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숲과 농업 재건을 위한 협력

한스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의 경험
북한 숲과 농업 재건을 위한 협력

 


글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스자이델재단 대표, 사라 콜스 한스자이델재단 선임연구원
번역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노현우 연구원

 


북한 내에서 단순 원조가 아니라 북한의 역량을 강화하도록 돕는 일이 원조사업을 펼치는 NGO를 비롯한 해외 원조기관들의 주요 안건으로 떠오른 것은 1990년 중반 북한에 대한 해외원조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당시의 원조사업은 북한의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안전한 전통적 우방국가들을 제외한 다른 원조국들의 기구나 조직들의 경우에는, 완전히 인도적인 지원사업만 할 수 있도록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인도적 지원사업과 역량강화사업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사라졌다. 식량 원조와 같이 원료 그대로를 공급하는 형태의 원조사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업에는 '역량 강화'의 요소가 포함되었다.


원조사업은 원조 시혜국과 원조 수혜국 쌍방이 제한된 원조자원을 이용해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협력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현장에서는 그러한 협력의 체계나 상호 이해의 기술 등이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게 된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역량 강화를 넘어서서 의식적인 역량 강화사업이 필요한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었다.


우선 타 국가와 학술, 과학, 경제 등 대부분의 교류를 사실상 중단한 북한에겐 해외 협력기구와 협력국들과 기술 격차가 있었다. 예를 들어 의료품의 전달은 현지 의사나 간호사들에 대해 그 의료품을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 훈련을 함께 제공하지 않으면 활용이 불가능하다. 또한 현지 NGO 직원들도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러한 기본적인 역량의 강화 없이 진행된 대부분의 인도적 사업은 효과적이지 못했다. 유럽연합 인도지원사무국(ECHO)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독일 NGO <저먼 애그로 액션> 은 농촌 지역에 깨끗한 물을 제공하고 폐수정화시설을 건립하기 위해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화장실 사용과 위생 관련 기본 지식에 대한 추가교육을 해야 하기도 했다.


원조사업에 역량강화사업이 포함될 수밖에 없는 두 번째 이유는 북한 주민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물건들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또한 지역 환경과 경제 재건이 농업의 파탄으로 기아문제에 노출된 북한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인 것이 분명하지만, 실제 지원사업은 농업 분야의 단순지원에 머무는 문제가 있었다. 상황 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들마저 더디게 진행되거나 아예 시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 환경과 경제의 재건이라는 역량 강화의 이슈는 점점 더 중요해졌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공적개발원조의 성격이 있는 역량강화사업은 여전히 애매한 상태로 남아있다. 사실상 북한에서 활동하는 해외 원조 조직들은 모두 북한에서 역량강화사업을 하려고 하지만 그들과 북한 당국 모두 그들이 역량강화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인정하진 않는다.

 

환경과 경제의 기초 회복이 진정한 북한 돕기
북한의 정책 자체가 갖는 모호함을 고려하면 이러한 상황이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경제 개혁이 단행됐을 때 통제력 상실을 두려워하는 북한 정권의 우려 때문에 제약이 존재하지만 원조 NGO들이 일단 가능한 것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그런 모호함 속에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백한 제약 요인 아래에서 역량강화사업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


핵 문제와 천안함 사태와 같이 계속되는 남북분쟁에 대한 해결 없이 유럽연합(EU) 및 유럽연합 회원국가와 북한 사이의 관계가 더 이상 발전되지는 않을 것이다. 공적개발원조(ODA)자금도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인정한 이후 동결됐다.


EU가 구호기구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관계를 지속해 나가려고 한 반면, 2005년 북한이 이들에 대해 인도적 지원을 재편성하고 상당 부분을 종결하라고 한 짧은 통지는 좋은 의도로 북한 업무에 관여하고 있던 많은 유럽인들에게 다시 한 번 충격을 주었다. 사실 북한으로서는 순수한 인도적 지원사업을 중단시킨 데에 적합한 이유들이 있었다. EU 기반의 원조단체는 오랫동안 원조 프로그램을 역량강화란 필요에 맞춰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목적은 원조를 재조정하는 것에 있었다기보다 북한에 있는 외부의 원조 인력을 국경 밖으로 내보내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력 중 몇몇은 북한 당국과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1995년 북한이 처음으로 국제 원조에 문을 열었을 때 잠재적 문제아 또는 스파이로 간주된 바 있었다. 이는 외국에서 온 원조 관련 상주 인력이 북한사회와 일상적 교류를 할 때 발생하는 정보 유입을 북한 당국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원조 인력들이 북한체제의 명시적 적인 미국보다도 체제 유지에 더욱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한스 자이델 재단은 북한을 진정으로 돕는 역량강화사업을 펼치는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한스 자이델 재단의 특별한 경험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는 독일의 싱크탱크로서 한국에서 23년 이상, 북한에서도 6년 이상 활동해왔다. 재단이 북한 경제의 역량 강화를 위해 연 첫 번째 세미나는 국제무역과 자금시장에 관한 것이었다. 2003년과 2004년 이래 한스 자이델 재단은 북한의 역량강화사업을 세미나, 장학금, 북한 관료들과의 면담, 교육자료의 공급 등의 아이템을 통해 다양하게 접근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한스 자이델 재단은 EU-북한 간 무역능력 강화사업을 평양의 조선-EU 간 조정사무국 (KECCA)과 브뤼셀의 EU-한국 산업협력국 (EUKICA)과 공동으로 준비하고 실행했다. 이 사업은 아시아 투자 II 프로그램의 틀 안에서 주로 EU의 자금 지원을 받아 진행됐으며 EU와 북한 사이의 무역 증진을 목표로 했다. 평양에서 총 10개의 세미나가 다양한 부처, 학술계, 경영 분야에서 온 4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 뿐만 아니라 유럽 연수를 진행해 북한 연수단이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의 여러 기관들을 만나는 기회도 가졌다.


