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대책 없이 과제만 남긴 사용후핵연료

지난 10월 탈핵을 바라는 시민단체와 시민들은 맥스터 무효와 잘못된 공론화에 항의하며 ‘대한민국 방방곡곡 가져가라 핵폐기물 캠페인단’을 구성해 부산 서면에서부터 서울까지 9박 10일간의 캠페인을 진행했다 ⓒ장영식
 
지난 3월 18일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아래 재검토위)는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하고 활동을 마무리했다. 재검토위는 권고안을 통해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특별법(가칭)’ 제정을 촉구하고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전담할 ‘독립적 행정위원회’ 신설 등을 권고했다. 김소영 재검토위 위원장은 “국민 의견을 정확히 담아내려 최선을 다하였다”며 소회를 밝혔다.
 
이번 재검토위의 대정부 권고안에 대해 시민사회와 지역은 이번 재검토 과정이 제대로 된 핵폐기물 정책 논의가 아닌 핵발전소 가동을 위한 월성 임시저장시설 증설만 결정했을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고준위핵폐기물 전국회의>는 성명을 통해 “국민의 안전보다 핵산업계 이득 보전에만 급급하여 맥스터 증설을 위한 들러리로 철저히 악용된 공론화”였다며 “권고안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21개월 동안 진행된 공론화 과정이 공정성을 상실한 채 폐쇄적으로 진행되면서 월성 임시저장시설 증설 결정 외에는 모든 과제를 미래로 떠넘기는 결과를 발표했다는 비판이다.
 
그동안 지역과 시민사회는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단순히 찬반 대립의 의제가 아니고, 복잡하고 다양한 의제를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당사자를 포함해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으로 위원회 활동이 중단될 것을 우려해 지역과 시민사회, 원자력계 등을 배제한 ‘중립’ 위원회 구성을 강행했다. 결국 재검토위는 핵폐기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갈등 이해 등이 부족한 위원으로 구성됐고 기계적인 형식과 절차로 공론화 과정을 설계하고 진행하였다. 재검토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총 3회의 공개토론회만 개최했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들은 재검토위 스스로 ‘반쪽 공론화’, 이해당사자의 수용성 부족 등으로 이어져 재검토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4명이 중도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부가 이해당사자를 배제하는 이유로 들었던 위원회 파행을 스스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15명의 위원 중 10명이 남은 상황에도 재검토위는 강행되었다.  
 

월성 임시저장시설 논란 지속

 
지난 7월 30일 지역·종교·시민사회단체들은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공론화 무효를 선언하며 재재검토위 해산을 요구했다  ⓒ환경운동연합
월성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증설 결론을 도출한 지역공론화 역시 문제투성이인 점은 마찬가지다. 월성 지역 공론화도 공정성, 투명성, 수용성 등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역 실행기구가 친원자력계 인사로 편향된 것은 물론 회의와 회의자료, 속기록 등도 비공개돼 최소한의 원칙도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일방적인 진행에 대한 항의 때문에 주민설명회도 3차례 무산되고,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이해관계자들의 이해관계자들이 시민참여단에 참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소재지인 경주시 양남면 대책위에서 실시한 주민여론조사와 완전히 상반되는 의견수렴 결과로 ‘공론조사 조작 의혹’까지 불거졌다. 
 
월성 핵발전소에서 불과 7km 거리에 인접한 울산 지역을 지역 공론화 의견 수렴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문제였다. 당초 재검토위원회는 울산 지역의 의견수렴도 동일한 방식으로 계획했으나 진행하지 않았다. 의견수렴에서 배제된 울산 북구 주민들은 민간주도로 주민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2020년 6월 5~6일). 그 결과 5만479명(총유권자의 28.82%)이 투표에 참여, 그중 4만7829명(94.8%)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건설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결과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경주지역의 결과만으로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증설은 결정되고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더구나 당초 원칙은 전국공론화 이후 지역공론화가 진행되는 것이 순서였으나 이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사용후핵연료 중장기 관리정책에 대한 의견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제까지 유지되어야 하는 시설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임시저장시설 건설 의견을 묻는 공론화가 진행된 것이다. 
 

과제만 남긴 권고안

 
파행을 거듭하던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재검토위원회가 최종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하고 21개월의 활동을 끝냈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출처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재검토위원회
 
재검토위원회가 발표한 대정부 권고안을 살펴보면 원칙적인 내용과 향후 절차와 제도 마련을 주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원칙, 정책결정체계, 영구처분시설 및 중간저장시설 확보, 관리시설 부지선정 절차, 관리시설지역 지원원칙 및 방식, 임시저장시설 확충, 사용후핵연료 발생량 및 포화 전망,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술개발 등 다양한 의제를 다루었지만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원칙도 국가책임, 국민안전, 국민신뢰, 지역사회 참여, 처분에 있어 영구저장과 중간저장 필요, 부지선정절차에 있어 원칙과 절차, 법제화 필요 등 원론적인 언급만 나열돼 있다. 발생 최소화의 원칙, 심층처분기술의 안전성과 부지선정기간의 적절성, 추가적인 임시저장시설 설치 문제, 지역지원 대상과 범위 등 쟁점이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향후 검토가 필요하다고 서술했다. 정책결정체계에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참여원칙과 절차를 포함하는 제도방안을 마련하고 제3의 독립적인 행정위원회가 신설되어야 한다는 것을 권고했다. 이 문제 역시 구체적인 법안 마련까지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공론화는 공정성을 상실한 채 진행됐고 권고안 역시 자체 폐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떠나서도 이번 재검토위 권고안을 가지고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추진하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정책 추진을 위한 이해당사자의 수용성 확보에 실패했고, 관련 전문가 검토 등도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회가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지만 그 과정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월성 핵발전소 임시저장시설 건설을 강행했지만 경주와 울산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강력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월성핵발전소 지역공론화에 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며, 원점에서부터 이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에 대한 의견수렴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난제를 풀려면 반성부터 제대로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와 처분의 문제는 인류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가장 어려운 과제 중에 하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동안 당장에 핵발전소 운영에만 급급해 이 문제를 접근해왔고, 핵산업계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된 사회적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지난 정부들의 공론화 과정의 실패를 이번 정부에서도 반복하면서 불신과 갈등만 증폭시켰다. 
 
핵발전소 가동만을 위한 단기처방, 소재지역에 책임 전가, 부실한 안전대책, 미래로 책임 전가 등을 반복해서는 문제가 제대로 논의될 수도 없고 해결에 접근하기도 어렵다. 이번 재검토의 핵심 교훈은 핵산업계의 이해관계에 벗어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전문가 그리고 전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가 보장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그동안 진행한 공론화에 대한 통렬한 평가와 반성이 필요하다. 사용후핵연료 재검토 실패의 책임은 정부와 재검토위에 있다. 원점에서부터 제대로 된 논의가 필요하며 이해당사자들의 신뢰부터 회복해 논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풀 수는 없으며, 당장에 급한 불만 끄려 해서도 안 된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다루는 독립행정기구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부분 공감하지만, 거듭 실패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의 반복이 되지 않도록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 /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