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가 당사자다!” 주민투표로 확인한 울산 시민들의 민의

울산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건설찬반 울산북구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기자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건설 찬반 울산북구 주민투표’가 끝났다. 울산 북구 주민투표(이하 울산 주민투표)가 한국 탈핵운동에 있어서 가지는 의미를 정리해 보았다. 5만여 명이 참여한 주민투표, 투표자의 94.9%가 ‘사용후핵연료 대용량 조밀건식저장시설’(이하 맥스터) 건설에 반대한 결과를 ‘어떻게 정책에 반영시킬 것인가’의 문제는 남아 있다는 점에서 향후 이 글은 다르게 정리될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울산 시민들은 주민투표 이후 지난 6월 11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대통령 면담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는 울산을 위시해 부산, 경주, 고창, 영광 등 핵발전소 지역 시민들, 탈핵시민행동과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등 탈핵연대단체도 함께 참여했다. 기자회견문에는 △문재인 대통령은 울산 주민투표 결과를 수용해 월성 핵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건설을 백지화하라. △문재인 대통령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엉터리 공론화 중단하고 재검토위원회 해체, 반쪽짜리에 불과한 핵발전소 소재 지역 지역실행기구를 해산하라. △대통령 책임으로 제대로 된 사용후핵연료 처분 정책을 재수립하고, 전 국민 의견 수렴을 위한 사용후핵연료 논의기구를 다시 구성하라는 세 가지 주요한 요구가 담겨 있다. 이 요구서는 청와대에 전달한 상태다.
 
한국 탈핵운동사에 있어서, 울산 주민투표는 ‘소재 지역이 아닌 인근 지역’이 핵발전과 핵폐기물 처분에 관한 정당한 주민 의견 개진의 당사자임을 주장하는 첫 번째 사례라는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지금까지 핵 관련 시설 건설과 관련해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의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 의견을 주요하게 반영했다. 정부와 핵산업계는 주민 의견 수렴 범위를 좁혀서 최대한 조용히 핵시설을 지어왔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맞서, 울산 주민투표는 경주시 양남면 월성 핵발전소 부지에 건설 예정인 맥스터에 대해 울산 북구 주민들이 ‘당사자’로 나서서 적극적인 찬반 의사 표현을 한 것이다. 이것은 ‘월권’이 아니다. 월성 핵발전소로부터 경주시청은 27km, 울산 북구청은 17km, 울산시청은 24km 떨어져 있다. 월성 핵발전소 기준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에 울산 시민 100만 명(이 가운데 북구 주민 21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울산 북구는 행정구역상 경주시 양남면과 이웃하고 있고, 가까운 곳은 월성 핵발전소와 불과 7km 거리에 있다. 누가 봐도 만일 월성핵발전소 사고 시 그 피해를 경주 못지않게 울산 또한 받을 수밖에 없다. 
 
울산 북구 주민들과 울산지역 시민단체는 6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 북구 주민투표 결과를 알리며 핵폐기물 저장소인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건설을 백지화할 것으로 요구했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산업통상자원부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공론화 설계를 하면서 애초부터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주민 의견 수렴 범위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입지 행정구역을 넘어서는 근접지 주민의 의견 수렴’ 의제는 시민사회가 참여한 ‘재검토준비단’에서부터 첨예한 논쟁거리였다. 재검토준비단은 결국 이 의제에 합의된 의견을 만들지 못한 채 정책건의서를 산업부에 제출했다. 재검토준비단 이후 출범한 재검토위원회도 재검토준비단이 합의하지 못했던 이 사안에 대해 그 어떤 결정도 하지 않고 지역실행기구에 판단을 맡겨버렸다. 그 결과 경주시는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지역실행기구’ 위원 구성에 울산 시민을 배제하고 경주 시민만 참여시킨 상태로 단독 출범했다.
 
