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엽서] 머쓱한 시멘트와 풀의 몸짓 _ 이지누



뭇 사내들과 그와 함께 살아가던 가족들의 희망과 좌절이 매캐한 연탄가스처럼 맴돌던 사북과 고한에 다녀왔습니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과 연이어 늘어선 사택들이 묘한 정경을 내놓던 그곳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도로며 네온사인을 번쩍이며 앞다투어 솟아오르는 건물들로 낯설기만 했습니다. 차라리 소읍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던 화절령(花折嶺)이나 오르려고 사북역 마당을 돌아들었지만 숫제 길이 사라져버려 발길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할 뿐이었지요. 울창하던 산은 사라지고 조금씩 평평해진 그 자리에는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스스로를 뽐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 때 먼 곳에서 흘러온 가난한 꿈들이 막다른 희망을 가지고 굵은 땀방울을 쏟아 놓던 박심리, 그 깊은 골짜기에는 감쪽같이 단장된 카지노가 전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꿈과 희망을 팔고 있었습니다. 참 기묘한 인연인 셈이지요. 돌아오는 길, 만항재로 올라 영월의 상동으로 향하는 산길을 택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멈춘 큰 산에는 드문드문 탄광의 흔적만이 남았고 사무실이 있던 자리는 시멘트가 상처로 박혀 있었습니다.

바람과 새소리만 머물던 그 곳. 시멘트길 틈바구니에서 풀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마치 자연이 황량한 문명을 감싸기라도 하려는 양 말이지요. 하지만 시멘트는 머쓱하게 있을 뿐 풀에게 어떤 몸짓도 하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문명은 자연에게 별로 할 몸짓이나 이야기를 지니고 있지 못한 법입니다. 다만 그들을 망가뜨리고 말 뿐인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어찌 시멘트의 잘못이겠습니까. 모두 사람들의 잘못인 것을요. 아무래도 더 이상 골이 깊어지기 전에 우리 모두 잠시 헤어졌던 친구를 다시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자연이라는 그 친구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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