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대를 위하여 159] 행진

효자로는 경복궁 서쪽 돌담을 따라 난 1300미터 정도의 왕복 4차선 도로입니다. 그 길을 따라 적선동, 통의동, 창성동, 효자동, 궁정동 같은 오래되고 작은 마을들이 이어지고 그 끝에 청와대가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골방은 효자로 초입의 4층 꼭대기층입니다. 일본 강점기 때 지어져 개축을 거듭한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건물이지만 경복궁 서쪽 정원 넘어 멀리 북악산 풍경과 세종로 큰길까지 시원하게 내다보이는지라 시쳇말로 ‘뷰 하나는 끝내줍니다.’ 
 
제 기억에 이 길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3년 전 세종로와 사직로를 가득 메운 촛불 든 이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행진하던 때입니다. 그때 밝힌 평등과 평화와 공정과 정의의 불빛 아래 새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그렇다고 효자로를 행진하는 이들이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노동에서 평화까지 인권에서 환경까지 우리 사회 각 부문의 주장과 이슈가 그 길 위에서 행진할 뿐 아니라 태극기와 미국기를 양 손에 들고 새마을 노래, 멸공의 노래, 시국 이슈를 담아 개사한 찬송가를 부르는 이들의 행진도 이어집니다. 행진의 백가쟁명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진전하는 한 결과이자 양상이거니 싶어 흔쾌한 마음도 듭니다. 
 
여러 행진이 집중되는 주말 내내 그들의 다양한 구호가 들리고 행진에 참가한 이들의 면면이  자연스럽게 사무실 창밖으로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행진하는 이들이 내건 주제와 이슈에 따라 극적으로 참가자들의 성별과 연령대가 갈리는 걸 보게 됩니다. 남북평화, 동물권, 여성과 소수자 인권, 기후정의, 환경과 생태계 보호 같은 주장과 이슈를 내건 행진 참가자들은 여성과 30대 이하 연령 참여자들이 다수입니다. 그저 한 효자로 변 사무실 붙박이의 관찰이니 그 무슨 사회학적 의미를 두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미래의 변화에 더 수용성이 높은 삶을 살자면(그러니까 꼰대 소리 안 듣고 살려면) ‘청년과 여성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겠구나!’ 슬며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시대정신은 당대의 구성원 대다수 또는 사회권력의 주류 속에 있다는 말에 전면적으로 긍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보다 오히려 현실적 소수이되 자기 집단보다 더 큰 사회적 자아의 이익(공익) 실현에 민감한 이들과, 그들의 목소리 속에 있다고 믿습니다. ‘과거와 겹친 현재를 살 것인지, 미래와 겹친 현재를 살 것인지’ 매 주말 효자로를 행진하는 시민들에게 질문 받습니다. 답하고 싶지 않다거나 ‘살기 바쁜데 무슨…’ 같은 회피와 면박이 아니라 적어도 그 질문에 답하려 애쓰는 시간이 우리의 현재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여러분, 지금 어떤 행진의 대오 속을 걸어가십니까? 어떤 현재를 살고 계십니까?
 
 
글 /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