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대를 위하여 170] 기후위기의 부정의와 민주주의

기후과학이 밝힌 21세기 기후위기의 전개에 대응하는 인류의 합의된 ‘기후행동 시간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기후재난은 이미 시작됐다. 21세기 내의 기후변화를 1.5℃ 이내로 통제해야 그나마 인류에게 미래가 허락된다. 이를 위해 2050년에는 지구 전체가 인위적 탄소 배출을 하지 않는 탄소중립 상태에 돌입해야 한다.’ 이러한 시간표에 견주어 우리나라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살펴보면 두려움이 엄습한다. 한국은 2050년 장기 탄소저감목표가 없는 나라다. 현재 국가탄소저감계획 상으로는 1.5℃ 기후변화 통제목표의 2배인 3℃의 기후변화가 불가피하다. 지난 100년간의 지구평균기온 변화는 0.85℃ 상승인데 그것만으로도 오늘날의 지구적 이상기후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1℃ 이상의 기온 상승이 불러올 결과를 상상해 보라. 그런 지구 전역의 평균기온 상승을 이미 2배 이상 상회한 전력을 가진 한국이 지구 공동의 통제 목표인 1.5℃ 변화를 다시 2배 이상 상회하는 현실로 질주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라. 그러한 세상은 묵시록이 현실이 된 미래다. 
 
묵시록의 세계에서도 살 사람은 살고 잘 살 사람은 잘 산다. 간단한 이치다. 30℃ 중후반을 넘나드는 기록적인 폭염에도 전기세 걱정 없이 방마다 에어컨을 켤 수 있고 기후위기가 촉발한 식량위기에도 먹거리 수급에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과 돌려도 더운 바람만 나오는 선풍기 앞에서 간편식으로 배를 속이는 사람의 삶의 질은 같을 수 없다. 설령 폭염 질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해도 그걸 개인의 문제로 보는 한 ‘잘 살고 못 사는 건 운수소관’이 될 뿐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부정의는 단적으로 기후위기를 불러온 화석연료체제의 승자들이 기후위기 시대에도 ‘잘 살거나 잘 살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화석연료체제의 승자들을 생산력주의 시대의 경제적 승자들, 사회권력의 상위자들이라고 불러도 된다. 체제의 문제를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일 순 없다.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미래 사회의 해체 가능성 또한 더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이 ‘기후변화라는 게 그저 날씨가 더워지는 것 정도가 아니라 기후 극한성이 증대하고 일관성이 파괴되는 것’임을 상식으로 삼게 된 시대다. 또한 기후위기가 우리 생활의 근저를 뒤흔드는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는 사실도 알아차리게 된 시대다. 한국사회가 기후위기 대응 정책의 실패로 인해 교란되기 전에 기후위기로 촉발된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흔들리다 해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더 크다. 기후위기의 수용력 편차에 따라 불평등한 삶이 강제될 미래 한국은 기후 민주주의를 국체 존망의 화두로 삼게 될 것이다. 이 명백한 검은 근미래를 거절할 기회는 오직 2020~2030년 사이의 10년뿐이다. 석탄발전과 핵발전의 자연사를 탈석탄과 탈핵이라고 선전하는 정부의 안이한 인식은 기후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를 뿐이다. 기후정책의 급진화가 필요하다, 21세기 이후에도 국가사회 단위에서 한국, 한반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