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50] 숲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

 
계절이 바뀌는 것은 대개 오감으로 체험하게 마련이다. 이를 테면, 지금 같은 계절,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점이 맞물릴 때의 공기의 변화는 살갗으로 느끼는 게 가장 정확하다. 여름의 나무들이 초록이 절정에 이른 잎을 보여주고 총천연색의 꽃잎을 피워내는 건 그야말로 시각적 풍요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잎도 꽃도 완전히 다른 톤으로 물들게 된다. 그리고 이 저마다의 계절적 변화를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숲이다. 그런 이유로 산과 강, 바다와 숲 등에 관한 책은 언제나 새롭게 읽히기 마련이다. 
 
‘숲 연구가 황호림의 세 번째 숲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숲을 듣다』는 오랫동안 숲 활동가 겸 KBS 목포 1R ‘황호림의 숲 이야기’ 진행자로 활동하는 저자의 이력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책이다. 간단한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덕에 꽃나무들에 대한 개별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가벼운 숲 산책으로 읽기에도 적당하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고, 그 게으름 때문에 꽃과 나무 여럿의 생과 사를 갈랐다. 때에 맞춰 물을 주고, 적당하게 가지를 치고, 벌레가 생기지 않는지 유심히 관찰하는 등의 일에 나는 매해 게으르다. 다만 그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이유로 계절마다 마당에 심을 화분을 사거나 나무를 심는 일을 조금씩 늘려가는 중이다. 제주에 살고 있는 덕에 숲과 바다가 가깝고, 가장 좋은 것은 바다로 나가거나 숲으로 들어가는 일일 텐데, 마당에 바다도 노을도 능선도 옮겨 심을 수 없기 때문에 그저 화분이나 사다 심는 것으로 만족하는 면이 있기도 하다. 물론 그런 것들을 가꾸는 책임은 주로 남편에게 있고 나는 한 걸음 물러서 있는 편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리 부부가 마당의 주인 노릇을 하기 오래 전부터 이미 심겨져 있던 것으로는 동백과 감나무, 금목서와 배롱나무 같은 것들이 있고, 노을이나 바다 대신 차근차근 심어 놓은 것으로는 마삭줄, 호랑가시나무, 히어리, 화살나무, 능소화 같은 것들이 있다. 
 
서툴지만 꽃나무들과 함께 생활하는 일의 가장 큰 변화는 계절의 변화에 조금 더 민감해졌다는 것이다. 우리 집 배롱나무는 다른 데보다는 거의 한 달 정도 늦게 피는데, 나는 거리에서, 남의 집 담벼락에서 배롱나무 핀 것을 보고는 우리 집 배롱나무를 재촉하기도 하고 채근하기도 했다. 엊그제 예쁘게 꽃을 피우고 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배롱나무 꽃 피는 시기와 그 꽃 색깔을 알기 전에는,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날 무렵 배롱나무 덕분에 마음이 살랑거리는 경험을 하기 전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나는 향기에 둔한 사람인데, 가을이 오면 목서 향을 맡을 생각에 자꾸만 코를 킁킁 거린다. 목서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할 때는 그 향을 못 맡다가 거리가 목서 향으로 진동을 할 때라야 알아차린다. 드디어 목서구나!
 
무책임하게도 잘 돌보지 못한 나무에 대해서도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히어리. 화분에 심어두었던 히어리가 미안하게도 이번 여름에 말라버렸다. 히어리는 그 이름 때문에 오래 기억해두고 싶은 나무였는데, 아마도 그 이름 때문에 더 그랬을 거다. 『숲을 듣다』에 따르면, 히어리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꽃잎이 얇아 빛을 투과하거나 꽃잎에 빛이 반사되면서 하얗게 보인다고 해서 히어리. 오 리마다 오리나무를 심고, 십 리마다는 시무나무를 심고, 십오 리마다 이 나무를 심어서 시오리(십오리) 혹은 히어리. 큰 산자락의 북면 사면에 십 오리 간격으로 출현하는 것처럼 보여서 시오리(히어리). 일본에서도 최고의 정원수로 알려진 이 히어리는 이른 봄에 노랗고 화사한 꽃을 피우고 경관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하는데, 나는 어쩌면 내년 봄에 그 꽃을 볼 수 없을지 모르겠다. 
 
p.s. 마당에서 숲의 일을 짐작하는 것은 그나마 평화롭다. 제주의 숲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자면 잃어버리는 게 그저 히어리 한 그루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공항으로 잃어버리게 될 오름들이나 오름 한 가운데에 예정된 동물원 같은 것들 때문에 그렇다. 회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기에 적당한 때는 그것들을 잃기 전일 텐데 말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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