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형사처벌 반쪽짜리 구제법

ⓒ함께사는길 이성수
 
2017년 1월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한 2가지의 진전이 있었다. 법원에서의 형사처벌과 국회에서의 피해구제법 제정이다. 
 

소비자 1명 사망당 7.5개월의 죄를 물은 1심 판결  

 
새해 첫 주인 1월 6일 오전 10시 서울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는 200여 명의 방청객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찼다. 판사가 외부의 관심을 고려해 출입을 제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핼쑥한 모습의 사람들은 피해자들과 가족들로 보이고, 말쑥한 양복들은 제조사의 직원들로 보였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들고 부지런히 적는 사람들은 기자들일 것이다. 
 
판사는 한 시간 동안 판결요약문을 읽어나갔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제조사들이 안전조치 없이 판매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유례없이 참혹한 사고”라고 말했다. 내심 판결을 기대했다. 그런데 이어서 나온 판결내용은 황당했다. 옥시레킷벤키저 신현우 징역 7년, 리존청 무죄, 세퓨 오유진 징역 7년, 롯데마트 노병용과 홈플러스 김원회 각각 금고 4년.
 
검찰의 신현우 20년, 리존청 10년의 구형량을 비웃는 결과였다. 재판장은 검찰이 제기한 죄목 중에서 사기혐의가 입증되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제외했고 나머지 과실치사 등의 죄목에 대해 가장 높은 수위로 처벌한다고 설명했다. 
 
2016년 12월 15일과 16일 양일간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과 공동으로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에 ‘가습기살균제 사건관련 옥시 전 대표 적정 형량’을 묻는 여론조사를 의뢰했다. 국민 1000명의 응답자들 중 51퍼센트는 무기징역을, 31퍼센트는 징역 20년 이상을 선고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 10명 중 8명은 검찰 구형량보다 많은 20년 이상을 선고해 엄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피해자와 유족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도 동떨어진 결과다. 법원이 이 사건을 얼마나 안이하게 판단했는지 드러난 결과다.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3개 회사법인과 16명의 임직원 등 모두 19명의 피고에 대해서 2명은 무죄, 17명은 유죄로 판결했다. 유죄판결 내용을 요약하면 7명은 징역 5~7년씩 모두 합해 43년이고, 7명은 금고 3~4년씩 모두 합해 27년으로 14명에게 모두 합해 70년의 실형을, 회사법인 3개는 각각 1.5억 원씩 모두 합해 4.5억 원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 그리고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이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며 강력히 반발했다. 2016년 말까지 신고된 사망자가 1112명에 이르고 정부조사에서 폐손상 관련성이 확실하거나 높다고 확인된 1-2단계 피해 사망자만도 113명이나 된다. 이번 형사사건의 검찰기소에 포함된 직접 사망자 1명당 제조사 책임자에게 1년씩만 책임을 물려도 113년의 실형이 나와야 하는데 14명에게 70년의 실형이니, 소비자를 죽인 죄로 1명 사망당 7.5개월의 죄를 물은 셈이다. 벌금으로 보면 사망 1명당 398만 원인 셈이다. 사망자로만 따져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문제 많은 치명적인 판결 

 
말도 안 되는 낮은 선고형량 외에도 이번 판결에는 세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먼저 리존청 옥시레킷벤키저 전 사장에 대한 무죄판결이다. 리존청은 미국인이다. 2005년을 전후로 옥시레킷벤키저의 사장을 지냈고 이번 사건으로 기소된 2016년에는 구글코리아의 사장으로 있던 자다. 이사나 자문역도 아닌 회사를 대표하고 책임지는 대표이사의 위치에 있던 자가 제대로 된 보고를 받았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리존청에 대해 검찰수사가 미진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옥시의 외국인 임원과 영국본사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무죄라니, 재판부가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다. 
 
그런데 작년 6월 검찰수사팀이 법원에 청구한 리존청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는데 당시의 영장전담 판사가 바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특검이 신청한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람이다. 소비자가 1000명이 넘게 죽은 사건에 대해 제조사 사장을 구속하지 않은 판사, 국민들이 땀 흘려 한 푼 두 푼 벌어 노후를 위해 모은 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이 막대한 손해를 입으며 삼성계열사 합병에 찬성해준 대가로 400억 원이 넘는 검은 돈을 정권에 바친 재벌에 대해 뇌물죄 증거가 부족하다며 구속하지 않는 판사란 대체 어떤 사람이며 우리사회가 어떻게 이런 자들을 제어할 수 있을까?
 
