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의 진화 _ 정유진



아름다움은 현대인의 종교이자 선이다. 현대인은 아름다움에 관한 신화를 재창조하고, 아름다움에 관한 판타지와 복음은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전파되며, 아름다움에 대한 맹목적·집단적 숭배와 거대 사회 시스템은 아름다움이라는 공동선에 복무한다.

몸으로부터의 부자유는 남성보다도 여성들이 더욱 많이 느끼기 마련이다. 여성의 세기라는 21세기가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시대인 것은 아이러니다. 여성을 울리는 두 가지, 거울과 저울은 한 존재의 여성성을 규정하는 시대의 상징물이다. 과거의 여성이 시지프스처럼 가사일을 반복했다면 현대의 우리나라 여성은 아침마다 평균 18분씩 미용을 위한 노동을 지리하게 되풀이하며, 1인당 연간 47만 원을 화장품 사는 데 쓴다(2005년 9월 태평양-TNS공동 U&A 조사).

몸 중에서도 얼굴은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권부이다. 여성의 얼굴은 존재를 규정하는 중요한 지표이자, 좀더 나은 아름다움을 향한 갖가지 시도와 절치부심의 테스트가 난무하는 소리없는 전쟁터다. 화장술은 없는 자연미도 만들어내고 야성도 조작해내는 연금술, 일종의 보호색이다.

아름다운 얼굴에 대한 욕망은 유력한 조력자인 미용산업에 힘입어 여성 대부분은 자신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화장품을 구입하고, 화장술을 배우고, 피부에 투자한다. 여성은 세상에 유포된 아름다움과 유행에 관련된 소문을 경전 삼아, 도전하고 절망하기를 되풀이한다.

끊이지 않는 안전성 시비
화장, ‘코스메틱’이란 그리스어로 ‘잘 정리하다’, ‘잘 감싼다’의 의미이다. 코스메틱의 어원은 ‘코스메티코스’(cosmeticos)로 ‘혼돈’을 의미하는 카오스(chaos)의 반대개념이다. 최근 화장품 시장의 화두는 항노화 즉 ‘anti-aging’이며 현대의 화장품은 치료보조제적인 성격이 강한 코스메슈티컬 쪽으로 가고 있다. 코스메슈티컬(cosmeceutical)이란 화장품과 의약품의 합성어로 항노화, 미백, 자외선 차단과 같이 기능을 극대화한 제품군을 말한다.

