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은 가습기 살균제 책임지는 이가 없다

사람 잡은 가습기 살균제 책임지는 이가 없다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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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목숨을 잃은 아이 ⓒ최예용


“헉헉. 죄송합니다. 숨이 차서. 발표가 조금 부족해도 이해해주세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지난 11월 1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2차 피해사례 발표와 정확한 실태조사를 위한 국회토론회’에 그녀는 힘겹게 발표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몸에 이상을 느낀 건 2011년 4월 임신 29주차 때다. 기침이 심해 잠을 잘 수 없었다. 단순한 감기 증세라고 하기엔 날이 갈수록 기침과 가래가 너무 심했고 급기야 구토까지 올라왔다.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5월 27일 병원에서 폐 기능 검사를 하던 중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바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 다음날 바로 큰 병원으로 옮겨 강제출산을 한 그녀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병명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간질성폐질환. 30살밖에 안 된 그녀의 폐는 이미 딱딱하게 굳어 손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했다. 의료진은 당장 폐 이식을 해야 살 수 있다고 했지만 그녀는 7월 21일 퇴원했다. 현재 자비를 들여 가정용 산소발생기를 대여해 집에서 산소치료를 하고 있다. 몸속의 산소수치를 측정하는 옥시미터기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움직이면 산소수치가 내려가기 때문에 일상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동안 그녀가 겪은 고통들은 그녀의 다이어리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임신부라 적절한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가습기를 사용했다. 남편은 매일 가습기를 칫솔로 꼼꼼히 닦고 가습기 세정제로 살균했다. 더 안전하게 사용하려고 넣었던 가습기 살균제가 폐를 망가트릴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폐 이식을 해야 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세자금과 가족들 돈 다 끌어서 폐 이식한다고 100퍼센트 완치되는 것도 아닌데 내가 폐 이식 받고 행복하겠는가.”라며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울음 때문에 잠시 호흡곤란을 일으킨 그녀는 산소통으로 산소를 공급받으면서 마지막 말을 이어갔다. “내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상품을 팔아 이득을 얻은 회사가 있고 상품을 팔도록 허가해준 정부가 있다. 헌데 이를 책임지는 곳이 한군데도 없다. 개인의 잘못으로 처리하면 안 되지 않나. 분명한 책임소재와 지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사망자만 28명, 피해 사례 계속 늘어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이 마련한 이날 토론회에는 신 모 씨 외에도 가습기 살균제로 손녀를 잃은 할머니, 심장과 폐 이식을 받아야 했던 성인 남성, 남편과 아이 모두 폐질환에 걸린 인도네시아 주부, 기관지염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걱정된다는 간질성 폐렴과 폐 섬유화증에 걸린 엄마 등 피해자들이 참석해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당한 이들은 이들뿐만 아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피해자모임(cafe.daum.net/ keepus)으로 접수된 피해 사례는 11월 9일 현재까지 총 91건. 이중 태아 1명, 영유아 17명, 소아 4명, 산모 3명, 성인 3명 등 총 28명이 가습기 살균제로 목숨을 잃었다. 6명은 폐 이식을 통해 목숨을 건졌다. 피해사례도 초기 산모, 영유아 피해에서 가족단위의 사례 접수가 늘고 있다. 이들을 통해 접수된 전체 피해사례의 45퍼센트가 가족단위 피해에 해당하고 모든 연령대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전했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원인도 모른 채 고통을 겪다가 가습기 살균제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피해자모임으로 피해 사실을 알려오고 있다. 사용제품, 사용기간 등은 제각각 다르지만 기침 같은 감기 초기 증세를 보이다가 급속도로 상황이 악화된 경우가 대다수다.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는 “초기 감기와 같은 증상으로 시작하다 호흡곤란, 식욕 감퇴로 이어진다. 병원에 올 때는 이미 폐가 찢어지고 호흡이 심해진 상태다. 무엇보다 사망률이 46.2퍼센트로 어떤 질병보다도 높다.”고 설명했다.

