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공해 피해자들을 구제하라!”

“시멘트 공해 피해자들을 구제하라!”

김진우 제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jckfem@kfem.or.kr

‘세계 환경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6월 4일 환경운동연합 앞마당에 25명의 충북 제천, 단양과 영월 주민이 모였다. 모두 시멘트 제조공장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으로 2007년부터 환경부가 진행한 시멘트 공장지역 주민건강영향조사 결과 진폐증과 만성폐쇄성 폐질환(COPD) 등 건강피해를 입는 것으로 밝혀진 피해자 중 일부 주민들이다. 바쁜 농사철, 하루 생계를 포기하면서, 불편한 몸으로 서울 길에 나서 생소한 환경단체까지 찾아간 이들의 호소는 무엇일까?  

시멘트산업의 희생양
우리나라 시멘트 산업은 1970년 초에 국가기간산업으로 시작됐다. 현재 전국 시멘트 제조사의 공장은 12개로 그 중에 9개가 바로 충북북부와 강원도에 몰려있고, 국내 시멘트 생산량의 79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시멘트 공장 인근의 주민들은 주로 석회석을 채석하던 광산이나 시멘트 공장에서 석회석을 운반하거나 제조된 시멘트를 화물차에 실어 나르는 직종에 고용되었다. 1년에 한 번 겨울철이면 석회석을 굽는 소성로 안을 청소하는 일에 마을 전체가 부업삼아 2~3개월씩 매달렸다. 당시 소성로 안의 작업환경은 1년 동안 쌓인 시멘트 먼지가 말도 못할 지경이었다지만 겨울철 일거리가 흔치 않았고, 밉게 보이면 그나마 바로 제외되기 때문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민주화의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진 1980년 후반에야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환경문제와 주민 건강피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1989년 11월 성신양회와 한일시멘트가 위치한 충북 단양군 매포읍 우덕리와 매포1,2,3리에 거주하던 700가구 주민 3000여 명이 집단 침묵시위에 나섰다.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 할 정도로 시멘트 분진과 공장 소음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시멘트 공장지역 주민들이 하나둘씩 진폐증과 폐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꽤 오랫동안 시위에 나섰지만 예나 지금이나 지자체는 오히려 공장 측의 입장을 대변하고 회사 측은 적자타령 변명에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결국 우덕리 일부 가구만 이주하는 것으로 이 최초의 집단 주민시위는 마무리 되었다.     

1990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재앙이 준비되고 있었다. 1990년 시멘트 회사들은 일제히 폐유를 보조연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성로 안에서 석회석을 구워야 하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동안 주 연료는 벙커C유와 유연탄이었으나 국제유가가 비싸지자 폐유를 대체연료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 9월 제천환경운동연합은 정제유 공급처의 제보를 통해 지역 시멘트 회사와 석회석 제조회사를 대상으로 비밀리에 정제유 유통실태를 조사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조사계획을 빼낸 사측의 방해로 조사는 실행되지 못했다. 

얼마 후 시멘트 회사들은 소성로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도입한 최첨단 고온소성방식이라고 했다. 늘어날 생산물량에 대비한 것이라는 회사 설명은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1997년부터 폐타이어를 시작으로 각종 산업폐기물을 시멘트 부연료와 보조원료로 재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말이 재활용이지 산업폐기물을 소성로 안에서 태우고, 타고 남은 소각 잔재물을 시멘트와 섞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2006년 기준 10개 시멘트 회사 19개 공장이 연간 2686톤의 폐기물을 처리했고 지정폐기물인 폐유는 연간 1380톤을 사용했다. 나아가 정부는 1999년 8월 폐기물 관리법을 개정해 재활용 신고로도 산업폐기물을 태울 수 있게 허용했다. 

초기 주로 사용된 폐타이어는 몇 년 사이 다른 용도로도 수요가 늘어 몸값이 올랐다. 시멘트 회사는 대신 다양한 폐합성 고무류나 폐합성 수지류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량이 부족할 때는 일본 등지에서 산업폐기물을 수입했다. 시멘트의 생산 여부와 상관없이 연료가 부족해져 소성로가 스톱되면 소성로 안의 각종 폐기물이 눌러 붙어 정비에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었다.    

시멘트 제조사들이 산업폐기물을 재활용한다는 명분으로 정부에게 녹색기업이란 칭호를 부여받고, 다이옥신 저감에 앞장선 기업이라며 시설지원금까지 받아 챙기는 사이 주민들은 심각한 건강 피해는 물론 지역 전체가 오염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이를 고발하는 시민행동이 잇달았고 결국 쓰레기 시멘트 공해 피해 문제는 사회화됐다. 

