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184] 간절히 바라옵건대, 이주

 
‘월성’에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행정구역 통합으로 월성이라는 지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갈 수 없다. 그런데 여전히 월성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월성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례로 다큐 필름 『월성』은 그것을 엿보게 해준다. 월성핵발전소 주변 마을의 사람들은, 월성에 산다! 필름을 보는 내내 나는 월성 주민으로 사는 일을 상상하는 데에 실패했다. 다만 특정 장면을 여러 번 돌려 보았을 뿐이다. 그때마다 나는 좀 울컥했다. 
 
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나아리 주민 황분희 할머니 주도로 이뤄진 지역주민의 삼중수소 검출 검사 결과, 어린 손자에게서 성인 이상의 결과치가 나왔다. 이때 황분희 할머니는 직접 등장하지 않고, 대신에 김익중 교수와의 인터뷰가 나온다. “좋은 정수기로 정수한 물을 먹이면 괜찮겠냐고 하더라고요. (…) 아니면 오래 끓여 먹으면 좀 낫냐고도 했어요.” 누구라도 떠올릴 수 있다. 간절한 눈동자와 간절한 목소리를,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그 모든 절박함과 절망감을. 
 
이 장면은 『원전마을』에도 등장한다. 그가 들려줄 수 있는 대안이란 이런 거였다. “하루라도 빨리 이사하거나 최소한 지하수 대신 생수를 사 먹는 것밖에는 없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박박 긁어모은 일말의 헛된 희망, 그게 정수기나 끓인 물이었을 거다. 생수를 사먹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떠맡은 누군가는 그 어떤 것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싸움이라는 걸 한다. 이웃들은 자꾸 아프고, 가족력 없는 암이 동시다발로 발생하고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탈원전은 고사하고 이주 정책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싸움. 그런 싸움은 삶을 건다. 나의 삶과 아이의 삶을 건다. 그래서 좀처럼 철회되지 않는다. 
 
아무런 쓸모가 없는 상상이지만, 원전이 한강변에 즐비했다면 문제 해결의 양상은 달랐을 것이다. 탈원전 대책이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을 것이고, 주변 아파트 주민들의 이주 대책은 지자체의 최우선 쟁점으로 다뤄졌을 것이다. 서울 시민들뿐만 아니라 모두의 소원이 ‘간절히 바라옵건대, 이주’가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2021년 8월, 천막농성 7주년 행사를 기획할 때 쓰인 문구였다. 핵발전소와 초고압 송전탑을 월성 같은 곳에 맡겨두면서도, 이 마을 사람들의 생존 문제는 어느 지역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갈등의 부스러기 정도로 여긴다. 혹은 ‘주민의 감성적인 불안’으로 치부한다. 이 발언은 2021년 초 삼중수소 누출 관련 국회의원 간담회장에서 월성원자력본부 본부장이 직접 한 발언이다. 우리의 현주소는 이렇다. 
 
그리고 상황은 더 나빠졌다. 2022년 현재, 우리는 원전이 아니라 탈원전이 폐기될 상황 한 가운데에 서 있게 되었다. 탈원전을 선언한 새 정부는 더할 나위 없이 완고하다.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의 주인공 에린 브로코비치는 2021년 3월에 『슈퍼맨은 오지 않는다』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절망적이다. 난 서른 살에 이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 61세인데 똑같은 얘기가 되풀이된다. 더 나빠졌다.” 세상은 더 나빠졌고, 사람들은 여전히 싸운다. 핵발전소 주변지역 갑상선암 피해 주민 국회 증언대회(2020년)에 나왔던 발언의 일부를 옮겨두고자 한다. 이 대목은 소리 내어 읽자. 우리가 이들의 몸에서 전기를 뽑아 쓰고 있다. 
 
“월성핵발전소 옆에서 34년을 살며 얻은 것은 오로지 몸의 병, 갑상선암 뿐입니다. 34년을 살면서 거기서 내 자식을 키웠습니다. 그 애들도 저와 똑같은 길을 걷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또 내 손자들은 거기서 태어나며, 엄마 뱃속에서부터 피폭을 당한 것 같습니다. 내 아이들도 이런 병에, 나와 똑같은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아무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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