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에서 영덕의 목소리가 들린다

서울환경연합 사무처 활동가들의 11월 10일 영덕 출장이 결정됐다.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투표장 업무를 돕기 위해 전국의 환경연합 활동가 파견의 일환이었다.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그 위험성을 직접적으로 느끼기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더 컸다. 이와 함께 에너지 생산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내세우며 핵발전소 유치를 지지하는 이들에 대한 의문점이 생겼다. 핵발전소가 정말 안전한 것일까? 어떻게 그 안전성을 보장하는가, 안전성을 유지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어떤 해결책을 갖고 있는가. 왜 주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가.
영덕 출장을 앞둔 나는 이러한 답답함과 궁금증에 20세기 최악의 참사라고 여기는 체르노빌 원전사고(1986년 4월 26일)의 역사를 기록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집어 들었다.
 

"가까이 가지도 마세요"

 
체르노빌 원전 RBMK-1000. ⓒKamil Porembiński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책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하는 ‘목소리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도서다.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저자의 고향이기도 한 체르노빌 사건의 최대 피해자, 벨라루스의 사람들이다. 수십 명의 인터뷰 대상자들의 이야기 중 첫 번째 ‘사람의 외로운 목소리, 하나(알레시예비치 2015, 30-51)’가 가장 강력한 여운을 남겼다. 체르노빌 사고 직후 진압에 나선 젊은 소방관이었던 남편을 잃은 아내에 대한 이야기다. 스물세 쪽에 달하는 그녀의 인터뷰 내용을 읽은 뒤 마음이 먹먹해져 더는 책을 읽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신혼의 단꿈에 빠져있던 부부. 아내는 시댁 나들이 직전 급한 호출로 출동을 나간 남편이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임신부였던 그녀는 남편을 찾아 모스크바의 병원으로 갔다. 본능적으로 임신한 사실을 알려서 안 될 것 같다고 느꼈다. “포옹도 키스도 금지에요. 가까이 가지도 마요(알레시예비치 2015, 35).”라는 의료진의 경고에도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 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이런 아내의 지극정성에도 급성 방사선 장애치료를 받던 남편은 14일 만에 죽음에 이른다. 두 달 후 모스크바의 남편 묘를 찾은 날 그녀는 배 속의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는 간경화증, 선천성 심장병에 걸린 상태였고 간이 28뢴트겐에 노출된 상태였다. 아이는 태어난 지 4시간 만에 사망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시신도 딸아이의 시신도 받을 수 없었다. 그녀가 사랑한 두 사람은 방사능 폐기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족을 잃은 후 현실과 비현실에서 동시에 살아간다는 그녀가 한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딸이 나를 살렸다. 내 딸이 방사선을 모두 끌어보아 나를 살렸다. 그렇게 작은 아이가······(알레시예비치 2015, 49).”
 
체르노빌 근처 프리피야티 마을은 유령도시가 됐다. 사진은 프리피야티 안 학교 운동장 ⓒTimm Suess
 
사고 당시 발생한 방사능 낙진은 체르노빌 주변에 있는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으로 퍼져 많은 지역을 오염시켰다. 그중 벨라루스는 전 국토의 23퍼센트 가량이 방사능에 오염되며 70개 마을이 소실되었고 체르노빌 사고 이후 암 환자가 74배 증가하며 가장 큰 피해국이 되었다. 원전 사고로 많은 사람이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쫓겨나야 했고 가족을 잃고 고통 받게 됐다. 어떤 이는 징병을 당하고 어떤 이는 경제적인 이유로 높은 임금을 준다는 체르노빌 사고 현장으로 자원을 했다. 그러나 사고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안전장비가 지급되지 않았고 납 앞치마 같은 특수한 도구는 일부에게만 지원됐다. 해체 작업자는 평균 33세로 사고 후 6년간 5722명이 사망했다. 사고지역 인근의 민간인 2510명이 사망했고 민간인 43만 명은 암 발병, 기형아 출산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알레시예비치 2015, 24-27).
 
그러나 정치인들은 언론을 통해 사건을 은폐하기에 바빴다. 이와 상반되게 용기와 책임감을 느낀 몇몇 전문가들이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을 알리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명확한 사고 경위의 분석, 책임과 해결은 없었다. 소련은 체르노빌 재앙 직후 사태를 미봉하기에 급급했다.
 

핵발전소 밀집도 세계 1위 한국

 

그렇게 체르노빌에 대한 공포가 잊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인접 국가인 한국은 다시금 핵 발전의 안전성에 의문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의 자랑스러운 냄비근성은 원전사고의 위험성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 한국은 핵발전소 소유 세계 6위(21기)로 국토 면적대비 핵발전소 밀집도는 세계 1위이다. 박근혜 정부는 핵발전소 2기 증설 계획도 발표하였다(곽재훈 2015, 박영복 2014).
 
지난 11월 11일과 12일 양일간 진행된 영덕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결과 유치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정부는 군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신규 핵발전소 선정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세계의 재앙인 원전 사고를 두 번이나 지켜본 오늘의 한국 정부와 30년 전의 소련 정부는 시간이 무색하게도 참 같다. 국민의 공포를 보듬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 핵발전의 명(明)만 말해줄 뿐, 암(暗)은 감추고 있다. 30년 전 소련 정부는 체르노빌 사건을 겪은 이들에게 ‘사고에 대해 말하지 마라. 기록하지 말라’고 하였다. 한국의 정부는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심지어 자발적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실시한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투표를 깎아내리고 있다. 선관위는 외면하고 행안부와 산업부는 주민투표로 핵발전소 유치를 결정할 수 없기에 투표는 효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공정하지 못한 언론의 보도까지 가세했다. 그러나 정부는 안전한 에너지를 원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전력수요 전망을 비롯해 공정하고 정확한 정보들을 공개해야 한다.
 
인류는 체르노빌 사고를 통해 핵사고가 발생 국가만이 아닌 인접 국가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로써 한 국가 내 핵사고 발생 시 발전소가 있는 지역만 피해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예상하게 한다. 물론 발전소 설립 지역의 피해가 가장 클 것이다. 그러나 체르노빌 사고로 인접 국가가 방사성 폐기물에 오염됐듯이 국가 내 다른 지역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탈핵 운동, 탈핵발전소 운동을 더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해서는 안 된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모든 국민이 에너지, 핵발전소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이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말이 있다.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기만 하면 술술 나오는 전기. 이렇게 편하게 전기를 쓰는 동안 저기 저 다른 지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전기가 발생하는 방식과 결과가 온전한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제2의 체르노빌이 발생해서는 안된다

 

 
알렉시예비치는 단지 체르노빌 사건 당시의 상황과 그 여파를 알려주고자 이 책을 집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겁을 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녀는 기록을 통해 미래에는 제2의 체르노빌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인 체르노빌 사고의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사고가 난 지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벨라루스인들은 원전사고라는 주홍글씨를 새긴 채 살고 있다. 그들의 삶을 보고도 영덕 주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있을까. 핵발전소 유치를 가열하게 찬성할 수 있을까.
 
서문 말미 작가의 마지막 문장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을 미래를 닮았다(알레시예비치 2015, 8).”

 

글 최유정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 hutan@kfe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