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44]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

 
나는 제주에 살고 있지만, 그게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엄격한 기준에서 혹은 다윈 시대의 구분에 의거하자면, 내가 살고 있는 제주의 환경 정도면 충분히 도시적이다. 그 증거로 우리 동네의 부족한 주차공간을 들이밀어 보겠다. 그만큼 차량이 많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도시성의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리라 본다. 이런 이야기는 괜한 ‘도시 자부심’ 같은 걸 부리고 싶어서가 아니다. 까마귀 때문이다. 요즘 남편과 골목 산책을 다설 때면 매번 하는 얘기가 까마귀에 관한 것이다. 
 
“저기도 까마귀다!” 
“원래 이 정도 까마귀는 이 정도 주택가에 다 있나?”
“에이, 아니지. 산에 많이 있지. 그 왜, 저기 공동묘지에 가면 많이 보잖아?”
“뭣 땜에 여기까지 내려온 거지? 먹을 것들을 찾아서?”
“글쎄. 어쨌든 사람들은 싫어하겠다. 길조로 환영받는 새는 아니라서.”
우리의 이야기는 날마다 이 수준에서, 그리고 까마귀가 사는 곳은 이곳이 아니어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맴돈다. 그런데 어쩌면 이제 우리의 대화는 그 양상이 달라져도 좋겠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왜 자연을 이야기할 때 왜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인간을 배제하려고 할까? 저 멀리 나무에 매달린 개미집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면서 왜 인간이 만든 도시는 그렇지 않다고 여길까?” 혹은 이런 질문. “왜 우리는 개미 사회나 먹이사슬 전체에서 개미의 역할은 자연스럽다고 여기면서 인간 사회는 비자연적이고 먹이사슬에 누구도 원치 않는 폐를 끼친다고 생각할까?”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중입니다』에 담긴 이 질문이 적어도 내게는 매우 전환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읽힌다. 인위성의 집합체라고만 인식하고 있던 도시를 자연스러운 진화의 맥락 안에 앉혀 놓은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자연을 파괴한 그 자리에 도시를 축조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현대인의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미래 사회를 조금은 희망적으로 전망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인간이 건설한 현대적인 거대도시가 참신한 생태학적 현상에 해당한다는 것, 개미나 산호나 비버와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생태계 엔지니어링을 통해서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런 것들로부터 도시의 미래를 구상할 수 있다면, 인간의 문명과 자연의 생태를 분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존과 지속가능성을 긍정적으로 고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례는 제법 존재한다. 집참새 같은 경우가 그렇다. 건조한 지역의 반쯤 개방된 풀숲을 서식지로 삼았던 집참새의 조상들은 농사짓는 인간의 등장으로 자기의 자연 서식지를 떠나 인간 사회로 진입하는 쪽을 택했다. 처음에는 버려진 곡식이 있는 곳, 사람이 사는 집이나 마구간 지붕 같은 곳에 살던 그들은 이제는 거대 도시의 대로 한복판을 근거지로 삼았다. 자전거 보관소 같은 곳 주변에 살고 있는 집참새는 자연스럽게 빵 (부스러기), (먹다 남은) 비스킷과 크래커 같은 것들을 주식으로 삼고, 그러니까 씨앗과 견과류를 먹던 자기들의 섭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도시 조류로 완벽하게 적응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도시가 만들어내는 소음의 주파수를 피해서 얼마든지 의사소통이 가능한 부류의 조류이기도 하다. 집참새의 도시 진화 스토리 같은 것에 우리가 힘을 내도 좋은 이유는, 어쨌든 그들의 진화 서사에 인간의 이야기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 가장 성공적으로 서식지를 꾸린 개미 외에, 런던 지하철 역 터널 안의 모기, 개미집에 사는 딱정벌레, 싱가포를 공격한 집까마귀,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의 구성요소가 된 비둘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다.
 
결국 우리에겐 같이 살 어떤 핑계가 필요한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도시를 버릴 수 없고, 다만 도시적인 어떤 것에 수정과 변화를 가할 수 있을 따름이다. 다윈의 그 진화를 우리가 사는 저 거리와 저 하늘에 불러들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만족할 만한 삶의 풍경일 수 있지 않을까.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까마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산책이 도시의 한 풍경이라면, 그런 도시는 제법 상상할 만 하지 않을까.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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