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1] 말·글/ 사람들 사이에서 힘겹게 흐르는 강을 보았습니다/ 이지누

이지누의 우리 땅 밟기 11
사람들 사이에서 힘겹게 흐르는 강을 보았습니다


간혹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따사로운 가을 햇볕 담뿍 내놓는 맑은 하늘에선 풋풋
한 가을 내음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듯, 아마도 낙엽은 그 하늘 내음 가득 머금어 무게를 견디
지 못한 것이지 싶습니다. 툭툭, 떨어질 때마다 고개 돌려 바라볼 만큼 한가로운 간격으로 숲은
아직 깊어만 가는 가을이지만 산 것과 죽은 것이 반 쯤씩은 되어 보이는 나무들과 풀, 하루가 다
르게 조금씩 앙상해지는 속도는 새벽녘 차디찬 서리 한 번으로 겨울로 성큼 가버리고 말 것입니
다.
그래도 용케 벌써 서너 차례 내린 그 하얗던 서리 견디며 아직 노란색 잃지 않고 함초롬한 감국
몇 송이와 숨은 듯 피어난 보라색 산부추며 길섶에 지천으로 흐드러진 쑥부쟁이며 개미취 꽃은
산길 걷는 나에게 고맙기 그지없는 길동무입니다. 잠시 발길 멈추고 눈길 한번 주면 어느새 동무
가 되어 있는 들꽃들… 이미 서리에 고개 숙였으면 또 어떻습니까. 그들도 그들대로 이미 나의
동무들인걸 말입니다.
자연이라는 것은 그런 것인가 싶습니다. 늘 내가 먼저 그들에게로 가야 하는 것 말입니다. 좋고
나쁨의 익숙한 편가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가 모두 소중하며 감사한 것 말이지요. 요즘에사 그
것들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뒤늦었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르지도 않은 듯하니 그만 그만
하게 사는 것이 재미있기도 합니다.
산부추 꽃 서먹하게 핀 바위에 앉았습니다
하, 저건 뭡니까. 칠족령. 그 높은 곳에 앉아 낙엽 지는 소리에 한가로이 마음 달래던 내가 부자
였습니다. 오랜만에 찾아 온 동강. 흙먼지 풀풀 일던 비포장길은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반듯하게
단장됐고 그 길섶에 어색하게 핀 연보랏빛 쑥부쟁이 위로는 글로 옮겨 놓고 싶지 않은 문구들이
적힌 플래카드가 빼곡합니다. 그것, 서넛보고 나자 적막 속으로 낙엽 지는 소리에 묻어 온 가을
하늘 내음을 맡으며 한껏 늦가을의 사치를 부리던 나 또한 조금 전 보았던 아스팔트 옆의 쑥부쟁
이처럼 어색해지기만 합니다.
“또 가을이 왔구나. 이젠 모두 죽는구나” 어찌 이리 서로의 가을이 다를 수 있단 말입니까.
한 켠에 자동차를 세우고 산부추 군데군데 서먹하게 피어 있는 바위에 앉았습니다. 칠족령의 하
늘이나 이곳 문산리의 하늘이나 모두 같아 보이건만 그 수직의 뼝대는 물리적인 거리보다 훨씬
더 많이, 그것의 천 배나 만 배 쯤의 거리로 산 위와 아래의 가을을 달리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만치 단풍이 가고 있습니다. 그 뒤를 따라 낙엽 서넛 떨어지고 나는 착잡해집니다. 조금 전 평
화는 간데 없고 스산한 바람 한 묶음에 강에는 잔물결이 일고 그 파장만큼 조금씩 우울해지기까
지 합니다. 마침 버스가 지나갑니다. 듬성듬성 핀 산부추 꽃 마냥 버스에도 사람이 그렇게 앉았
습니다. 가을이 다시 왔으니 이젠 모두 죽는다는 그 사람들입니다. 멀리서 보는 참 상처가 깊은
풍경입니다. 벌써 오래 전에 본 ‘델리카트슨 사람들’이라는 영화에 나오던 첼로소리 가득하던
그 스산한 풍경. 오늘 동강을 달리는 버스에서 그 첼로소리가 들립니다.
마침 읍에서 있었던 잔치에라도 다녀오시는지 곱게 차려 입은 노부부가 흙먼지 일구며 달려온
버스에서 내려섭니다. 대뜸 마주한 사진기와 고약하게 생긴 내가 어색하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내
놓는 풍경은 꼭 그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그들의 풍경에서 오늘의 동강을 본다면 내가 지나
친 것일까요.
강물이 어찌 저 홀로 흐르겠습니까.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동강의 물빛은 하늘빛을 담보하고 있고 그 물 속엔 물이 아니라
사람이 흐르고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수년이 지나도 그 생각은 여전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생태를 이야기하며 야단법석을 떨며 모여들 때도 나는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초라하게 사람
들 생각을 붙들고 있었던 거지요.
한 철 조기라고 흑산도에 반짝하던 파시처럼 동강에도 파시가 섰던 게지요. 생태 파시 말입니
다. 흥청망청 이제 그들은 뿔뿔이 흩어진 빠알간 립스틱 짙게 바른 작부들처럼 또 다른 파시를
찾아 나서고 동강엔 본래면목(本來面目)만 남았습니다. 본래면목은 누구에게나 참 외로운 것이지
요. 동강에 남은 사람들, 어쩌면 그들은 허탈감과 농도 짙은 배신감이 어우러진 외로움의 가을
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한번쯤 묻고 싶습니다. 불과 지난 해, 그 지난해만 해도 동강에 대한 그림 한 장 그려 내
지 않거나 시 한 줄 써 내지 않고 성명서 발표에 이름 걸고 참가하지 않으면 이 땅의 문화예술
인 혹은 진보적 지식인이 아닌 것처럼 왕성하게 법석을 떨며 동강으로 마음 모으던 그 사람들 모
두 어디에 계신가요. 사진 속에 갈라진 땅이 보이시나요. 섶다리 곱게 놓이던 수동마을, 그 아름
다운 마을의 말라비틀어진 땅입니다. 이 모양이 동강에 남은 사람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불쑥 들었습니다.
왜 우리들에게 다음은 없습니까. 다음, 그 다음 그리고 다시 그 다음. 우리에게 그것까지 생각
할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닐 텐데도 말입니다. 적어도 동강에 대해 나섰던 사람들 정도라면 충분하
고도 남음이 있을 법한 생각의 범위입니다.
‘모르쇠’입니다. 아니 ‘모른 체’가 맞겠습니다. 공치사를 하자면 그들은 분명 동강이 살아남
을 수 있도록 애를 쓴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임에 이의를 달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새벽
녘 스멀스멀 피어나는 물안개처럼 안타까운 마음이 피어오르는 것이지요. 하찮은 나의 눈에도 보
이는 것이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까닭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것이요. 그것은 바로 강물은 어
찌 저 홀로 흐르겠습니까. 강은 언제나 사람과 함께 흐른다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이 풍경은
생산이 아닌 소비의 풍경입니다
이 풍경 보십시오. 이제는 관광객들의 볼거리로 전락해 버리고 만 뗏목이 유유자적한 광경입니
다. 강 마을 사람들에게 강은 늘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었거나 아니면 더불어 살아야 할 무엇이었
을 것입니다. 곰곰 생각해 봅니다. 대개 더불어 살거나 극복되어야 할 것들은 그 과정이 대단히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오곤 합니다. 결국 그들의 삶이란 강과 어우러지고 또 서로 내외하며 얼굴
붉히거나 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을 겝니다.
그러나 이제 뗏목은 더 이상의 생산으로서의 기능은 잃어버린 채 소비의 대상인 상품으로 돌아왔
습니다. 온 나라에서 목숨 걸고 개발해 내는 관광상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풍경은 생산이
아닌 소비의 풍경입니다. 조금씩 형식화되고 규격화되면서 상생(相生)과 극복은 쏙 빠진 채 허수
아비의 문화로 남을 광경입니다. 문화라는 것은 어느덧 생활이겠지요. 그것이 별스럽게 생활과
다른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현재의 문화라는 것이 아닌 과거의 것에서는 말
입니다.
하. 이야기가 잠시 어긋났습니다. 어느 쪽에서는 애를 쓰며 동강의 자연을 지키자고 난리법석이
고 어느 쪽에서는 얼토당토않은 축제라는 것을 만들어 그 곳으로 사람들이 모이라고 법석입니
다. 제발 와서 돈을 쓰고 가라는 이야기겠지요. 그 덕에 참 많이 변했습니다. 벌집처럼 생겨난 -
조금 심한 표현인 듯 하지만 그냥 써도 무방할 듯 합니다- 래프팅 업체들을 통해 무던히도 많은
사람들이 동강을 흘러갑니다. “이래 가을에만 다니지 말고 여름에 한번 와요. 저 아래 강에 여
름이면 꽃이 피어, 울긋불긋, 참 세상에 오래 사니께 별일도 다 보지…” 가을걷이 바쁜 일손을
쉬지도 않은 채 여름 풍경을 전해 주는 할머니 말마따나 이제 동강은 생산의 그것보다 소비의 그
것이 더욱 커진 듯합니다. 사람이야 전에 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득시글거리지만 흘러가지만 뗏
목을 타고 흘러가던 강 마을 사람들의 강과 고무배를 타고 흐르는 그들의 강은 서로 다른 강임
이 분명할 것입니다.

