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의 시간

장마에도 어부는 묵묵히 일할 뿐이다
 
나의 별명은 ‘늪이 된 사진가’이다. 학창시절과 고등학교 교사 생활 내내 살았던 부산을 떠나 우포늪에 정착한 지 어느새 20년이다. 주위의 만류에도 카메라만 들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우포로 왔을 때의 그 무모함을 나는 아직도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카메라와 우포가 좋았고, 오래 같이 있고 싶었다. 삼각대를 놓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밭에 서서 하늘을 볼 때면 참 좋았다. 누구나 우연의 형태로 운명과 조우하는데, 사진가가 된 것도, 늪이 된 사진가가 된 것도 이제와 생각하니 운명이다. 
 
우포에서 전업 사진가의 길을 걷는 동안, 몸도 마음도 부침을 겪었다. 늪가의 폐가에서 기거하며 아무도 없는 새벽의 어둠에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홀로 있을 때면 공포가 엄습했다. 허기진 야생동물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일도 많았다. 늪의 습성상 모기, 습기, 열기를 이기며 한없이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었다. 돌아갈 길을 스스로 차단했기 때문에,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에 외로웠다. 어떻게 해야 좋은 사진을 찍을지 알 수 없어, 그냥 하루도 거르지 않고 늪으로 갔다. 매일 늪가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와 그날의 사진들을 정리했다. 특별한 풍광, 새로운 포인트, 늪의 생명체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우포늪은 나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상처에서 새 살이 오르듯 힘이 생겼다. 사진 생활도 변하고 있었다. 멋진 사진을 찍겠다고 집을 나섰지만, 자연을 가만히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농축된 우포의 시간이 조용히 나의 사진이 되었다.
 
우포 잘 잤나요?
 
사진가로서 늘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나는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가’였다. 남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노력도 했고, 그 결과 사진가로 명예로운 길을 걸어왔다. 많은 수상과 전시, 열정적인 제자들을 가르치는 보람도 있었고, 유수 갤러리를 통해 해외 아트페어에서 찬사도 받았다. 샌프란시스코 예술대학교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 시간도 즐거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 우포가 체화될수록, 유명한 사진가가 되고 싶은 마음보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질서로 회귀하려는 나를 보았다. 일시적인 명예와 성공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사진을 통해 우포의 자연과 아름다움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 사진이 무엇을 향해 가는지 의미도 분명해졌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은 누구도 찾을 수 없도록 숨겨둔 촬영 포인트, 기막힌 셔터 찬스, 최고의 장비가 아니었다. 겸손하고 한없이 작은 사진가가 되는 것, 그럴수록 자연은 숨은 속살을 보여준다는 깨달음이었다, 우포늪을 바라보던 나의 마음처럼, 내 사진을 보는 분들의 마음이 정화되는 것, 그것이 내가 오래도록 한결같이 추구해온 내 사진의 의미임을 알게 되었다.
 
우포가 바다가 될 때, 우포의 새벽
 
사람들이 고립되어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비로소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자연이다. 자연 사진가는 그 광활한 자연을 정지된 이미지로 고정된 프레임에 담는 사람이다. 정지할 수도, 가둘 수도 없는 자연이기에 역설적이다. 사진을 보는 순간 다시 멈추었던 시간이 흐르고, 풍경이 프레임 밖으로 펼쳐지기에 다시 한번 역설적이다. 그런 한 장의 사진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우포의 시간을 따라 살아갈 뿐이다.
 
 
글·사진 / 정봉채 사진작가
2008년 제10차 세계 람사르 총회 공식 사진가, 201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예술아카데미 초빙교수, 2009년부터 프랑스 아트파리,스위스 아트바젤 등 초대전시 photobong1@naver.com / facebook.com/photobong
 
* 더 많은 사진은 월간 함께사는길 8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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