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45] 딱 하나 남은 지구라면?

 
사하라 사막의 인살라 마을. 셰일 가스를 길어 올리기 위해 그곳에 웅덩이를 파둔 것을 오아시스라고 착각해 거기에 뛰어든 낙타들이 있다. 그렇게 죽어가는 낙타들이 있는데, 석유 웅덩이를 판 다국적 기업들은 낙타의 생애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이 구덩이에서 셰일 가스 채굴을 중단할 때도 마찬가지다. 당연한 일이다. 석유 가격이 떨어지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채굴 사업을 중단할 뿐이다. 셰일 가스를 채굴하려면 관 속에 물, 모래, 화학 약품을 땅에 넣고 폭파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스가 채굴되는 만큼 오염은 심화되지만, 그것 역시 다국적 기업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고, 그런 것들에 계속 관심을 주어야만 하는 존재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인살라 주민들이다. 그리고 그런 주민들은 자기들의 삶을 온통 걸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 아이, 의사, 교사, 학생, 엔지니어, 퇴직자, 상인, 실업자 구별할 것 없이 시민운동가의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이 아이들에게도 필요하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운 방식으로만 지켜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제 전통적인 방식의 농업뿐만 아니라 로열티를 지불하고 종자를 구매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오늘날의 농업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병충해에 강하고 맛도 좋은 농작물은 개발에 힘쓴 다국적기업들이 해당 종자에 대해 특허를 소유하고 있다. 그 씨앗들은 이듬해에 다시 쓸 수 없고, 그래서 농사를 계속 짓기를 원하는 농부들은 기업에 씨 값을 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도 알아야 한다.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숙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가령, 반다나 시바 같은 환경운동가는 생물의 다양성과 전통방식의 농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종자 보존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이것은 실제로도 효과를 거두어서 7000~8000개의 쌀 종자를 보존하는 데 성공했고, 꾸준히 시민 불복종 운동과 평화로운 저항운동을 펼치며 거대 기업에 맞서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하는 건,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애써 싸울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의 싸움은, 그러니까 세상 곳곳의 싸움은, 목숨을 걸기도 해야 한다. 온두라스와 같은 나라에서는 댐 건설에 반대하는 원주민들을 상대로 정부군과 기업이 고용한 용병이 거대한 폭력을 행사했고, 이 싸움의 맨 앞줄에 서 있던 젊은 환경운동가 베르타는 훗날 자신의 집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경찰은 무장 강도의 짓이라고 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암살이라는 게 명명백백했기 때문이다. 2010년에서 2014년까지 101명의 환경운동가들이 암살되었고, 그중에는 원주민들도 있었다. 베르타가 대중들 앞에서 했던 말 가운데 꼭 기억해두어야 할 이야기를 한 줄만 뽑자면 이렇다. 
 
“지금 어디에 있든,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싸워 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또 다른 지구는 없으니까요.”
또 다른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딱 하나 남은 초콜릿, 이제 또 살 수 없는 아이스크림, 다시는 출시되지 않을 한정판 디자인의 가방, 그런 것들에 우리는 마음을 동동 거린다. 
 
자, 그렇다면 딱 하나 남은 지구라면? 
 
p.s. 아이들과 함께 산책할 수 없는 봄날이 늘어가고 있다. 미세먼지 때문에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면서, 이렇게 시작하는 옛날 얘기를 생각해 보았다. 
“옛날 옛날에, 그렇게 멀지 않은 옛날에, 하늘은 파란색이었거든.” 
그래서 내린 결론은, 우리는 누구나 다 급진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누구나 다 환경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은 누구나 다 파란하늘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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