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 83] 전등 뒤에 숨은 지구적 공포

잠들 때 머리맡에 등을 켜놓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스탠드가 아니라면 그냥 형광등 불을 훤히 밝히고도 잔다. 전기세 아깝다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걱정하면서도 영 그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것은, 그게 어둠에 대처하는 심리적 위안이기 때문이다. 불을 밝히면 조금 더 안전할 것 같은 마음이 어머니의 잔소리를 늘 이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걱정하는 만큼 전기세는 아주 비싸지는 않다는 것! 꾸준히 전기세는 인상되고 있고, 기업은 제대로 된 요금을 내지 않고 더 싼값에 쓰기에 그에 대한 불만은 부글부글 끓지만, 어쨌든 객관적으로 대한민국의 전기세는 유독 싸다. 생산원가 이하로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에 인색한 대한민국이 유독 전기에 이토록 너그러운 까닭은 무얼까?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우리나라는 핵발전소를 주로 1980년대에 건설하였다. 갑자기 많아진 핵발전소 때문에 전기가 남아돌게 되었다. 그래서 정부는 전기 수요를 증가시키기 위하여 1980년대 이후 아홉 차례에 걸쳐서 전기요금을 인하하였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가정용보다 더 많이 인하하여 전기 수요를 진작시켰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따라서 전기가 넘쳐나니까 요금이 싸진 것이다. 그렇다면 전기에 관해서만큼은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여기에 큰 함정이 있다. 전기가 넘쳐나게 된 까닭을 잘 알아야 한다. 저자의 말을 따르면 전기의 과잉 공급은 핵발전소 건설에 따른 결과일 터, 그렇다면 핵발전소 건설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값싼 전기를 누리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소양이 될지도 모른다. 저자는 줄곧 핵발전소라고 하는 그것이 바로 원자력발전소인데, 유독 우리와 일본만이 ‘원전’과 핵발전소를 섞어 쓰고 있다고 한다. ‘핵’이라는 주요 핵심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아무튼 이 원전을 통해서 생산하는 전력이 고작 30퍼센트라는 사실을 기억하기로 하자. “많이 놀라셨죠! 원전의 전기 생산량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돼서!”(개그콘서트의 ‘황해’ 버전으로 읽어주시길!)
 
“지나친 원자력 홍보 때문에 70퍼센트 정도” 되리라 막연히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그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그 70퍼센트는 화력발전이 담당하고 있으며 태양광, 풍력, 수력 등은 1~2퍼센트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원자력발전을 홍보하는 수준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 정부는 전 세계적으로도 원자력발전에 목을 매고 있는 나라로 꼽힌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독일·스위스·벨기에·대만 등의 나라가 탈핵을 결정하였다. 대만의 경우 명시적인 탈핵 선언은 없었지만 원전을 새로 짓거나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 한편 건설중인 원전도 국민투표를 통해 완공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원전을 가동하지 않고 있다가 재개를 선언했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민 여론에 따라 원전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세계적인 추세가 탈핵과 재생가능에너지의 개발로 나아가는 데 유독 대한민국은 그 흐름과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려 한다. 
 
저자의 재미있는 비유를 인용해보자. 이름하야 “열린 수도꼭지 이론”이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갔다 와 보니 아파트가 온통 물로 흥건하였다. 주위를 살펴보니 싱크대의 수도꼭지가 열려 있었다. 이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급한 대로 물을 퍼내는 일일까, 아니면 수도꼭지를 잠그는 일일까? 상식을 가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수도꼭지부터 잠그고, 그 다음에 고인 물을 퍼낼 것이다.”
 
여기에 험한 비유를 덧붙여보자. 누군가 침대 위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신음하는 것을 발견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침대 시트를 가는 것일까 아니면 119에 신고하고 상처를 살피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핵 정책은 상식 없는 무모한 질주로 그 속이 채워져 있다. 수도꼭지를 잠그기보다는 물 퍼내기에 바쁘고, 상처를 돌보기보다는 겉모습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형국이다. 저자의 섬뜩한 “예언”을 인용한다. 저자는 스리마일(미국, 1979), 체르노빌(소련, 1986), 후쿠시마(일본, 2011) 핵발전소 사고의 공통점이 무얼까 고심하다 다음과 같은 아주 단순하고도 명확한 사실을 깨닫는다. “핵 사고는 앞으로도 확률대로 일어날 것이다. 즉, 다음 핵사고 역시 원전 개수가 많은 나라에서 일어날 것이다.” 1위 미국(104개), 2위 프랑스(58), 3위 일본(54개), 4위 러시아(32개), 5위 한국(23개). 프랑스와 한국에는 다행히도 아직 핵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그 무엇으로 안전을 장담하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찾아야 할 위안은 베갯머리의 전등이 아닐 터이다. 심야전기의 플러그 뒤로는 아주 치명적인 “지구적 공포”가 웅크리고 있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손쉽게 얻는 데서 위안을 얻지 말기를! 가장 핵심적인 위험 세계가 그렇게 불을 밝히고 있으니.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ppilir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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