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83] 그의 두더지와 자연의 일

 
“나는 늙었고, 많은 일들을 해왔다.” 자기 삶을 이렇게 회고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나는 고지서 요금을 내기 위해, 그리고 창의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정원사가 되었다.” 이런 경우는 드물다. ‘정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피상적인 이해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거기에 어떤 낭만성과 전원적인 삶의 풍경 같은 걸 상상해 볼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하자면, 섣부르다. “어떤 사람들에게 정원 일이란 대체로 생명을 죽이는 일이다. (…) 죽이는 일은 어렵게 다가왔다. 하지만 결론은 그들이 죽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였다. 내게는 할 일이 있었고, 나는 그 일로 나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이런 지점에서 자기의 노동과 생을 회고하는 책을 읽는 일은 매우 매혹적이다. 봄꽃이 피고 지는 기간 동안에 읽을 수 있다면, 꽃이 지는 풍경까지 완벽하게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 『두더지 잡기』는  늙은 정원사의 두더지 잡기 노동에서 비롯된 자연과 삶에 대한 성찰적 기록이고, 자기의 삶과 두더지의 삶이 얼마나 서로를 반영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속 깊은 회고다. 
 
영국의 전통적인 직업군 중에는 두더지 사냥꾼이 있다. 작가 헤이머는 열여섯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게서는 쫓겨나, 그저 하염없이 걷고 숲과 강에서 생활하며 나무 아래에서 자는 홈리스의 생활을 했다.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 삶은 자연에서 분리돼 본 적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생소할지언정 두더지 사냥꾼이라는 직업은 영국에서는 제법 오래 전부터 전통적인 직업군에 속했고, 안정적인 시골생활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직업이기도 하다. 두더지의 활동이라는 것이 땅을 헤집어 놓아 정원을 망치기도 하고,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더지 잡기』의 흥미로운 대목은, 두더지와 두더지 사냥꾼이 하나의 세계에서 평범하게 존재하는 자연의 일부라는 점을 매우 ‘자연스럽게’ 드러낸다는 것에 있다. 그 자연스러움은 곧 장엄함과 분리되지 않는다. 땅 속에서 어두운 굴을 파는 두더지에 대해서 상상해 보면 이 장엄함은 쉽게 짐작이 된다. 
 
두더지는 힘이 세고, 한쪽에 엄지가 두 개씩 달려 있으며 머리만큼 손이 넓적하다. 쌩쌩한 두더지는 두더지 사냥꾼의 꽉 움켜쥔 손을 손쉽게 벌려 도망을 칠 수도 있다. 힘이 세지만 벨벳처럼 부드러운 이 동물을 잡기 위해서 두더지 사냥꾼에게 필요한 것은 두더지 이상의 힘이나 교활함이 아니다. 흙과 닮아가는 일이 필요할 따름이다. 헤이머의 표현을 따르자면 배경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두더지 사냥꾼 헤이머는 두더지 언덕의 흙으로 손을 씻는다. 자기의 체취를 숨기기 위해서 말이다. “흙의 한 줌 한 줌이 딱정벌레, 지렁이, 수억 마리의 미세한 벌레들, 선충류, 점균류, 그리고 썩어가는 식물을 먹거나 서로를 잡아먹는 박테리아와 곰팡이 등의 생명들로 우글거린다.” 또한 두더지를 잡으려 애쓰는, 흙으로 씻어낸 사냥꾼의 손바닥 역시 거대한 유기체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것들을 우리는 자연의 일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당연이 자연의 일에는 괴로운 자각까지 동반된다. “매일 하루가 끝날 때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는 다시 인간의 가죽을 걸친다. 어떤 것들은 오직 다른 것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내가 망가뜨렸으나 자신을 치료한 나의 무당벌레와 함께 있고 싶다. 서로 자유롭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는, 부인과 남편과 고양이로 이루어진 우리의 소박한 삶. 나의 가족. 이 말이 내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뒷모습에 대해서 결코 기록할 수가 없지만, 우리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두더지를 사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두더지의 형상을 본다. 그런 것들을 보지 않고 어떻게 자연의 일과 우리의 삶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까.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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