쓰레기시멘트로 피해 가중
쓰레기 시멘트로 인해 공장 부근 지역이 고농도로 중금속에 오염됐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당시 노무현 정부는 시멘트 공장 지역에 민관협의회 구성안을 내놓고 여론을 무마했다. 그러나 영월군을 제외하고 다른 지역 협의회는 업체와 지자체에 우호적인 인사들로 채워지고 말았다. 협의체들의 청원으로 시멘트 공장 지대 주민들의 건강조사가 실시됐다. 2009년 6월 15일 환경부는 영월지역을 대상으로 진행한 시멘트 공장지역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직업력 없는 주민 3명을 포함한 5명의 진폐환자가 나타났고 조사대상 47퍼센트의 주민이 만성폐쇄성 폐질환(COPD)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동안 우려만 했던 시멘트 공장지역 주민건강이 매우 심각함을 보여준 최초의 의학적 규명이었다. 

영월군에 위치한 쌍용양회 시멘트 회사는 정부의 조사결과를 즉각 부정했다. 그리고 2009년 9월 28일 강북 삼성병원에서 영월군 주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체검진 결과를 발표했다. 검진인원 193명 중에 43명만이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유소견자로 나타났다. 어찌된 영문인지 정부의 조사결과인 주민 47퍼센트의 유병률이 불과 9.3퍼센트로 뚝 떨어진 것이다. 

영월 주민들은 회사 측의 결과에 반발했다. 논란 끝에 2010년 12월 13일 환경부(국립환경과학원)는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종합발표했다. 영월주민 1843명 중에 진폐증 14명, 폐암 3명, 40세 이상 주민 중 만성폐쇄성 폐질환은 211명(17.3퍼센트)이었다. 아세아 시멘트 회사가 위치한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 주민 144명이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환경피해를 호소하며 분쟁조정신청을 낸 것도 이때쯤이었다.       

영월에 이어 2011년 충북 제천, 단양과 2012년 강원도 삼척의 주민 건강조사결과도 발표되었다. 이후 자체 조사를 진행한 전남 장성군을 제외하면  4개 지역에서 진폐증 86명,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699명, 폐암 5명 이렇게 총 789명이 그 피해로 나타났다. 규모면에서도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환경피해로 나타났지만,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진폐증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직업력 없는 주민들에게, 단지 시멘트 공장지역에 살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피해가 속속 발표되었지만 모든 시멘트 회사 측은 한결같이 침묵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사상 최대의 환경피해 앞에서도 그 어떠한 입장도 없었던 것이다.

2011년 12월 22일에 충북 제천시 송학면 주민들이 2010년 12월에 중앙환경분쟁 조정위원회에 신청한 분쟁조정 결과도 발표되었다. 분쟁조정 결과는 소음 등 주민들의 환경피해나 재산피해는 기각되고 이미 정부가 앞서 발표한 건강피해도 아주 극히 일부 주민만 (16명) 인정되었다. 

그 피해 보상액도 고작 1억2천만 원 정도를 인정하고 이를 시행할 것을 아세아 시멘트 회사 측에 권고했다. 한국시멘트협회는 즉시 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나섰다. 정부 조사를 신뢰하지 못하겠으니 자체 연구용역을 통해 밝히겠다는 것이었다. 아세아 시멘트 회사 측도 권고를 받아들이는 대신 오히려 피해주민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었다. 

회사 측이 이렇게 피해를 부정하고 있는 사이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어떨까? 발표한 피해지역과 피해내용이 다 달랐지만 환경부가 내놓은 대책은 늘 같았다. 주민건강검진을 위한 전문병원 지정과 진료지원, 그리고 자자체와 매칭했다는 약값만 겨우 보조할 만한 예산이 전부였다. 제천시, 단양군 두 지자체의 경우 건강피해자는 239명이지만 예산은 겨우 1억 8천만 원이다. 

늙고 병든 시멘트 공해 피해자들이 죽어간다
현재 피해 주민들은 하루 생계를 포기하면서 약을 타러 가는 일조차 쉽지 않다. 거동조차 불편하지만 주위의 도움도 흔치 않는 형편이다. 오랜 고민 끝에 지난달에 그동안 산발적이었던 각 지역별 주민대책위를 결합해 전국 피해주민 공대위로 재조직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6월 4일 전국 시멘트공해 피해자대회를 열었다. 전국이라는 대회치고 20명 남짓의 아주 작고 미약한 힘이었지만 드디어 피해자들이 스스로 사회를 향해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이 피해자 대회 후에 주민들이 조금 활기를 되찾고 있다. 그러나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활동은 둘째 치고 모임 비용부터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피해 주민들은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젊었을 때엔 회사에 죽어라 충성했더니 얻은 것은 늘그막에 진폐라고 한탄하셨던 어느 어르신의 한탄이 귀에 자꾸 맴돈다. 그렇게 그동안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고 올해 몇 분이 넘길 수 있을까 걱정을 하는 사이에도 시멘트 공장은 위용을 자랑하며 분주히 돌아간다. 공장 담벼락에 ‘제2롯데월드 시멘트 수주 독점 경축’이라는 현수막이 시커멓게 찌든 채 붙어있다. 기괴하고 낯선 2012년 공해병 현장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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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누하동 환경센터에서 열린 전국시멘트공해피해자대회 ⓒ함께사는길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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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공해피해자들은 6월 4일 한일시멘트 등 주요 시멘트 제조 본사를 항의방문해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을 담은 서한을 전달했다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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