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는 사람 아이가? 우린 뭔데?”

 
“투표하고 가이소. 주민투표하고 가이소.”
 
6월 6일 오후 1시. 울산 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 피켓을 들고 선 사람이 목청을 높인다. 그 소리에 한 남성이 농소2동 제6투표소라 큼지막하게 적힌 천막으로 향한다. “잠시만요.” 투표소 앞에서 대기하던 사무원이 체온기로 그의 열을 확인한 후 소독제와 비닐장갑을 건넨다. 이어 신분증을 확인하고 투표용지를 받아든 한 남성은 기표소로 들어간다. 이미 정해놓은 답이 있다는 듯 금세 투표를 하고 나와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더니 대기하던 통근 버스에 바삐 몸을 싣는다. “사전투표 하셨네요. 중복 투표는 안 됩니다.” “아 같은 거예요?” 그 뒤를 이어 신분증을 확인 받던 젊은 남성은 사무원의 말에 발길을 돌린다. 
 
총선이 끝난 지 두 달이 가까이 지났지만 울산광역시 북구 지역 곳곳에서는 투표가 한창이다. 6월 5일부터 6일까지 울산광역시 북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월성 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건설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5월 28일과 29일에는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와 울산지부소속지회 사업장 내에 투표소를 설치해 사전투표가 진행됐고 6월 1일과 2일에는 문자를 이용한 온라인투표도 진행됐다. 
 

주민투표로 우리 의견을 물어라

 
 
유권자나 투표방식, 진행절차 등은 지난 4월에 치러진 총선과 다를 바 없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민간이 주도하는 주민투표다. 때문에 번듯한 투표소 대신 노천에 천막을 쳐서 투표소를 만들고 투표 사무도 자원 활동가들이 맡았다. 주민투표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았다. 앞서 울산환경연합을 비롯한 울산 시민단체와 북구 주민들은 월성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 건설과 관련해 경주 시민들뿐만 아니라 북구 주민들의 의견도 수렴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울산 북구 주민들의 의견이 묵살되자 주민들은 서명을 받아 주민투표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거부되자 주민들은 직접 주민들의 뜻을 묻겠다며 주민투표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2015년 경북 영덕에서도 민간주도로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진행된 적이 있다. 하지만 영덕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거리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도 대부분 주민투표를 알리고 참여를 호소하거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 건설을 반대하는 내용들이다. 투표소 현장에서도 투표를 방해하거나 의견이 다르다고 언성을 높이는 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차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투표는 진행됐다. 하지만 주민들의 마음은 달랐다. 불안과 분노, 절박함을 꾹꾹 누르고 투표소를 찾았다. 
 
 
“주민들의 목소리를 받아주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는데 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곳이 생겨 투표하러 왔어요.” 아이 손을 잡고 투표소를 찾은 김 씨(41세)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경주에 있을 뿐이지 월성 바로 옆에 북구가 있어요. 월성에서 사고 났다고 하면 얼마나 불안했는데요. 그런데도 아무런 정보도 못 받고 혜택도 없었어요. 핵폐기장(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짓는다는 것도 이번에 주민투표 때문에 알게 됐어요.”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아이와 함께 사는 아파트에서 월성원전까지는 차로 35분 거리. 직선거리론 11km다. 월성원전에서 경주시청까지는 차로 48분, 직선거리 28km다. 거리상으로 따지자면 월성 핵발전소의 영향은 경주시내보다 더 받는 셈이다. 하지만 행정구역상 경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혜택은커녕 의견조차 묵살당하는 현실에 주민들은 분노했다. 
 
북구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다는 서진호 씨도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번에도 지진 나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바로 옆에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사는데 군면 따지면 됩니까.”라며 투표소로 향했다. 
 

한 지역만의 문제 아닌 우리의 문제 

 
 
민간 주도로 진행되는 주민투표에 전국 각지에서 온 활동가와 시민들이 투표 사무를 지원하고 있었다. 청주에서 온 청명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탈핵에 관심이 많다. 이미 포화상태인데 더는 안 된다. 한 분이라도 더 많이 오셨으면 하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며 “주민투표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주민들이 많다.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이 자체로도 이미 성공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제주에서도 주민투표를 돕기 위해 울산을 찾았다. “제주에도 육지에서 생산된 전기가 해저케이블로 들어온다. 그중에는 핵 발전에서 생산된 전기도 있다. 핵 발전이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탈핵에 동참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호남에서도 투표소 한 곳을 맡아 주민투표를 지원하고 있었다. 광주환경연합 김종필 활동가는 “곧 있으면 한빛핵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도 포화가 된다. 광주 호남에서도 곧 문제가 될 것이다. 월성핵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공론화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우리도 영향을 받을 텐데 이번 주민투표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걱정과 기대를 내비쳤다. 
 
울산에 살지만 북구가 아니라는 이유로 또 나이가 만 18세가 되지 않아 주민투표에 참여할 수 없는 이들은 자원 활동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민 양은 동생과 함께 주민투표 참여를 호소하며 투표소 주변을 돌았다. “학교 수업 때도 배웠고 뉴스에서도 봐서 방사능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어요. 저는 나이가 안 돼 투표는 못하지만 이번에 이 활동하면서 더 잘 알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인 김백환 군도 친구들과 함께 투표 독려 활동에 나섰다. “사실 학교에서 봉사시간 준다고 해서 친구들과 함께 왔는데 와서 배운 게 많아요. 월성과 이렇게 가까운데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반영이 안 된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생일이 안 되서 투표를 못하는 게 너무 아쉬워요.”라고 말했다. 
 
투표사무원으로 자원활동에 참여한 이은정 씨는 울산에 살고 있다. 북구는 아니지만 그도 월성핵발전소 사고 시 영향을 받는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안에 살고 있다. 주민투표도 참여할 수 없어 자원 활동에 나선 그는 “핵발전소 자체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서 나오는 폐기물 처리는 더 어렵다고 하잖아요. 이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우리지만 우리 아이들은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하는데 위험한지도 모르고 이 위험을 안고 살도록 하는 것은 어른이나 부모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를 중심으로 어떻게 진행할지를, 비용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주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했으면 좋겠어요. 주민들이 불안하고 위험을 일상적으로 느끼고 사는데 이건 아니지 않나요?” 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투표 마감 시간이 다다르자 한 표라도 더 받기 위해 자원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북구의 안전을 지키는 주민투표에 동참해 주십시오” 
 
 
글 /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사진 /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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