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대를 위하여 166] 자비와 연대

불가에서는 선업을 쌓는 적선의 좋은 길이 자비에서 나온다고 가르친다. 자비는 나은 자가 못한 자를 구휼하고 구제하려는 그 행위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자비의 한 형태일 뿐이다. 자비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 인식론이다. 자비하려면 먼저 자기를 낮추는 겸허함으로 세상 속에 편만한 지옥같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지옥에서 누가 덜 고통 받는다 하여 그것이 자랑일 순 없다는 진실을 알고 나의 상대적 복됨이 그저 지옥의 돌개바람이 우연하게 비껴간 덕분이라 생각할 줄 알 때 그 마음이 자비가 된다. 그럴 때만이 타자에게 내미는 나의 손은 우월한 입장과 지위에 대한 확인이 아니라 우연의 선택에서 비껴난 또 다른 나를 구하려는 마음과 행위가 된다. 지금 내 앞에 내밀어진 빈 손은 사실은 나의 손인 것이다. 
 
코로나 정국 이전이라면 몰랐을 것이나 바이러스로 세상 모두가 차별 없이 고통스러운 지금 우리는 서로의 빈 손을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만일 우리가 지금 우리 앞에 내밀어진 저 빈 손들이 사실은 나의 손이었음을 절실하게 느끼고 그 손에 쥐어질 것을 내 품을 뒤져 놓아주려 한다면 그런 일이 바이러스의 위협을 이겨내고 우리의 일상이 된다면 세상은 코로나 정국 이전과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더 불편해도 더 아름다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더 위험해도 오히려 더 안전한 세상이 될 것이다. 그 반대의 불길한 예측도 가능하다. 우리가 제 손을 겨드랑이에 파묻고 오직 자기만을 껴안고 사는 극단적인 비접촉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거리를 두다 못해 오직 자기만의 세계로 후퇴한 자들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우한 자’라는 자기 연민의 지옥에 빠져 마침내 ‘타자는 나의 안전을 해치는 존재’라는 인식에까지 떨어지면 진짜 지옥이 현세에 열릴 것이다. 그런 생각은 이내 타자의 소멸을 바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변신 능력을 가진 바이러스의 유행이 우리의 생각(마음의 밭)을 새로 갈아 엎으라고 권한다. 2미터 이상 떨어져 걸어도 불안한 세상에서 그렇게 겁에 질린 우리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 거기서 우리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자비는 동정이 아니다. 자비는 동등한 타자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연대감이다. 만인이 만인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타자성의 비극에 빠진 세계체제를 수선하는 길이 거기 있다. 우리는 같은 현실 속에 있다. 공평한 불행 속에서 함께 구원받을 길은 서로 자비를 보여주는 길이다. 그러니 너는 네 빈 손을 내보여라. 내 손이 빈 주머니를 휘젓다 그 손 위에 놓을 ‘동전’ 하나 없어 내 빈 손을 꺼내 너의 빈 손을 잡을 때, 우리는 마침내 가득 움켜진 내일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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