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자연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자연스러운 자연, 그런 걸 가르쳐줄 수 있을까. 그런 류의 일들은 언제나 고민거리인데, 그 해답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엄마나 아빠들이 그 고민에서 벗어나는 건, 답을 알게 되어서가 아니다. 답은 여전히 모르고, 그렇게 모르는 시간 동안에 아이는 그 고민을 자기의 몫으로 껴안을 만큼 자라버린다. 그래서 자연에 대해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하는 고민은 슬쩍 옆으로 치워두게 된다. 『조심! 우리는 살아 있어요』 같은 책을 만나게 되면, 그렇게 치워뒀던 고민들이 재등장하는 기분이다. 
 
집 앞 놀이터에는 딱 두 그루의 벚꽃나무가 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다른 종이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아는 홑벚꽃 흩날리는 벚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홑벚꽃이 질 무렵에 만개하는 겹벚꽃나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벚꽃이 연출하는 각기 다른 봄 풍경에 정신이 아찔해지곤 하는데, 두 번의 봄을 맞는 기분이기도 하고, 두 개의 봄을 사는 기분이기도 하다. 자연의 변화에 무심한 나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 두 나무의 차이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아이의 질문에 당황했다. 
“저 꽃은 뭐야?”
왕벚나무에서 피어난 겹벚꽃은 조금 더 화려하고 색이 진하고 늦게 만개하여 늦게 지는데, 그 짤막한 답을 아이에게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글쎄, 저게 뭐지?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어, 라니. 그것은 솔직한 대답이지만, 동시에 부끄러운 대답이고, 이런 경우에 잘 모르는 일은 대개가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아이는 겹벚꽃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모양으로 피고 지는 벚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일 거다. 알았으니 그걸로 되었지만, 그 자연스러운 자연의 현상이 어떻게 아름다움이 되어 우리의 골목에, 우리의 생활에 진입하는지를 잘 말해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집 앞 놀이터에서 벚꽃이 두 번 피고 질 때면, 그런 아쉬움도 두 번씩 피고 진다.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그 바람에 실려 꽃씨가 날아다니고 새가 울고 웃는, 그런 일들이 단 하루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매일 일어나는 그 일들에 대해서, 숲에서 벌레들이 지내는 하루에 대해서, 이제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동물과 식물이 있다는 게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우리는 말하지 않고 지나가기 십상이다. 그런 일들이 내일 당장 우리에게 아주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텍스트보다 이미지가 더 압도적인 이 책에는 제법 많은 질문이 등장한다. 
자연은 어디에나 있을까?
우리는 자연이 정말로 필요할까?
기술이 자연보다 뛰어날까? 
사람도 동물일까?
사냥한 먹이를 뾰족한 가시에 꽂아 놓는 붉은등때까치는 잔인할까?
살았는지 죽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어?
 
대답들은 저마다 다를 텐데, 정답에 가까운 어떤 것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정답에 가까운 그것들은, 실상은 문장으로 정리되기보다는 어떤 풍경으로 존재할 것이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고, 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가능한 단어나 문장을 찾아 ‘자연스러운 자연’을 교감하느라 애쓰는 그런 풍경으로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어른들은 이 책의 맨 첫 장을 여러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끈기 있게! 그것까지 매우 자연스럽게 당신과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끈기 있게 동물과 식물, 버섯의 이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름을 알면 더욱 많이 느끼고 깨닫게 된다고 아버지는 믿으셨지요.”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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