 

역학조사 이어 동물실험에서도 확인
역학조사에 이어 동물실험 결과도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의 원인인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 지난 11월 11일 정부는 시중에 판매중인 가습기 살균제 6종을 대상으로 동물 흡입실험을 진행한 결과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한 동물의 세기관지 주변 폐 세포가 손상되고 이러한 영향이 누적되어 폐조직의 섬유화성 병변이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폐 손상 원인으로 지목한 살균제 성분은 PHMG, PGH다. 이들 물질은 구아디닌 계열의 화학물질로 살균력이 뛰어나고 물에 잘 녹아 가습기 살균제뿐만 아니라 샴푸와 물티슈, 부직포 등 여러 가지 용도에 사용된다. 이들 성분은 피부 접촉이나 섭취 시 독성이 다른 살균제에 비해 적다고 알려졌지만 흡입했을 때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확인됐다. 이와 함께 질병관리본부가 11월 11일자 「주간 건강과 질병」에 발표한 ‘가습기를 통한 가습기 살균제 입자 발생 실험 결과’에 따르면 물을 가습기로 분무하면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물방울 에어로졸이 발생하는데 화학물질이 물속에 녹아있다면 살균제 입자 에어로졸이 생성되고 생성된 에어로졸의 많은 양이 호흡기는 물론 폐내 깊숙한 곳까지 침착되는 것으로 예측했다. 사실 이미 몇 년 전에 식약청과 환경부는 살균소독제 흡입 시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는 공산품으로 분류돼 아무런 안전성 검증 없이 시중에 유통됐다.  


정부는 동물실험에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 6종에 대해 수거 명령을 내렸다. 해당제품은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 세퓨,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아토오가닉 가습기살균제, 가습기클린업 등 6종이다. 이어 18일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하는 고시안을 행정 예고했다. 공산품으로 분류돼 관리하지 않았던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해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의 허가 및 관리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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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9일 각계 사회 인사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생활용품이 살인기계로 돌변했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정부의 조속한 대책을 촉구했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대책 전무한 정부의 대책
정부 발표에 피해자 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발표는 엉터리라고 반발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다. 피해사례신고센터를 정식으로 설치한 것도 아니고 제품리콜센터를 설치한 것도 아니다. 제품에 대해서 일부만 조사했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또 나올 우려가 크다.”며 비판했다.


사실 그동안 정부의 태도는 피해대책을 세우기보다 오히려 피해를 방치하고 피해자들의 분노를 키워온 측면이 더 크다.
지난 8월 31일 정부의 역학조사 발표 후 피해자들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피해사례를 접수받고 세 차례에 걸쳐 토론회를 열어 추가 피해실태 발표와 함께 가습기 살균제의 즉각적인 판매중지와 회수, 의약외품으로 지정 등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정부는 동물실험이 진행중이라며 8월 내놓은 대책을 되풀이하는 수준이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국무총리실 차원에 TF가 구성됐다고 한 것이 지난 8월 31일인데 지금까지 한 번도 회의가 열리지 않았고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도대체 태아, 영유아, 산모와 성인 등 수많은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도대체 정부는 뭐하고 있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특히 피해자와 시민단체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가습기 살균제의 즉각적인 리콜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았다, 동물실험 결과가 나오면 판단하겠다며 제조사와 판매업체에 자발적 제품 회수 권고에 그쳤다.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사회 및 예방의학교실 임종한 교수는 “교차비(환자-대조군 연구에서 관련성을 나타내는 통계학적 지표)가 1이면 관련성이 없는 것이고 1보다 크면 특정요인이 질병 발생의 위험을 높이는 위험요인이다. 폐암 발생에 대한 흡연의 교차비가 10이상인데 이번 폐질환에 대한 가습기 살균제의 교차비는 47.3이다. 이는 강력한 증거”라며 정부 주장을 반박했다.


또한 제품안전기본법에 따라 강제수거가 가능했다. 제품안전기본법에 따르면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중앙행정기관의 판단 하에 중대한 결함 즉, 사망 또는 4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소비자의 생명, 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강제수거를 할 수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황정화 대표는 “즉각적인 리콜을 할 경우 피해는 기업들의 영업상의 이익일 것이고 즉각적인 리콜을 하지 않을 경우 피해는 추가적인 피해자들의 생명 위협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람 죽인 가습기 살균제 누가 책임지나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밝혀졌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억 대에 달하는 이식 수술비와 한 달에 수백만 원에 달하는 약값과 기기를 피해자가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제조사 사이에 개별 소송에 의해 배상문제는 해결될 것이라며 모른 척하고 있다. 정부의 동물실험 발표 후 가습기 살균제를 가장 많이 판 옥시싹싹은 정부 조사와 별개로 추가 실험을 자체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애경은 정부가 발표한 6개 제품에 자사 제품이 없었으므로 안심해도 된다면서 정부 권고사항에 따라 더 이상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는 입장이다. 자사의 이름을 걸고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해온 대형마트는 아무런 언급조차 없다.


