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80] 몇 센티미터의 싸움

 
수학여행을 떠나던 버스 안이었다. 저기 봐, 돼지! 누군가 소리를 질렀고, 모두들 돼지를 보려고 창가에 붙었다. 버스 옆으로 트럭이 달리고 있었다. 트럭 짐칸에 몇 마리인지 셀 수 없는 돼지들이 몸을 다닥다닥 붙이고 서 있었다. 뒤돌아 있는 돼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건 우리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버스 안의 우리들은 돼지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림짐작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중이었고, 그들은 죽음으로 떠나는 중이었겠지. 돼지의 눈이 생각보다 너무 예쁘고 슬프다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는 살아있는 돼지는 처음 봤다고 했다. 돼지는 돼지고기와 다르구나,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버스는 트럭을 앞질렀다. 맨 뒷좌석 창문에서는 트럭이 멀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돼지는 등을 돌려 우리를 볼 수 없었다. 그에게 그럴 마음이 없기보다는 그럴 공간이 없었다.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는 우리가 보았던 돼지들이 도착한 곳, 바로 그 도살장에 관한 이야기다. 수의사 라나 구스타브은 스웨덴 국립식품청의 수의직 공무원으로 도살장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일기를 쓴다. 근무 첫날 그가 쓴 도살장의 풍경은 이렇다. 
 
“적지 않은 돼지들이 다리를 전다. 나는 습관적으로 녀석들의 동작을 동물병원에 온 강아지 대하듯 해석한다. 다리를 몇 개나 다쳤나? 어느 다리를 다쳤나? “상당히 심하게 저네요.” 내가 말한다. 안데르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죠. 수송 시간이 너무 길어서 다리 근육이 뻣뻣해질 때가 많아요.” (중략) 한 녀석은 발굽이 너무 길고 관절이 아픈 모양이다. 기사가 녀석을 트럭에서 몰아대자 허둥대던 녀석이 넘어지면서 주둥이를 땅에 박는다. “쏴버려야겠네.” 하역 담당인 벵크트가 볼트총을 가지러 간다. 그새 녀석은 무사히 트럭을 내려와 불안한 다리로 비틀비틀 앞으로 걸어간다. 벵크트가 돌아오자 마음먹은 대로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다. 녀석의 눈 흰자위가 번쩍이고 눈빛이 불안하다. 벵크트가 녀석의 이마에 볼트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자 녀석의 몸이 뻣뻣해지다가 털썩 쓰러진다. 벵크트는 장화를 신은 발로 녀석을 차고 옆으로 뉜다. 그리고 칼을 꺼내 목 뒤쪽을 찌른 다음 가슴 방향으로 긋는다.”
 
일기는 85일간 이어진다. 현장의 잔혹한 도살과정을 매일 기록하고 도살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의 일상을 쓴다. 살아있는 소의 연골을 자르고 도축하는 꿈을 꾼 날에는 그것도 역시 일기로 남겨둔다. 그는 채식주의자이지만 육식을 하는 타인을 비난하지 않는다. 동물을 반려용과 식용으로 나누는 기준에 대해서 고민하지만, 정답이나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다만 기록할 뿐이다. “그것이 우리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이 세상에서 증인으로 산다는 것?” 정원이 열세 마리인 방에 열네 마리가 들어있을 때, 그의 싸움은 시작된다. 내일이면 도축될 돼지들이지만, 굳이 두 마리를 다른 방으로 옮겨놓으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나의 직업은 몇 센티미터를 확보하려는 투쟁”이라고 그는 쓴다. 
 
수학여행 버스에서 만난 슬프고 예쁜 눈의 돼지는 이후로도 종종 떠오르지만,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으며 그들의 동물권에 전폭적으로 동의하지만, 나는 여전히 육식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경멸하고 자조하면서, 고기를 굽는다. 그것이 잡식동물의 비애라고 너스레를 떤다. 이제 그날의 돼지 말고도 라나 구스타브손의 85일 중 어느 날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 가능성을 행간에 묻어둔 증언자의 슬픔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시스템은 말 그대로 살풍경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혹은 살풍경에서 생명으로 존재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으로 남을 따름이다. ‘몇 센티미터를 확보하는’ 싸움을 닮게 될 것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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