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대를 위하여 6] 이브의 딸들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일단의 분자생물학자들이 모계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적해 현생인류의 기원이 된 여성, 이브를 추정해냈다. 그녀는 20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 위를 걸어가던 검은 피부, 검은 머리를 가진, 특별히 아이를 튼튼하게 잘 낳는 여성이었다. 그녀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물려받은 자손들은 사회적 협동능력과 그 유대관계를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갔다. 이 현명한 선택이, 인류 진화사에서 한때 주류였다가 곁가지로 사라져간 다른 종의 호미니드(직립보행하는 영장류)들과 다른 승리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다른 종들보다 더 좋은 뇌를 가졌다고 해서 그 종이 꼭 진화의 승자가 되라는 법은 없다. 현생인류를 진화사의 승자로 만든 진정한 능력은 바로 이브와 그녀의 딸들이 보여준 건강한 아이를 많이 낳는 생산성, 출산능력이었다.

인류의 진화, 인류의 종(種)적 생존이 이브의 딸들이 지닌 생산성에 기대고 있다면, 1956년 일본 미나마타에서 발생한 공해병은 바로 이 생산성의 고리가 끊길 수도 있다는 묵시록적인 사건이다. 유기수은에 노출된 여성들이 낳은 아기들은 출생과 동시에 이미 미나마타병을 지니고 태어났다. 평생을 미나마타병 연구에 몸 바친 하라다 마사즈미 박사는 태아성 미나마타병 환자들의 존재 앞에서, 더 이상 태반이 영양물질만 골라 아기에게 보내고, 위해물질은 걸러내는 마법의 집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임신, 출산, 수유를 통해 이브의 딸들은 아이들에게 체내에 지닌 영양물질들을 집약적으로 전달한다. 의식이 시켜서가 아니라 몸 속 깊이 DNA가 시키는 대로. 이 작용, 체내에 들어온 물질을 아이에게 몰아주는 여성 인체의 신비는 튼튼한 후손을 낳아야 유전되는 DNA의 생명의 전략이다. 여성의 몸이 보여주는 이 헌신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류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 하는 축복이다. 그리고 화학오염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인류에게는 비극이기도 하다. 복합적인 화학오염물질의 범람에 직면해 이브의 딸들은, 아니 더 정확히 그녀들의 몸은 무엇이 영양물질이고 무엇이 화학오염물질인지 가늠할 길이 없다. 체내에 유입된 새로운 물질들을 고이 모아 태아에게 보내주고야 마는, 지금까지 축복이었던 임신, 출산, 수유의 메커니즘은 인류 멸종의 저주가 될 수 있다(김록호, 1998).

진화의 시간은 엄청나게 길었고 그 시간은 인체가 유해한 물질과 안전한 물질을 분별할 수 있는 느린 시간이었다. 그러나 화학산업이 시작된 지 고작 100년이 지났을 뿐이다. 인류는 대체 얼마나 많은 종류의 화학물질을, 얼마나 생산해 유통시켰는지도 모르고 있다. 알려진 피해물질보다, 알려지지 않은 피해물질들이 더 많을 수도 있고 이들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피해에 대해서는 거의 전적으로 무지할 뿐이다.

치명적인 피해에 대한 통렬한 지적이 거세된, 의학적으로도 부적절한 환경호르몬이라는 조어 대신 ‘내분비계장애 화학오염물질’이라고 불러야 옳다. 만일 우리가, 화학오염물질들이 환경을 오염시킴으로써 여성의 몸을 오염시키고 이로써 태아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무시한다면, 화학오염물질에 의한 인류 진화의 엔진 정지라는 종말에 이르고 말 것이다. 당장, 화학산업을 교정해야 한다. 당장, 화학물질정보를 종합하고, 그에 따르는 생산과 유통의 규제, 대체재 개발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픈 이들을 위한 사회적 치료는 그런 다음이라야 효과를 보기 시작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도 여전히 산업의 이익을 다투는 입들에게는 재갈이 물려져야 마땅하다.
함께사는길 hamgil@kfem.or.kr
제작년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