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식 축산은 위헌" 국민들이 낸 헌법소원 결과는?

좁은 케이지 안에서 평생 알을 낳고 살아야 하는 산란계 사진제공 카라
 
대한민국에서 1년에 도축되는 닭의 숫자는 8억 마리를 넘어섰고, 1년간 도축되는 돼지의 숫자도 1500만이 넘는다. 과거에 농가에서 닭 몇 마리, 소쪾돼지 1~2마리를 키우던 것은 먼 옛날의 일이 되어 버렸다.
농장이 아니라 공장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동물들을 밀집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이 대세가 된 지 오래이다. 공장식 축산은 동물을 학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장식 축산 인간 건강 위협” 인정하지만 기각


과도한 육류섭취는 비만, 당뇨와 같은 각종 성인병 증가의 한 원인이 되고 있고, 엄청난 양이 쏟아지는 가축분뇨는 수질오염, 토양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공장식 축산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온실가스 배출은 기후변화의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수시로 발생하는 구제역, 조류독감으로 인해 수많은 동물들이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매장된 동물들의 사체에서 나오는 침출수는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한편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국민들의 세금도 낭비되고 있다. 공장식 축산을 위한 축사 설비를 갖추는 데에 막대한 국가재정이 지원되어 왔다. 그리고 구제역, 조류독감이 발생할 때마다, 살처분 보상금 명목으로 막대한 예산이 지출된다. 2011~2014년 사이에만 무려 1조8418억 원의 살처분 보상금이 국민의 세금으로 지출되었다.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녹색당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그리고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은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기 위해 헌법소송을 진행해 왔다. 시민 1129명을 헌법소원 청구인으로 모집해 2013년 5월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소원의 요지는 공장식 축산이 동물을 학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권, 환경권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이를 용인하고 있는 법령은 위헌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지난 9월 24일, 기각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기각결정을 내리면서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판단들을 결정문에서 언급했다. 우선 헌법재판소는 “지나치게 열악한 환경의 가축사육시설에서 사육되고 생산된 축산물을 섭취하는 경우 인간의 건강도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것은 공장식 축산이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인정한 것으로 의미 있는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헌법재판소는 “국가는 건강하고 위생적이며 쾌적한 시설에서 가축이 서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비자인 국민의 생명쪾신체의 안전에 관한 기본권을 보호할 구체적인 헌법상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즉 공장식 축산이 국가가 정책적으로 규제해야 할 대상이고, 헌법소송을 통해서 다룰 수 있는 이슈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현재의 법령을 통해 국가가 나름대로 공장식 축산을 규제하고 있다고 판단해 헌법소송을 기각했다. 즉, 현행 축산 관련 법령이 국민의 생명 ·신체의 안전과 관련된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인식은 매우 안일한 것이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육류와 달걀은 동물을 학대하는 공장식 축산을 통해 나온다. 그리고 한국의 축산 법령은 매우 미흡하고 허술한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배터리 케이지 사육, 스톨 사육과 같은 감금 사육방식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항생제가 남용된다. 이런 방식의 사육은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는 공장식 축산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기각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통해 공장식 축산이 인간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점, 그리고 이 문제가 헌법차원에서 다룰 문제라는 것을 확인한 점은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인도적 사육으로 법령 개정해야


사실 공장식 축산 자체에 대한 헌법소송은 국내쪾외에서 사례가 없는 소송이었다. 그만큼 법리 구성에서 어려움이 컸다. 무엇보다도 고통을 받고 있는 주체인 동물이 소송의 청구인(원고) 적격이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한계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향후에 법학 차원에서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소송을 통해 공장식 축산에 대한 법적 문제제기의 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인권 사안들이 끈질긴 법적 문제제기를 통해 한발씩 진전되어 온 것처럼, 공장식 축산의 문제도 그런 과정을 밟아나갈 필요가 있다.

입법적인 문제 해결 노력도 필요하다. 동물을 인도적으로 사육하는 방식으로 축산법령을 개정해야 한다. 최소한 A4 3분의 2도 안 되는 면적에 닭을 가둬 키우는 배터리 케이지 사육과 돼지 스톨사육만이라도 하루속히 금지되어야 할 것이다.
 
 
글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haha96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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