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56] 내일을 어떻게 할래?

 
유례없이 따뜻한 겨울을 지나고 있다. 봄 햇살이 드는 기분이라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던 날도 여러 날 있다. 내가 사는 제주는 다른 어느 곳보다 더 했다. 꽃을 다 떨구었던 금목서가 다시 피어나기도 했고, 동백이 이르게 피어 오래도록 빨갛기도 했다. 며칠 기온이 뚝 떨어진 날이 있긴 했는데, 그걸로 계절을 증명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어깨를 움츠리고 다니지 않아도 좋은 겨울날, 봄 같은 겨울날, 그런 것들은 화사하게 빛났는데, 그래서 지구적으로는 더 비극적이었다. 지난 해 여름 무더위가 한창일 때, 올 겨울은 극심한 한파와 폭설이 예상된다는 기사를 읽었더랬다. 그 기사 역시 지구의 이상 기후 현상을 경고하기 위해서 마련된 것이었다. 서너 달 후에 다가올 계절을 예측할 수 없는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까. 인간들이 이 땅에 이루어놓은 비인간적으로 눈부신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의 불가능성 앞에서 패배를 선언해야 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이야기』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다큐멘터리 영화 『월성』을 언급해도 될 것 같다. 영화 홍보를 위해서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했던 월성의 ‘반핵 할머니’ 황분희 씨의 이야기는 가슴을 울렸다. 『월성』에도 나오지만 할머니의 어린 손자는 성인의 두 배 이상의 피폭 수치를 기록했다. 할머니는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전문가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우리가 정수기를 좋은 걸로 바꿀까요? 물을 끓여서 마시면 애가 괜찮을까요?” 라고 했다는 그 대목을 나는 여러 번 다시 돌려 봤다. 여러 지인들에게 그 장면을 여러 번 알려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울컥했다. 묻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정수기나 끓인 물 같은 게 소용이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묻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인간으로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 정수기나 끓인 물에 들이는 노력이 전부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나의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그런 상황일 때 나는 물을 끓이는 것 말고, 어떤 대책을 찾을 수 있을까. 황분희 할머니가 전문가에게 들었던 대답은 “물을 사서 드시죠.”였다. 
 
우리는 살던 대로 사는 것 외에 크게 다르게 뭔가를 할 수가 없는데, 그런 걸로는 위험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 어쩌면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이야기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이야기』에는 결국 우리가 생활을 혁명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쓰고 있다. 물을 끓이는 게 아니라, 월성의 주민들의 이주부터 발전소를 중단시키는 일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안다. 
 
인간은 누구 하나 영생의 욕망 없이 살지 않는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편리하게, 더 풍족하게, 더 빠르게 이 세계를 누리겠다는 생각은 결국 영생의 욕망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내가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을 나의 아이가 성취하기를 바란다. 이전 세대를 능가하는 과학기술의 발전 앞에 바치는 감탄과 환호는 그런 종류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다. 그래서 우리가 누리는 현실은 겨울의 시절에 찾아온 봄 같다. 봄 같은 겨울에 꽃이 지지 않는 이번 겨울은 마치 상징 같다. 낡은 발전소들은 부지런히 전기를 생산하고, 대부분의 농작물들은 비료로부터 자라며, 고층 건물들은 곳곳에 세워지고, 자동차는 빠르게 달리는데, 우리는 하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 부족끼리의 경쟁을 멈출 생각이 없이 경쟁에 눈이 멀었던 라파누이 주민들은 상대 부족보다 더 큰 모아이를 만들기 위해서 야자수를 끝도 없이 베었고, 농사지을 토양을 잃어버렸다. 
 
“라파누이는 모아이를 세우며 생존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신은 풍요로울 때 화답했을 뿐인데, 21세기는 거대해진 과학기술이 신이다. 과학기술은 석유 없는 내일을 어떻게 이끌어갈까?”  
 
마당의 동백이 일찍부터 피었고, 오늘은 매화가 봉우리를 틔웠다. “내일을 어떻게 할래?”라고 묻는 것 같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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