지난해 8월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인 SK케미칼과 애경과 이마트의 전ㆍ현직 최고위 임원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참여연대
 
다른 하나는 공소시효의 적용이다. 판결대로라면 2009년 이전에 발생한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제조사들에게 아무런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어처구니없는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이 부분도 검찰에 치명적인 책임이 있다. 당초 피해자들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12년 8월에 첫 형사고발을 했다. 그때 바로 수사에 착수해 기소했다면 이번 판결대로라도 2005~2009년 사이에 발생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에 대한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첫 고발장이 접수된 지 4년이나 지난 2016년에 수사에 착수하고 기소해 4년이란 시간을 흘려버렸고 제조사인 살인자들에게 면피할 시간을 준 것이다. 명백하게 검찰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각의 피해자에 대한 개별피해사건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사건으로 봤다는 점이다. 때문에 사망자가 1000명이 넘게 나온 이 사건은 사망자가 1명만 나온 사건과 같은 동격으로 처리됐다. 앞으로 나오는 피해판정과 새롭게 신고된 피해자들이 이들 제조사와 책임자들을 추가로 형사고발하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판결은 검찰의 늑장수사와 외국인 임원 봐주기, 법원의 안이한 판단, 정부의 책임회피 등이 어루러진 결과라고 봐야 한다.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는커녕 피해자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결과다. 이대로라면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결코 막을 수 없다. 
 
그런데 이번 형사재판의 1심 판결에 대해 영국의 BBC 보도가 이상하다. 리존청 무죄 내용은 아예 뺐고, 신현우 옥시레킷벤키저 사장에 대해 최고형을 내렸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검찰 구형량과 비교하지도 않고 장님 코끼리다리 만지기 식의 보도를 한 것이다. BBC보도를 접한 외국의 일부 시민운동가들은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필자에게 보내오기도 했다. 소비자가 죽고 다치는 사건에 대해 돈으로 배상하는 일은 있어도 제조사 책임자가 인신구속되고 형사재판으로 실형을 받는 일이 국제적으로도 드문 일이라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 소비자정의, 환경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지구적 차원의 시민운동의 과제인 셈이다. 
 

5년 5개월 만에 구제법 가결 

 
가습기살균제 피해 가족이자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 강찬호 대표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며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첫 판결에 이어 1월 20일 특별법인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이 국회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1994년 유공(현재 SK케미칼)이 첫 가습기살균제 제품 ‘가습기메이트’를 출시한 지 23년 만에, 1997년 8월 첫 사망신고가 나온 지 20년 만에, 2011년 정부의 역학조사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6년 만에, 2014년 정부의 1차 판정이 나온 지 3년 만에 만들어진 피해구제법률이다. 19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4개나 발의되었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의 반대로 2016년 20대 국회 직전에 모두 폐기되었다. 
 
그러다 2016년 6월 2일 20대국회에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발의를 시작으로 2016년 12월 12일 가습기살균제국정조사특위 우원식 위원장의 법률발의까지 모두 7개가 발의되었다. 2016년 12월 19일 환노위의 소위에 회부되어 모두 5차례 논의해 7개 법안을 통합조정한 대안이 나왔고, 2016년 12월 29일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결되었다. 2017년 1월 20일 오전 10시에 열린 법사위에서 논의했지만, 다시 법사위 2소위로 넘겨졌다. 이날 오후 1시 반부터 열린 법사소위에서 이견을 조정해 이날 오후 3시를 넘겨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의결하고 3시 35분경 국회 본회의 중간에 안건 상정해 98퍼센트의 찬성으로 최종 가결했다.  
 
2011년 정부의 역학조사가 나왔을 때 정부와 국회가 곧바로 관련법을 만들어 피해자를 지원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외면하고 미적거리면서 5년 5개월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사이에 2017년 1월 15일까지 신고한 피해자는 5380명이고 그중 20.9퍼센트인 1122명이 사망자로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피해신고를 하고도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제품 사용 후에 나타난 건강피해임에도 관련성을 인정받지 못해 외면당하고 기초적인 병원비도 지원받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진 피해자도 여럿이다. 
 
이번에 가결된 특별법은 당초 피해자들이 요구했던 사항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특히 피해자들은 징벌적 배상 조항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외쳐 왔지만, 결국 빠졌다. 또한 피해구제기금에서 살인기업들이 내놓을 총액을 1000억 원 규모로 제한하고,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함에도 기금 출연을 거부한 정부가 결국 빠졌다. 
 
그럼에도 구제법 통과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던 1-2단계 피해자들은 물론, 정부로부터 피해를 인정받지 못해 사실상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던 3-4단계 피해자들이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일 수 있게 됐다. 또한 환경부에 건강피해 인정 관련 사항을 전문적으로 검토할 피해구제위원회를 두고, 위원회 안에 ‘폐질환조사판정 전문위원회’와 함께 ‘폐이외질환조사판정 전문위원회’도 두도록 한 점은 의미가 크다. 이미 폐 질환 외에도 다양한 신체 부위에 잠재적중장기적 피해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구제급여에 대한 법적 근거가 명확해진 것 또한 의미가 있다. 법 적용 시효가 당초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난 점도 그나마 다행이다. 
 

시민들이 없었다면

 
제조사에 대한 징벌배상조항과 정부책임이 모두 빠져 반쪽짜리인 이 법마저도 피해자를 돕고, 유사한 피해를 막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이 2016년 봄에 시작되어 뜨거운 여름에 활활 타오른 옥시불매운동으로 불이 붙었고 그리고 늦가을에 시작된 촛불정국에서 전개된 서명운동에 참여해 1만8759명의 촛불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일이다.   
 
글 /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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