그동안 정부와 핵산업계는 「발전소 주변 지역에 관한 법률」을 들어 핵발전소의 경우 반경 5km까지의 주민 의견을 주요하게 수렴하고, 인근 지역 주민의 의사는 무시해왔다. 그러나,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은 방사능 재난에 대비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설정하고, 지방자치단체에 재난대비 훈련과 재난대비 물품을 확보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울산 주민투표는 바로 이 ‘법의 충돌’이 존재하는 현실을 폭로하는 시민행동이었다. 주민투표라는 시민행동을 통해 울산 시민들은 ‘핵발전소 반경 5km 밖의 주민들도 핵발전소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진 당사자’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어 냈다. 법률적인 측면에서 한 가지 더 논쟁거리가 있다. 현행 주민투표법 제8조는 국가정책에 관해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주요시설의 설치 등 국가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주민투표 실시구역을 정하여 관계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주민투표실시를 요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는 울산 북구주민 1만1484명이 산업부에 청원한 주민투표 실시를 울산 북구청에 ‘시행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자치단체는 독자 판단으로 국가사무에 관한 주민투표를 할 수 없다. 현행 주민투표법은 ‘주민 안전과 직결된 사안’조차도 주민투표 실시 권한을 중앙 행정기관에게만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주민투표운동본부는 민간 주도로 주민투표를 추진함으로써 진정한 민의의 수렴에서 벗어나 있는 ‘법과 국가정책’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두 번째로 울산 주민투표가 한국 탈핵운동에 있어서 가지는 의미는 ‘탈핵운동 전반에 새로운 활동의 동력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국 탈핵운동 진영은 2016년 ‘잘가라 핵발전소’ 서명운동을 벌여 33만 명의 서명을 담아 현 정부에 제출했다. 그 결과 현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만들었던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이를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그러나 현재 산업부가 추진하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는 시민사회나 탈핵운동 진영이 33만 명의 서명으로 요구했고, 100대 국정과제 등제 시 요구했던 방향과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울산 주민투표는 지역의 ‘당사자 주민 5만여 명의 목소리를 조직’해냄으로써 ‘재검토위원회 해산’을 요구하고 ‘탈핵정책의 후퇴’에 제동을 걸었다. 
 
세 번째, 울산 주민투표는 정부가 마땅히 알려야 하지만 알리지 않은 고준위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의 실체를 울산과 전국 시민사회에 알렸다. 국민 가운데 ‘사용후핵연료’가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이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은 울산 북구에 1700여 장의 현수막을 게시하면서 주민들에게 1차로 고준위핵폐기물의 존재를 알렸다. ‘울산주민투표운동본부’는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4만3천여 명의 서명을 직접 받아내면서 정부가 월성핵발전소 소재지인 경주 지역에서만 일방적으로 운용하는 ‘경주지역실행기구’의 문제점을 알리고, 사용후핵연료가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장 없이 ‘임시저장시설’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될 가능성이 있는 ‘정부 계획의 위험성’을 폭로했다.
 
네 번째, 울산 주민투표는 지역 노동운동 진영과 시민사회가 주도적으로 조직해냄으로써 지역과 전국의 탈핵운동 저변을 확대했다. 울산 북구는 전체 8만여 세대 가운데 공동주택이 6만4천여 세대에 이른다. ‘울산주민투표운동본부’는 20일 동안 북구 117개 아파트 6만 4621세대 가운데 50개 아파트 3만 381세대를 가가호호 방문하여 서명을 받았는데 이는 모두 입주자 대표들의 협조 아래 진행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주민들의 협조는 빛났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서는 261개소에서 사전투표를 실시했고, 금속울산지부와 화섬연맹울산본부에서도 사전투표를 진행하는 등 노동계 또한 주민투표의 주체로 나섰다. 
 
정부는 현재 경주 시민만 참여시킨 150명의 시민참여단을 선정해 ‘공론화’를 진행 중이다. 정부는 맥스터 건설에 반대한 4만7천여 명의 울산 주민투표 목소리를 무시하고, 고작 150명의 시민참여단 의견 수렴만으로 맥스터 건설을 강행할 것인가? 산업부와 청와대는 촛불시민들이 수렁에서 건져낸 민주주의를 시련에 빠뜨리고 있다. 울산 북구에서 터져 나온 주민들의 목소리는 핵발전소 가동 중지나 무조건적 맥스터 반대가 아니다.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정책을 제대로 세울 것을 요구함과 동시에, 임시방편으로 맥스터 건설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핵발전 40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중간저장시설조차 마련하지 못한 정부와 사업자를 언제까지 봐줄 것인가. 더이상 임시저장시설을 짓지 말고, 처분 방안이 없으면 모든 핵발전을 중단시키더라도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전 국민이 사용후핵연료의 존재를 다 알 수 있는 ‘제대로 된 공론장’이 필요하다.
 
글 / 용석록 월성핵쓰레기장반대 주민투표 울산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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