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대를 위하여 161] 민폐와 적폐 사이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다. 한 달 뒤인 4월 일본 정부는 어린이와 임산부를 포함한 일반인 전체의 방사선(이온화방사선) 피폭허용선량을 기존보다 20배 올린 연간 20밀리시버트(mSv)로 상향 조정했다. 국제방사선방어위원회(ICRP)가 권고한 ‘민간인 이온화방사선 피폭허용선량’은 1mSv이다. 일본 정부가 상향조정한 20mSv는 ‘핵발전소 작업자의 피폭허용선량을 5년 동안 100mSv’로 정한 ICRP 권고 선량을 단순히 5로 나눈 것이다. 이렇게 상향 조정된 기준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더 놀라운 일은 2013년 11월 일본정부가 방사선량 측정기준을 기존의 ‘공간’ 측정치 기준에서 ‘개인’이 신체에 장착한 방사선량 측정기에 계측된 수치를 기준으로 피폭선량 측정기준을 바꾼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보다 최소 67퍼센트 이상 최대 86퍼센트까지 피폭선량이 낮게 측정된다. 물론 실제 인체 피폭과 상관없는 기준치 놀음일 뿐이다. 일본 정부는 국제 기준보다 20배 높고, 공간 기준보다 최대 86퍼센트 높은 피폭도 정상으로 치는 피폭선량 기준치 놀음으로 일본 국민과 세계시민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힌 일도 할 모양이다. 2018년 8월 일본정부는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 처리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능 오염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염수처리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해왔다. 그리고 지난 12월 23일 오염수처리대책위원회 전문가 소위원회는 ‘오염수에 물을 타서 해양에 방류(1안)’하거나, ‘오염수를 끓여 수증기로 방출하고 남은 핵물질만 처리(2안)’하기로 결정했다. 인간에 대한 테러에 이어 자연에 대한 테러도 공식화한 것이다. 물 타기를 해도 핵물질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방사선 오염수가 태평양과 인접국의 방사선 안보를 위협할 것은 분명하다. 국제적 민폐를 저지르는 짓이다.
 
일본의 국제 민폐를 비난하며 ‘우리는 사고가 없어 다행’이라 자족할 때가 아니다. 2019년 12월 24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계속된 탈핵시민들의 요구에 굴복해 ‘월성1호기 영구정지’를 의결했다. 늦었으되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본래 월성1호기는 30년 설계수명이 만료된 지난 2012년에 퇴출됐어야 한다. 원안위가 2015년 ‘10년 수명연장’을 승인한 탓에 7년이나 퇴출이 미뤄지면서 탈핵·에너지 전환의 속도 또한 지체됐다. 
 
월성1호기 영구정지 결정만으로는 부족하다. 한빛핵발전소 격납건물에 1.5미터가 넘는 역대급 공극을 비롯한 수백 개 구멍이 났어도 ‘시멘트로 메우면 안전’하다는 안이한 발상이 수용되는 현실은 또 다른 핵산업의 적폐 사례다. 노후 핵발전소의 정상 퇴출을 7년이나 막아 세운 몽니와 구멍 난 핵발전소도 괜찮다는 안전불감증이 ‘지금 일본이 인간과 자연에 끼치고 있는 민폐’ 또한 불러올 가능성은 없는지 새삼 냉정히 따져볼 때다. 민폐와 적폐 사이, 한국 핵산업의 위험한 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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