▲피해자 가족들에 대해 대통령과 해당기업 책임자의 공식적인 사과 ▲전국 실태조사를 위한 피해신고센터 설치 ▲모든 가습기 살균제 제품 조사 ▲정부 차원의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보상 대책 수립 등은 가습기 살균제로 아이와 가족을 잃고 건강까지 위협받고 있는 피해자들의 최소한의 요구이며 추후에 발생할 수 있는 화학물질 생활용품 피해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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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1일 정부의 동물실험 결과와 대책 발표 후 환경단체 회원들과 피해자들은 엉터리 발표라며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자 보상 대책 및 재발방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수거 명령 대상 6종과 환경보건시민센터에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순번 / 제품명 / 제조업체 / 성분명 / 피해 사례 건수 (괄호는 사망 건)


 1 옥시싹싹 New 가습기당번 (주)한빛화학 Polyhexamethyleneguanidine phosphate 59(22)
 2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 용마산업사 Polyhexamethyleneguanidine phosphate 16(3)
 3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용마산업사 Polyhexamethyleneguanidine phosphate 5
 4 세퓨 가습기살균제 (주)버터플라이이펙트 Oligo(2-(2-ethoxy)ethyl guanidinium chloride) 5
 5 아토오가닉 가습기살균제 아토오가닉 Oligo(2-(2-ethoxy)ethyl guanidinium chloride)
 6 가습기클린업 (주)글로엔엠 Polyhexamethyleneguanidine hydrochloride 1
 7 애경 가습기 메이트 애경산업  19(4)
 8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 이마트  7(2)
 9 함박웃음 가습기 세정제 GS리테일  4(4)
 10 엔위드 클라나드  4
 11 클라나드 클라나드
 12 하이지어(담채형) 에이엔씨아이
 13 하이지어(필터용) 에이엔씨아이
 14 산도깨비 가습기 퍼니셔 다이소  3(2)
 15 가습기청정제 아토세이프  1
 16 유아전용 가습기항균제 아토세이프
 17 홈워시 가습기 살균세정 홈워시
 18 항알레르겐 토마스가습기
 19 가습기무균 바이오피톤
 20 에어가드 리퀴드 에어가드


● 1~6은 동물실험 결과 수거명령을 받은 제품. 그 외 제품은 성분이 밝혀지지 않음
● 전체 피해자이 절반 정도가 복수의 상품을 사용

 

 


가습기 살균제 Q & A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있다면?
당장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중지하고 해당제품을 구입한 곳에서 환불 조치를 받는다. 정부가 발표한 6개 제품 이외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도 마찬가지다. 또한 몸에 이상이 있으면  살균제 사용기간이나 사용량에 상관없이 환경보건시민센터나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에 문의할 것을 당부한다.

 

가습기 관리는?
가습기 물때와 곰팡이는 살균제나 세제 대신 식초나 베이킹소다 등을 물에 풀어 헹구거나 뜨거운 물을 담아 10분 이상 담가두면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가급적 가습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권한다. 가습기는 미세한 물 입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언제라도 화학물질이나 바이러스가 흡착되어 폐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환경독성학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대신 환기를 하고 젖은 수건이나 빨래를 널거나 어항, 수반에 수경재배나 숯을 이용해 집안 습도를 유지할 것을 권한다. 

 

다른 살균제는 문제없나?
가습기 살균제처럼 살균 세정제가 미세한 입자로 만들어져 흡입을 통해 폐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스프레이나 연막 형태의 살균세정제, 냉장고 항균탈취제 등에 대해선 경계해야 한다. 시중에 판매중인 살균제 대부분이 살균 성분 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며 이에 대한 안전성 검사나 관리를 받지 않은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저농도라고 해도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건강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는 항균, 살균 성분이 들어있는 비누, 세제 등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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