2008년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는 무역과 자금에서 농업과 현대적 산림 분야의 역량 강화로 사업의 초점을 옮겼다. 재단은 평양에서 북한 국토환경보호성 산하 산림계획기술원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1990년대 이후, 러시아가 1990년, 1991년에 북한에 저가 에너지 수송을 중단했을 때 산림자원의 고갈이 북한의 문제가 됐다. 산림은 에너지를 위해 사용됐고 농업 목적을 위한 토지 사용은 산악지대까지 확대됐다. 장맛비가 토양을 쓸어가고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가며 일어나면서 미기후(微氣候:좁은 지역 내의 기후, 동굴, 가옥과 같은 한정된 장소의 기후. 식물의 군락, 삼림지대, 도시사회의 기후)가 붕괴됐다. 이에 맞는 산림 경영은 2005년 북한 국토환경보호성과 유엔환경계획(UNEP)이 진행한 공동연구에서도 지적됐듯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과제이다.


한스 자이델 재단 대표단은 여러 산림 관련 기관에서 받은 현대적 농업에 관한 2GB 이상의 데이터베이스를 북한에 전달했다. 2009년 5월에는 독일의 산림감독관이 한스 자이델 재단과 함께 평양에 방문하여 현대의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에 관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이틀간 열린 3개의 세미나에서 '독일 현대임업의 소개', '농림업의 소개', '목재의 가공과 무역에 대한 기초'가 다뤄졌다. 독일의 산림 발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독일 산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세미나 참석자들이 시청하는 시간도 가졌다.


2009년 7월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는 유럽의 현대적 산림 경영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북한 연수단을 이끌고 네덜란드와 독일에 갔다. 2009년 11월과 12월엔 평양 산림계획기술원의 직원 두 명이 브란덴부르크 산림청의 파이츠 식림과와 클라우스 젤리거가 청장으로 있는 리버로제 산림청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곳에서 기술원의 두 직원은 지속 가능한 산림에 대해 심도 있게 살펴봤다. 또한 현대 독일 산림, 산림 발전, 산림청의 업무와 산림법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도 소개 받았으며 산림 감독관 및 목제공의 실무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또 산림 경제 부문에 특성화되어 있는 에버스발데 실용과학대학의 산림 연구 및 훈련에 대한 소개도 받았다.


한스 자이델 재단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또 다른 분야는 전통적 유기농업이다. 북한의 식량 사정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홍수, 토양 퇴화, 식량 부족의 문제로 지난 20년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또한 금융 제재로 인해 모든 농장에 충분한 비료와 살충제를 공급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 거름과 생물 해충 방제를 이용하는 유기농업은 이에 대한 확실한 대안이며 북한은 몇 년 전부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2009년 5월 한스 자이델 재단은 평양에서 '유기농 상품의 경작, 가공, 유통, 무역'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독일 전문가를 초청해 다양한 부처와 학계에서 온 북한 참석자들을 상담했다. 세미나 분과회의는 유기농업의 원리, 세계의 유기농업, 유기농 생산의 실제와 같은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었다. 이 밖에 규제 및 자격에 관한 분과회의도 있었다. 2009년 7월 유기농 연구소 회원들과 함께 유럽 연수를 진행했으며 그곳에서 유럽의 성공적인 유기농업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2009년 말부터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는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지속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재단은 나선 지역의 두 개의 농장과 협력관계를 맺었으며 그곳에 현대적 농업에 대한 연수센터를 지을 예정이다. 2010년 9월경 나선의 첫 번째 연수단이 중국 산둥 지방의 핑두에 위치한 한스 자이델 재단의 농업학교를 방문할 예정이다. 연수 이후 내년부터 가축 (육류 및 유제품 가공)과 유기농업에 대한 연수가 이뤄질 것이다.

 

 

협력의 진전, 평화의 진전
NGO들이 북한에서 일하기 쉬운 상황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매우 필요한 일이다. 북한과 이들 기구들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역량강화활동을 통해 기술 협력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와 북한의 신뢰를 형성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스 자이델 재단 역시 지금까지의 활동 속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평양에 있는 협력기관과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가끔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보였고 의사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아 세미나나 연수가 몇 번씩이고 연기되기도 했다. 북한은 EU의 투명한 사업 방식에 아직 적응되지 않았고 여전히 많은 외국인들이 자국 영토 내에서 일하는 것을 꺼려하는 점이 있다. 때문에 재단이 제안하는 모든 사업이 다 북한 당국에게 수용되지는 않는다. 한스 자이델  재단은 강원도 안변에서 두루미 보호 프로그램을 지원하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제안은 거부된 적이 있다. 적당한 북한 내의 사업 파트너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당국이 그들 나름의 의제를 가지고 사업 협력기관을 선정하는데 그렇게 선정된 기관과 재단이 협력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이 모든 현실적 난관에도 불구하고 실무 차원에서 접촉하는 세미나 협력자들과 참석자들은 꽤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재단의 규칙과 규정에 대해 지켜주고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앞으로 더 많은 프로젝트가 더욱 향상되고 긴밀한 협력 아래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독일의 민간재단과 북한사회의 환경, 농업 분야의 파트너들이 만들어가는 북한의 환경과 농업 역량의 확대는 평화의 확대라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북한 숲이 되살아나고 농업 생산성 회복이라는 사회적 역량의 강화라는 한스 자이델 재단과 북한 내 파트너들의 노력이 북한사회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얻어 공존을 위한 도움과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길에 들어서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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