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안방의 세월호

2017년 11월 23일 밤 11시경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세월호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100여 명이 모여 특별법제정을 촉구하는 철야농성을 했다. 스티커 위쪽 가운데에 여의도 옥시rb 본사가 있는 IFC빌딩의 불빛이 보인다 ⓒ최예용
 
가정마다 집집마다 안방이 있다. 방이 하나뿐인 집은 그 방이 곧 안방이다. 사람들은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참사라고 했고 “안방의 세월호”라고 불렀다. 주로 갓난아이나 3세 이하의 영유아가 있는 집이 주로 그랬다. 그런 집들은 겨울이 되면 온 식구가 안방에 모여서 잤다. 추운 겨울 안방에만 난방을 하고 외풍을 막고 엄마는 아이를 안고 바닥에서 자고 아빠는 침대에서 자는 경우가 많았다. 바닥은 뜨거웠고 공기는 메말랐다. 아이에게 감기 기운이 있어 병원에 가면 습도조절을 하라고 했다. 가습기를 사용하라는 이야기였다. 
 

안방의 세월호

 
젖은 빨래를 널어놓기도 했지만 방이 좁았다. 가습기는 물을 자주 갈아줘야 했는데 물때가 자주 생겼다. 청소를 해보지만 구석구석 손이 닿지 않았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가습기 청소를 자주 하지 않으면 가습기 사용으로 세균에 오염된 나쁜 공기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찝찝했다. TV에서 ‘가습기메이트로 우리 아이의 건강을 지키자’는 내용의 가습기살균제 광고가 나왔다. ‘아 저런 게 있었구나’ 싶었다. 마트에 가니 여러 제품이 나와 있었다. 1+1 판촉행사도 했다. 가습기를 사면 살균제를 사은품처럼 주기도 했다. 아이가 있는 집에 손님으로 갈 때 선물로도 자주 이용됐다. 2005년경에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길렀던, 지금은 40대 후반의 한 엄마는 이렇게 기억했다. “당시 신혼이나 아이가 있는 집 거실에는 티비가 있고 그 옆에 가습기 그리고 그 옆에 가습기살균제가 놓여 있었어요, 다 비슷했죠.” 
 
 
가습기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안방은 곧 세월호가 됐다. “안방의 세월호”는 1994년 말에 운항을 시작했는데 당시의 유공, 지금의 SK가 ‘가습기메이트’라는 국내 최초, 세계 최초의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1995년에 당시 국내기업인 동양화학 계열인 옥시의 “안방의 세월호”가, 1997년엔 LG와 유공의 “안방의 세월호”가 운항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에는 롯데마트, 2005년엔 홈플러스, 코스트코, 2006년에 이마트, 2007년 다이소, GS, 홈키파로 유명한 독일기업 헨켈, 2009년에 세퓨를 비롯한 4개 회사가 연이어 “안방의 세월호”들을 앞 다투어 출시했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모두 43종류 998만 개가 판매되었다. 이중 19종류의 판매량은 확인이 안됐으니 실제 판매량은 1000만 개를 훌쩍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가 된 안방”은 새롭게 출시되는 가습기살균제의 제품과 판매량에 비례에서 늘어났다. 2000년대 들면서 “세월호가 된 안방”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이유는, 대형할인마트 이용이 본격화되었고, 아파트 생활자들이 대거 늘어났으며, 방송과 신문, 잡지 등을 통한 가습기살균제 제품판촉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던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드는 의문은, 제조판매사들이 자체적인 제품안전점검을 하지 않았겠는가? 산업부, 환경부 등 관계부처의 안전행정이 작동되지 않았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점에서도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 끔찍할 정도로 닮아있다. 세월호의 경우, 출항 전부터 일본서 들여온 노후 선박인데다가 과적에 선장 교체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미흡한 상태였고, 이를 감독하고 규제해야할 정부기관의 기능은 없었다. 출항 이후라도 안전하게 항해할 장치들이 작동되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사고가 발생한 후 피해자를 구조하는 시스템은 가동되지 않았다. “안방의 세월호”의 경우, 제품개발 단계에서 노출안전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의 안전관리 항목에서 가습기살균제는 일반 공산품으로 분류되어 누구라도 만들어 팔 수 있었다. 첫 제품이 이렇게 쉽게 만들어져 팔리자 이후 제품들은 앞 제품을 단순히 카피해서 팔았다. 자사 로고를 박아서 파는 대형할인마트 PB제품도 제품안전 과정을 생략했다. 
 

