그리고 영국본사를 청문회장에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국정조사를 연장하려 했지만 역시 새누리당의 반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제 여당이 되었습니다. 새누리당은 없어졌고 갈라져 모두 야당이 되었습니다. 각 당 원내대표도 바뀌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규명에 큰 책임을 가진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원장에 재벌개혁 전도사로 불리는 김상조 교수가 임명되었습니다. 검찰 책임자도 물러났습니다. 
 
 
환경부 장차관 등 각 부처의 책임자들도 모두 바뀔 것입니다. 작년 국정조사장에 나왔던  각 정부 부처의 차관들은 하나같이 책임을 회피하고 ‘나몰라라’ 하는 태도로 국회와 국민을 우롱했습니다. 이제 그들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새 정부는 과거 정부가 회피했던 책임을 인정하고 감사원으로 하여금 지난 정부의 과오를 낱낱히 짚어내도록 해야 합니다. 더불어 검찰은 재수사하고 국회는 국정조사를 다시 실시해 진상을 규명해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물론이고 야당들도 당내에 가습기살균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해야 합니다. 작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에 설치되었던 가습기살균제 특위는 국정조사가 끝난 후에 없어져 버렸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특위 활동도 중단한 것입니다.  
 
이제 국회는 2016년 8~10월에 반쪽짜리로 그쳤던 국정조사와 청문회의 나머지 절반을 진행해 올바른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엉터리 정부의 엉터리 피해대책을 물리고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국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국회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억울하게 스러진 피해사망자들과 힘겨운 생존투쟁을 하고 있는 피해자들, 그들을 돌보고 있는 가족들의 아픔을 보듬어야 합니다. 국회는 새롭게 구성되는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재조사하고 검찰이 재수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6월 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환경의날’입니다. 매년 정부는 이날 대통령이 참가하는 환경의날 행사를 해왔습니다만 의례적인 행사에 그쳤습니다. 올해부터는 달라져야 합니다. 4대강을 망가뜨리고 하는 위선적인 환경의날 행사나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외면하고 하는 가식적인 환경의날 행사는 작년으로 끝이어야 합니다. 
 
올해 환경의날 행사장에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피해자의 유족과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야 하고 폐이식을 해야 했던 피해자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석면으로 고통받는 환경피해자들이 초대되어야 합니다. 또한 행사장 한 편에 4대강사업으로 떼죽음 당한 물고기들과 제주바다에서 뛰어노는 제돌이와 아직도 시멘트 수조에 갇혀있는 돌고래 친구들과 같은 생태계의 대표들에게도 그들의 이름이 달린 좌석이 배정됐으면 싶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들 피해자들을 하나하나 거명하면서 아픔을 위로해 주기를 희망합니다. 5월 18일 광주에서 열린 518 기념식장에서 광주항쟁 희생자와 유족을 격려해주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올해 환경의날은 대통령과 환경부장관이 그간의 정부의 잘못을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새로운 시작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는 시점은 이미 6월 5일 환경의날이 지났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뉴스를 통해 환경의날에 대통령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초대해 위로했다는, 그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약속했다는 소식을 이미 알고 있는 그런 상황이기를 바랍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올해 8월 31일이면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7년이 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5월 하순부터 100여 일 남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캠프는 대선 전에 당선 후에 가동할 100일 개혁프로그램을 비밀리에 마련했다고 합니다. 여소야대로 국회가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 대통령의 업무지시를 통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한 개혁을 추진하자는 취지랍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문제는 새정부의 개혁과제 1순위에 포함되어 반드시 제대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가습기살균제 문제해결에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몇 가지 구체적 제안을 드립니다. 
 
첫째,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입니다. 환경부, 보건복지부, 산업부, 공정위, 감사원, 검찰과 기재부 등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 있는 부처들은 하나같이 책임을 외면하고 발뺌하기에 급급했고 지금까지도 그런 기류는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기재부가 고집하는 구상권에 얽매어 판정기준마저 왜곡되어 판정받은 70퍼센트의 피해자들이 피해자가 아닌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둘째, 검찰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강도 높은 재수사를 해야 합니다. 사건 발생 이후 5년 넘게 방치하면서 옥시를 비롯한 제조판매사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증거를 조작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사실상 검찰이 방조를 한 셈입니다. 2016년 초에 수사를 시작했지만 옥시의 외국인 사장과 임원 그리고 영국 본사에 대해서 아무런 수사를 하지 않았고 결국 ‘어린이에게도 안심’이라는 광고문구를 추가해 수많은 어린이 피해를 낳은 ‘존리’라는 미국 국적 사장은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거라브제인이란 외국인 사장은 검찰의 수사협조 요청에 ‘한국말을 모른다’며 대한민국을 우롱하고 국회 청문회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또 1994년 최초의 가습기살균제를 개발하고 판매해 가습기살균제라는 살인제품의 판도라상자를 열었고 이후 18년 동안 전체 제품 90퍼센트 이상에 살균원료를 공급한 SK케미칼에 대해서도 아무런 수사를 하지 않고 면죄부를 준 것도 검찰이었습니다. 
 
셋째, 참사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해야 합니다. 신고가 되지 않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를 찾아내야 합니다. 대규모 집단 살인사건이 발생해 범인을 잡았는데 정작 그동안 희생된 수많은 피해자들에 대한 파악과 조사는 하지도 않고 수사를 종결한 상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의학적 한계에 갇혀있는 기존의 판정방식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제조판매사들에게 입증책임을 물어 폭넓게 피해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1-2단계는 피해자이고 3-4단계는 피해자가 아니라는 어처구니가 없는 기존의 정부대책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합니다. 
 
넷째,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들 스스로 자사 제품 피해자를 찾아내고 모든 사용자와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대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살인기업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는 기업들은 자사 제품을 구매한 모든 사용자들을 찾아내 관련 사실을 알리고 피해대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정부의 ‘나몰라라’ 식 방조 속에 제조사들에게 부여된 면죄부를 이제는 거둬들여야 합니다.  
 
다섯째, 개혁적인 화학물질·제품안전 정책이 나와야 합니다. 특히 제2의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는 스프레이제품에 대해서 반드시 호흡독성안전시험을 거치도록 의무화해야 합니다. 환경의학과 환경독성감시 개념을 도입하고 농도 중심의 수질·대기·폐기물 정책을 벗어나 건강 관점에서 환경정책을 펼치도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태아를 포함한 어린이와 산모 그리고 노인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배려하는 환경보건정책이 필요합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가장 집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미국의 환경보호청장 직속으로 어린이보호과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적극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도와온 여러 시민들의 청원과 호소와 활동이 새 정부의 전향적인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 정책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 /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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