그들은 가을 하늘 내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은 마치 삐뚜루미 탈 같습니다. 글 속에 온통 심술이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아마 가을이 이
리도 쉬이 떠나 버릴지, 미처 마음 준비를 하지 못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들 곁에서
떠날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닐텐데 그것 모두 짐작은 하고 있으면서도 잘 챙기지 못하는 스스로에
게 화가 난 것일 겝니다. 괘념치 마시기 바랍니다. 어디 그런 사람들 비단 저 뿐만이 아닐 것입
니다. 이제는 앞서는 사람이 있으면 뒤에서 거두는 사람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음’을 말입
니다. 다시 플래카드가 펄럭입니다. 10월25일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동강이 피강’이 된답니
다.
섬뜩합니다. 누가 강물처럼 부드럽기만 한 이들에게서 이리도 모진 말들이 거침없이 나오게 만들
었습니까. 다 같이 머리 모아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 할 일이겠습니다. 애초부터 우리는 강과 사
람을 같이 지켜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분리시킨 것은 우리들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이 얼마나 부드러운 사람들인지 수 삼 년 사이 동강을 드나든 사람들은 감히 알 재간이 없
습니다. 사 오 년 전만 하더라도 그들은 맑디맑은 가을 하늘에서 나는 하늘 내음을 고스란히 간
직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내가 오늘 칠족령에서 맡았던 그 가을 하늘 내음 말입니
다.

글·사진 / 이지누 nophoto@iconotext.com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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