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대를 위하여 162] #1 설밑, 재활용품 분리배출장 풍경

우리 공동주택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는 장소는 재활용품 분리배출장이다. 부녀회 어머니들과 관리소장님의 적극적 지도관리가 행해지므로 재활용품 분리배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포장재와 재질이 다른 라벨이나 스티커를 떼지 않고 내놓는 병, 상자, 비닐, 플라스틱에 대해서는 한소리 듣기 십상이다. 한소리 듣고는 “아이고 됐어요!”라며 종량제봉투를 가져다가 다 우겨넣는 혈기방장한 아빠들이 종종 있지만 아파트 왕고참인데다가 어머니 연세에 가까운 부녀회장님과 관리소장님의 잔소리가 맞다는 건 줄줄이 재활용품을 모아들고 나온 이들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다.
 
“명절 밑이라 포장 쓰레기가 많이 나오네요!” 어쩌다 같은 시간에 재활용품을 두 손에 들고 마주 사는 두 집 아저씨들이 함께 내려온 터다. 앞집 아저씨가 평소보다 배는 더 나오는 비닐 포장과 종이박스, 스티로폼 박스를 보며 한 마디 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아는 그이가 슬며시 묻는다. “근데 비닐을 저렇게 모아서 가져가면 진짜 재활용되긴 해요?” 즉답이 곤란해 어물쩡거린다. 투명한 재질의 깨끗한 비닐과 플라스틱만 재활용이 쉬울 뿐 저렇게 색색이 더러 더럽기까지 한 데다가 구체적인 성상이 다른 복합재질의 비닐과 플라스틱들은 잘해야 녹여서 성형만 새로 하는 수준의 최하 단계 물질 재활용만 가능하다. 사실은 재활용될지도 의문이다. 소각장에 갈 가능성이 높다. ‘우리 노력이 별 의미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면전에 대고 하긴 어렵다. 내가 대답 대신 어색하게 웃으며 남이 내놓은 비닐들을 간추리기 시작하자 그도 엉거주춤 주저앉는다.
 
“따로 모은 깨끗하고 투명한 비닐들만 높은 수준의 물질 재활용이 가능해요!” ‘쓰레기 박사’로 유튜브에서 유명한 한 자원순환 전문가의 말이 머리 속에서 울려 그냥 돌아서지 못한 까닭이다. 우리 아파트의 배출 규칙에도 투명비닐만 따로 모으게 돼 있지만 그걸 꼼꼼히 지키는 이들은 여전히 많지 않다. 부녀회장님이 우리 2인조에 대한 칭찬인지 재활용품을 들고 나온 이들에게 ‘잘 좀 구분해 내놓으라!’는 잔소리인지 모를 말씀을 하시며 재게 손을 놀린다. 분리수거장에 차곡차곡 쌓인 재활용품들이 키를 넘어 간다. 색색의 비닐 포장에서 종이스티커를 뜯는다. 한참 재활용품을 정리를 돕고 있는데 “디리링” 앞집 그이가 전화를 받는다. “어 들어가요, 들어가!” 전화도 끊지 않은 채 일어선 그이가 내게 눈인사를 하더니 들어간다. ‘난 왜 전화도 안 오나?’ 분리배출은 이웃간 정다운 교류의 장이다. 
 
재활용품 내놓을 땐 재질이 다른 라벨이나 스티커가 붙었는지 기름기나 음식물 흔적이 남았는지 살펴보고 내놓자. 내가 안 하면 남이 해야 하고, 남도 안 하면 소각되거나 매립될 뿐, 재활용되지 않는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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