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가장 오래된 질병

가장 오래된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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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ppiliri@naver.com

 


“오래된 것이 새로워진다.” 창고법신(創古法新) 또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의학교수이자 산업의학 전문가인 폴 블랭크의 저서 『생활용품이 우리를 어떻게 병들게 하나』에서는 이 말이 조금은 다른 맥락에서 쓰인다.


퀴즈 하나.
침모 경련(seamstress's cramp), 전신 기사의 경련(telegrapher's cramp), 서경(scrivener's palsy), 융단을 까는 사람의 무릎(carpet-layer's knee), 운전사의 무릎(chauffeur's knee). 위 표현들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답. 직업병!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보자. 손목굴 증후군. “종종 손이 ‘바늘에 찔리는 것처럼 따끔따끔한’ 감각으로 시작되는 고통스러운 병을 말한다. 심할 때는 손 감각을 잃고 근육 위축까지 진행된다. 손목굴 증후군의 증상은 ‘손목굴’이라고 하는 팔목의 좁은 해부학상 통로를 통과하는 손의 주요 신경이 손상될 때 나타난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노동자들의 경우는 주로 업무 과정에서 물리적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손목굴 증후군은 손을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행동, 특히 손목을 (구부리기보다는)뻗을 때나 비틀듯이 꼬는 힘이 반복적으로 적용될 때 발생한다.”

이것을 한국적인 상황 혹은 한국적인 표현(?)으로 대치해보면 근골격계 질환이다.
한 네티즌의 설명을 인용하면, 근골격계 질환은 “근육 및 신경이나 골격계통 부위에 피로가 누적되면서 나타나는 질병. 주로 허리나 목, 어깨, 팔 등의 근육 통증과 더불어 발생한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발생하지만, 주로 작업적 요인으로 근로자에게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직업병의 하나로 보는 것이 보통이다. 근골격계 질환은 화학물질 취급에 의한 중독이나 위험한 기계에 의한 안전사고처럼 유해물질이나 위험기구로 인한 것이 아니라, 바르지 못한 작업 자세나 중량물 취급, 급격한 힘의 사용이나 동작, 인간공학적 원칙에 위배된 작업설계 때문에 발병하는 것으로 업종에 상관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발생될 수 있으며, 특히 빨리 빨리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오래된 것이 새로워진다’와 직업병/손목굴 증후군/근골격계 질환의 연관성은 무엇일까?
“손목굴 증후군은 부분적으로 볼 때 병명이 새롭기 때문에 현대병으로 취급된다.” 블랭크 교수가 들고 있는 또 다른 예인 ‘새집 증후군’도 함께 생각해보면 그와 같은 현대병의 의미가 더 선명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병의 실상은 그렇게 ‘현대적’이지 않다. “이와 똑같은 증후군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지만 시대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랐을 뿐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 말해보면 “인간이 도구를 만들고 이용함으로써 동물과 차별화된 이후부터 내내 인류를 괴롭"혀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직업에 따른 병은 인류가 인류로서 참고 견뎌야만 하는 숙명인 것일까? 이 역시 그렇지 않다. “(직업병에) 현저하게 영향을 미치는 위험 인자는 하이테크(high-tech)도 로우테크(low-tech)도 아니다. 단지 과도한 사용이 문제다.” ‘오래된 것이 새로워진다’라는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반복해서 들으면서도 웬일인지 얼마 후에는 잊어버리는 듯한, 오래되고 슬픈 이야기”로서의 직업병 그리고 바로 환경오염!
블랭크 교수가 하고자 하는 말은 바로 거기에 있다. 각종 산업 질병과 환경오염은 느닷없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 동안 오래 지속되어온 것이지만 그에 대한 실상과 대책 그리고 예방은 늘 왜곡과 은폐와 미봉책들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오래된 문제들을 새롭게 들추고 다시 한 번 각성의 칼날을 너나없이 모두에게 요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늘 새로워져야만 하는 진실의 몫이다.

 

『생활용품이 우리를 어떻게 병들게 하나』의 특기할만한 점 하나는 로큰롤 그룹인 다이어 스트레이트의 노래에서 시작해 미국 시인 뮤리엘 루카이저의 시로 끝을 맺는다는 것. 곧 환경 관련 서적의 묘한 특징(?) 중 하나인 통계 퍼레이드를 문화적인 인용들로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엄격한 이들에게는 자칫 너무 비유적이어서-경우에 따라서는 록큰롤 음악에 대해 특정한 부분을 언급하며 반생태적인 그 무엇으로 비판할 수도 있지 않을까?-불만일 수도 있겠지만, 오래된 진실도 새로워져야만 한다고 이해한다면, 그야말로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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