화장품학에서 화장품이 갖춰야 할 4대 요건으로 꼽는 것은 안전성, 안정성, 사용성, 유효성이다. 그러나 화장품을 둘러싼 안전성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늘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장품 브랜드 클리니크(Clinique)의 대표인 대런 스테치먼에 따르면 “제품의 안전성은 클리니크 연구원에게는 항상 우선순위이다. 클리니크 제품의 안전성은 ‘State-of-the-art 테스트법’으로 보증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테스트는 장기간의 유독성 잠재 가능성, 발암물질, 또는 매일 사용에 따른 장기적인 효과 테스트를 포함하지 않는다. 프탈레이트는 거의 명시되지 않고 종종 ‘향’으로 애매하게 언급되는데 사실 이 단어는 4천 종의 화학물질 혼합을 숨길 수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8월 프탈레이트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서울환경연합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기업으로부터 프탈레이트 프리선언을 이끌어내고 해당 부처인 식약청 또한 프탈레이트를 규제하기로 했으나, 프탈레이트 성분이 여전히 포함돼 있던 데오드란트 제품류를 여성환경연대 측에서 공개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미주리대학의 스완 박사에 의해 산모의 몸 안에 프탈레이트 수위가 높으면 아이에게도 유전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화장품을 연구하는 피부과 의사들의 모임>이 2005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40대 남녀 중 57퍼센트가 화장품 사용 후의 부작용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려졌다시피 일반 화장품에는 화학성분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그 중 표시지정성분이 포함됐을 경우 용기와 포장에 낱낱이 표기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는데, 표시지정성분이란 알레르기와 피부장해 등을 일으키는 98종류의 위험한 성분을 말한다. 즉 이런 표시지정성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피부에 문제를 일으킬 확률도 높아진다고 보면 된다. 화장품 회사도 알고, 소비자도 아는 유독성분을 사용하여 화장품을 제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연성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값이 싸기 때문이다. 물론 포장지에 ‘드물게 염증이 생기거나 알레르기 증상이 일어날 가능성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은 화장품도 있다. 그렇다면 화장품 회사가 유해성분이 들어 있음을 굳이 공공연히 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화장품 사용과 관련된 모든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행위이다. 경고문이 붙은 화장품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 경우, 책임은 모두 그 상품을 구입한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유기농화장품 시대
세계 최고의 화장품 테스트 마켓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화장품 시장이 개방된 1983년 이후 수입화장품은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리고 이젠 화장품에도 유기농화장품 시대가 왔음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볼 수 있는 때가 되었다. 업계 측에서 예상하는 2006년 친환경 식품시장은 6700억 원 규모. 주스, 과자, 과일부터 시작한 유기농은 이제 화장품, 기저귀, 이유식, 장난감, 의류까지 확대되고 있다. 국내 유기농화장품 시장은 예상 외로 넓다. 생활협동조합의 유기농화장품과 더불어 백화점, 인터넷쇼핑몰 등에서 세계적인 유기농화장품이 대부분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유기농화장품에 관한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은데 여성환경연대 김선미 간사(환경건강팀)에 따르면, 식약청이나 화장품공업협회 측은 화장품을 제조하려면 불가피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 유화제와 같은 성분이 있기 때문에 천연화장품에 관한 개념 규정을 하지 않고 있다. 원천적으로 천연화장품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통 천연화장품은 천연원료가 들어가 있지만 그 속에 인공향이나 방부제, 계면활성제 등이 포함된 것이라고 보거나, 유기재배까지는 아니지만 천연성분에서 원료를 얻은 화장품을 이르고, 유기농화장품은 화장품의 원료를 유기재배한 것들을 가리킨다. 유럽에서 유기농 인증화장품은 물과 소금을 제외한 원료가 최소 95퍼센트 이상이 유기농 원료로 만들어졌을 때만 붙일 수 있는 명칭이다. 유기농 인증마크 중 유명한 것은 호주의 ACO, 뉴질랜드의 Bio-gro, 유럽의 Ecocert, 독일의 BDIH 등이 있다. 미국의 경우 USDA(미국 농무성)는 이전 규칙을 폐기하고, 올해 8월에 화장품만의 독특한 녹색 유기농 보증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수입 유기농화장품 중에서 유기농인지 의심되는 경우 인증마크가 도움이 되지만 각 원료별로 몇 퍼센트가 사용됐는지 소비자가 정확히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천연’이나 ‘유기농’이라는 이름을 화장품 이나 광고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규정이 없으며 유기농화장품임을 검증받을 수 있는 자체의 심사기관 또한 없다. 앞서가는 소비자 의식에 비해 제도가 못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의 유기농화장품 회사인 L사의 경우, 상품의 공급자도 고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단순한 수입화장품을 넘어 화장품회사의 철학과 정신에 공감하고 그것들을 한국화할 의지를 검증받은 경우가 아니면 계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 유기농은 제품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시스템, 그것을 만든 사람의 정신까지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즈음 자연을 얘기하는 화장품의 대부분이 그린 코트를 입은 옐로우 마인드, 더 나가서 레드 마인드 제품이란다. 천연원료나 유기농원료를 조금 넣고, 파라핀이나 실리콘오일 등 각종 화학성분을 넣으면서도 자연을 얘기하는 화장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가능성
아니타 로딕은 소수의 거대한 다국적 기업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지구를 걱정하는 거대 기업인(바디샵 창업자)이다. ‘정치적 실천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의무다’, ‘여성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라며 똥배가 나온 평균 체형의 인형 루비를 자사의 홍보모델로 삼고 ‘뷰티’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며 여성 직원의 비율을 80퍼센트 안팎으로 유지하는 독특한 경영철학으로 유명하다. 회사에 보육시설과 각종 복지제도를 도입하고 ‘동물 실험 반대’와 ‘용기 재활용’, ‘지역거래’, ‘기업의 사회적 책임’, ‘자유무역과 세계화 반대’를 부르짖는 히피 출신의 아줌마가 바로 그다. 그가 기업의 사회 참여를 실천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환경운동, 반전운동, 반세계화 운동과 더불어 인도에서는 코끼리가 에이즈 예방법을 광고하면서 걸어다니고, 영국에서는 버스 12대가 반전 포스터 등을 붙이고 운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디샵은 전세계 1800개 매장에서 24개 국어로 운영되며 8400만 고객을 가진 세계 27위의 다국적 거대 기업이다. 한국에도 많은 매장을 갖고 있는 바디샵은 거대 기업이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고수하는 기업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안전성조차 보장되지 않은 화학화장품의 범람 속에서 바디샵이나 유기농화장품을 선택하는 것은 소비자의 신념을 드러내는 정치적 발언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유기농화장품에 관한 검증 절차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지금, 윤리적 소비를 결심한 소비자가 광고만 믿고 무늬만 유기농화장품인 것을 구입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몸의 자유를 빼앗고 몸 자체를 대상화시킨다. 여성은 오늘도 화장대 앞에 앉아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로 열렬한 사랑에 빠져든다. 유기농화장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오랫동안 부자유했던 사람의 몸과 얼마나 화해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글 / 정유진 기자 jungyj@kfem.or.kr
사진 /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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