정부 신고 피해자만 5941명

 
세월호와 달리 “안방의 세월호” 사건은 TV로 중계하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제품 출시 초기에는 서너 척씩, 2000년대 들어서는 매년 수십 척씩 안방에서 세월호가 가라앉았지만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6년 즈음에 피해자들이 속출했고 배의 일부가 수면으로 드러났다. 대학병원에서 이를 알 수 있는 계기가 있었지만 의사들은 정부에 역학조사를 의뢰하지 않았다. 누구도 그것이 “안방의 세월호”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2011년 7명의 산모가 한꺼번에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하고 이중 절반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 사건이 완전히 수면으로 떠올라 공식화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피해신고도 제대로 받지 않았고 피해자들에게 ‘억울하면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하라’고 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직후 해경도 해군도 정부 어떤 기관도 구조를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던 상황과 똑같았다. 
 
2017년 12월 8일까지 정부에 신고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5941명이고 이중 21.6퍼센트인 1284명은 사망자다. 사망자 수로 비교하면 세월호 4대에 해당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숫자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2016년 환경부가 학회에 의뢰해 정밀 조사한 피해자 추산결과 350만~400만 명이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사용했고 즉 “안방의 세월호”에 탑승했고, 이중 30만~50만 명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 즉 사고를 당해 부상당했거나 사망했다는 숫자다. 다시 세월호와 비교하면 1000대에 해당한다. 끔찍해서 이런 비교를 하는 게 겁날 지경이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8년간 1000여 척의 “안방의 세월호”가 전국에서 가라앉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해역에서 사고를 당했는지 그 배 안에 몇 명이 수장되었는지 조사하지 않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많았는데 정부는 번번이 신고기간을 마감해 서둘러 마무리하려 했다. 엄연한 화학물질 안전사고임에도 수많은 소비제품의 하자 정도로 취급했다. 윤성규 전 환경부장관은 국회에서 그리고 기자들에게 제품 제조 당시의 과학기술의 수준으로 이런 문제를 예견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하며 소위 과학기술적 불가지론을 펼쳤다. 대한민국 환경부장관이 가습기살균제를 가장 많이 팔았고 가장 많은 피해자를 발생시킨 이 사건의 상징인 옥시의 대변인처럼 느껴졌다. 옥시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 말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참사법’의 임무  

 
2017년 11월 24일 국회 본회의가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로써 세월호와 가습기살균제 두 사건이 사회적 참사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왜 발생했는지, 왜 구하지 못했는지, 피해대책은 어때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이런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지, 만약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야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등등의 의문점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2018년부터 2020년 사이 만 2년 동안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2016년 초 검찰이 1차 수사했고,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진행했으며 2017년 초 피해구제법을 제정해 시행중이다. 하지만 모두 반쪽짜리들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적당히 시늉만 낸 과정에 불과했다. 세월호의 경우도 검찰수사가 있었고, 1기 특조위라고 불리는 특별조사를 했고, 피해지원특별법이 제정돼 시행되었으며 선체조사위원회도 가동중이다. 역시 무늬뿐인 조사들이었다. 
 
세월호와 ‘안방의 세월호’는 많이 다른 듯하면서도 매우 흡사한 측면을 갖고 있다. 사회적 참사라는 용어로 함께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특별법에 의하면 가습기살균제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위한 소위원회와 피해지원소위원회가 있다. 그리고 특별히 안전사회소위원회가 있는데 이곳에서 재발방지와 유사한 사회적 참사를 막기 위한 제반의 조치를 강구하게 된다. 
 
이 특별조사위원회가 두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가리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참사가 또 발생할까봐 불안해하는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안전사회대책을 마련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글 /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자 환경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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