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담벼락에 새겨진 평화의 시 _ 노순택



“이 너른 들녘에서 오순도순 농사지으며 살다가 죽고 싶다.”는 대추리 도두리 농부들의 소박한 바람이 공권력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습니다. 사람을 먹여 살려온 생명의 땅을, 사람 죽이는 전쟁기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수많은 평화활동가와 예술가들이 농민들의 고단한 저항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특히 800여 명의 문화예술가들이 뜻을 함께 하고 있는 〈들사람들〉은 대추리 도두리 곳곳에 그림과 시, 영상, 노래 등을 통해 농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미군기지확장의 문제를 널리 알려왔습니다.

이 가운데 대추리 마을 담벼락에 새겨진 간절한 평화의 시를 함께 하고자 합니다.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의 간절한 바람에 귀와 눈을 열어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몸 내리자
몸 내리자
민들레 꽃씨처럼 하늘 가득 달려가
우리 모두 봄비처럼 달려가자
그 가슴에서나 싹트는 연둣빛 혁명
풀꽃 하나 어린 새 한 마리 품어 몸 적시는 일
거대한 것, 국가니 세계니 그런 힘 아니라,
평화는


내 몸이 네 몸 되려고 달려가자
우리 모두 대지에 내리는 봄비처럼 달려가자
그러나 얼음을 이기는 힘이 무쇠가 아니듯
한파처럼 밀려오는 죽음의 행군을 보아라
내 핏줄 맞잡은 손목을 자르고
땅을 가르고, 하늘을 뒤덮고
저기 저 밀려오는 것

손에서 손을 이어 물결처럼 번져가야 하기에
가슴에서 먼저 지펴져야 하기에
평화는 큰 힘 아니라 둥근가슴 품어서

지축을 울리며 밀려오는 저기 저것
산을 밀어내고, 강을 가르고, 착한 새들
저기 저 밀려오는 것
달려가 한 몸 되어야 할 땅
우리 몸이 가서 적셔야 할 땅
자갈땅에 내려앉는 민들레 꽃씨처럼
언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우리 몸이 내려야 할 땅
대지에 내리는 풀씨들처럼
사막에 내리는 소나기처럼
그곳은 우리가 가야 할 땅

백무산 시




쫓겨난 빈손으로 촛불을 들고
너희들의 미사일
너희들의 전투기
너희들 탐욕과 전쟁의 마음을
내 안에서 조용히 불사르겠다

불살라, 이 새싹같은 촛불을 들고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저 우는 들의 눈물을 기름부어
너희들 무기의 어둠을 불사르겠다
우리들 인간의 봄을 시작하겠다


이제 나라도 정의도 없는 우리는
미군의 총칼에 울부짖고
미군의 폭력에 피흘리는
지구마을 어린 것들을 보듬어 안고
국경없는 평화의 봄을 꽃피우겠다


이 들녘에 떠오르는 아침해는
누구도 홀로 가질 수는 없듯이
이 들녘에 차오르는 봄은
누구도 홀로 맞을 수는 없듯이
대추리 도두리에도
전쟁의 바그다드에도
새만금에도
쿠르디스탄에도
봄은 어디에서나 봄이어야 한다
아아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2006년 4월 2일
우리땅을 지키기 위한 주민 촛불행사 579일째 박노해




신로마제국은 전 세계 수백 나라에 군대를 보내 놓았고
필요한 만큼 그 나라 땅을 자기네 군사기지로 사용한다
농사짓는 땅이든 고기잡이 하는 섬이든 관계치 않는다
전 세계 나라 열에 여섯 정도는 그렇게 가 있다
그들이 세운 콜로세움에서 검투사 경기가 벌어지면
신로마제국은 스물 네 시간 생중계를 하여
두려움을 전파하고 군소 부족을 공포에 떨게 한다
그들은 창과 칼로만 세계를 정복하지 않는다
모든 나라에서 신로마제국의 말을 사용하게 하고
신로마제국의 영화와 음료수를 좋아하며
로마식 겉옷과 그들의 미소를 선망하게 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로마의 후원을 받던 세력이
로마반군으로 성장하여 원수가 되거나
원한을 품은 폴리스들이 늘어났듯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닦아 놓았는데
그 길을 따라 순식간에 반로마 시위가 퍼져 나가고
급기야 어느 날은 순교를 각오한 이들이
신로마 한복판을 향해 거대한 포탄이 되어 터지곤 하였다
죽고 다친 수많은 신로마 시민들은
자신들이 왜 처절한 증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물었고 진짜로 그 이유를 모르는 이가 많았다
그리하여 끝까지 무력에 의한 지배를
선택하였고 선제폭력을 일삼았다
명분도 도덕도 잃은 전쟁을 선택하는
신로마제국 황제와 귀족들은
그때 그것이 멸망으로 향하는 전쟁임을 믿지 않았다
피와 칼로 세계를 지배하던
제국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 바람부는 대추리 언덕에서 도종환




바람아 너는 어딨니 내 연을 날려줘
저 들가에, 저 들가에 눈 내리기 전에
그 외딴집 굴뚝 위로 흰 연기 오르니
바람아 내 연을 날려줘 그 아이네 집 하늘로


바람아 너는 어딨니 내 연을 날려줘
저 먼 산에 저 먼 산에 달 떠오르기 전에
아이는 자전거 타고 산 쪽으로 가는데
바람아 내 연을 날려줘 저 어스름 동산으로


바람아 너는 어딨니 내 연을 날려줘
저 하늘 끝, 저 하늘 끝 가보고 싶은 땅
얼레는 끝없이 돌고 또 돌아도 그 자리
바람아, 내 연을 날려줘
들판 건너 산을 넘어

- 정태춘 글 / 노래



사진/노순택 zinsool@korea.com
사진가. 분단과 사회적 폭력의 내연관계를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왔다.
지난 여름부터는 대추리에 ‘황새울 사진관’을 열고 주민들의 삶과 투쟁을 필름과 공책에 기록하고 있다


여러분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황새울 들녘 지킴이 모금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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