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대를 위하여] 안개 속에서 당신은

안개 속에서 당신은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미스트』(The Mist)는 2008년 1월 한국에도 개봉된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다. 『쇼생크 탈출』 감독인 프랭크 다라본트의 작품인데다가, 한국 배급사들이 ‘초특급 블록버스터 SF’라고 선전했던지라 엄청난 판타지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영화 보러간 사람들은 나오면서 다 욕을 해댔다. SF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관한 무거운 드라마를 보여줬던 탓이다.


주인공 데이빗은 아들을 데리고 대형마트에 갔다가 안개 속 괴수들로 인해 마트에 갇힌다. 한 여인이 집에 아이들을 두고 왔다며 데이빗에게 동행을 부탁하지만, 데이빗도 지켜야 할 아들이 있다. 그녀는 혼자 안개 속으로 나선다. 마트에 갇힌 사람들은 괴수들과 사투를 벌인다. 공포에 질린 이들의 영혼을 장악한 건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카모디 부인. 미군 실험 때문에 차원이 비틀리고 이계의 괴수들이 침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사람들은 카모디 부인이 말하는 ‘죄의 대가로 인간과 세계에 내리는 신의 징벌’이라는 말에 더 공감한다. 보편적 이성의 틀을 벗어난 재난 앞에서 인간은 초월적 논리에 굴복한다. 마트 안에 갇힌 이들은 카모디 부인의 말을 맹신하는 자들과 이성적으로 인간의지를 굽히지 않으려는 소수의 사람들로 갈린다. 데이빗은 카모디 부인을 막아서지만 역부족이다.
마트 탈출을 감행한 데이빗과 그의 아들, 여교사, 노부부 5인은 마트를 나와 차량으로 안개 속 마을을 빠져나간다. 마침내 기름이 떨어지고 괴수들이 다가온다. 데이빗은 권총을 꺼내든다. 아들을 본다. 노부부를 본다. 여교사를 본다. 그리고 자신만 남아 생을 마감하기 직전, 데이빗은 보게 된다. 미군 구출부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집에 남은 아이들을 구하러 안개 속으로 달려갔던 마트의 여인이 그녀의 아이들,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구출되어 트럭을 타고 안전지대로 가고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데이빗이 놓였던 극도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가 인다. ‘뭐야, 이거! 문제도 미군이 일으키고 해결도 미군이 하네. 싸구려 군사주의 찬가군!’ 그러나 그건 영화의 표층일 뿐, 작가와 감독은 심층의 다른 질문을 하고 있다. 초월적 재난에 직면한 인간이성의 몰락을 보라! 재난의 무논리성과 비합리성을 보라, 그에 비해 인간은 얼마나 약한가! 구원자를 자처하는 현실 속의 시끄러운 무당들에게 기대고 싶을 때마다 나는 이 영화를 떠올리고 자문한다. ‘존재를 시험받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대통령이 한미FTA 비준을 1월 말이나 2월 초 할 모양이다. 이미 핵발전소 밀집도 세계 1위인 마당에 삼척과 영덕에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완공과 동시에 줄줄 새는 4대강 보들도 땜질로 넘기겠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을 흡수통일 기회라고 떠드는 소리도 시끄럽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용 정략이 국민 정서를 뒤흔들고도 있다. 안개 속에 고립된 한국 마트의 여러분에게 묻는다. 2011 한국의 여러분, 자본과 권력의 영매들-카모디 부인의 추종자가 될 건가요? 아버지이며 시민-데이빗처럼 행동할 건가요? 한 마디만 하죠.
“미군 구출부대는 안 올 겁니다. 사실 우리 현실에 괴수는 없거든요, 안개만 자욱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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