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필터없이 커피내려마시기

종이필터없이 커피내려마시기

함께사는길  hamgil@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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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참 희한한 물건이다. 커피향이 코끝에 닿기만 하면 멍했던 중추신경들은 살아나고 곤두섰던 신경세포들은 가라앉는다. 그래서 커피는 끊을 수가 없다. 빈속에도 커피를 찾고 밥 먹고 나서도 커피를 찾는 그녀다.

어느 날, 커피 한 잔 들고 잡지를 보다가 커피콩 노동자들과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후부터는 생협에서 공정무역 커피를 사서 마시고 카페에서 테이크아웃이라도 할라치면 텀블러를 꼭 챙기게 됐다. 공정무역 커피나 텀블러 안에 담긴 커피를 마실 때면 커피에 대해 논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자부심도 있었다. 헌데 그 자부심에 금이 가는 일이 생겼다. 커피를 타려는데 종이필터가 똑 떨어졌다. 벌써 다 썼어? 하는 생각도 잠시, 아 종이필터. 원두커피를 내리려면 종이 거름망에 걸러야 한다. 한 잔 마실 때마다 종이필터 한 장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헌데 이 필터, 종이 아니던가. 그것도 일회용종이! 작다고 얕볼 게 아니다. 하루에 3~5장, 365일 매일 마시는데 재활용도 안 되니 은근 종이를 많이 쓰게 된다. 이런 낭패가 있나. 거기서 끝이 아니다. 표백한 종이 아니야? 이거 만들려면 나무는 몇 그루나 벨까? 으윽 쓰레기~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달짝지근한 커피도 쓰디 쓰다.    

이대로는 안 된다. 종이 필터 없이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비싸면 안 돼, 플라스틱은 안 돼, 전기에너지가 필요한 건 패스. 그러다 번쩍이는 물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 드리퍼, 커피핀이다. 스테인레스 재질이라 번쩍번쩍했지만 그보다 종이필터 없이 진한 커피를 내려준단 말에 얼른 주문 했다.

촘촘한 구멍들이 난 받침대와 역시 밑바닥에 촘촘한 구멍들이 난 본체, 프레스판, 뚜껑이  왔다. 설명서대로 일반 컵에 받침대를 올리고 받침대 위에 통을 얹었다. 커피를 넣고 골고루 펴준 후 프레스판으로 눌러놓곤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고 뚜껑을 닫고 기다린다. 10초 정도 지났을까. 한 방울 한 방울 진한 커피 액이 떨어진다. 종이필터로 거를 때보다 진하다.  

그녀 다시, 도도한 표정으로 커피 잔을 들고 섰다. “커피 즐기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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