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환­­­­경운동을 하냐고?

파주(坡.언덕 파, 州 고을 주). 이름처럼, 산이라고 하기에도 뭐하게 낮은 언덕들이 물결처럼 이어지는 곳. 나는 나지막한 고갯길 언덕에 서서 산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지는 장관에 홀려 있곤 했다. 해질녘 한강, 임진강 물줄기가 스며들듯이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질펀한 갯벌의 매력에 취해 시간을 잊고 서있기도 했다. 옛적부터 수도로 꼽혀왔고, 통일이 되는 날에도 그런 가치로 주목받으리라는 풍문을 들을 때 고개가 끄덕여진 것도 그런 지형의 품격을 알고 있어서였다. 

중학교를 마치고 시작된 도시에서의 20년 객지 생활 내내 나는 고향으로의 귀환을 사무치게 꿈꾸며 나만의 귀거래사를 읊조리며 살았다. 강파르고 메마른 도시생활에 지치면 훌쩍 기차를 집어타고 파주로 달려오곤 했다. 굽이진 강줄기와 낮은 산들과 벌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고, 가문 땅에 빗물이 스며들듯 위안을 받곤 했다. 95년 농사를 지으려 귀향하면서 구태여 ‘뒷골’이라는 동네에 둥지를 튼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강물이 마을을 감싸 흐르고, 꽤 길게 이어진 소나무 오솔길이 아직도 남아있던 곳. 밤이 툭툭 떨어질 무렵, ‘여기도 밤 있다’며 봉지 가득 밤톨을 주워 담던 아이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숲 가득 울려 퍼지던 곳. 여름이면 유난히도 장수잠자리가 많아 땡볕을 마다않고 동무들과 놀러오던 곳. 아직도 또렷이 떠오르는 쪽빛과 초록빛 꼬리의 장수잠자리가 떼 지어 날아들던 곳. 그런 오묘한 빛깔과 소리와 자태가 어우러져 나를 숨 쉬게 해준 추억의 땅, 파주. 나는 귀향하면서 여기 뼈를 묻을 수 있으려니 하며 얼마나 가슴 벅차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귀향한 지 1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여기 내 뼈를 묻을 곳이 남아있을지 영 자신이 없고 조바심만 난다.


귀향할 무렵부터 개발 폭풍의 징후가 예감되기는 했다. 여기 출신 국회의원의 발의로 「접경지역개발법」이 만들어지고 그에 따라 별의 별 사업계획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다. 남북교류의 물꼬는 그 길목에 자리 잡은 파주의 산하를 망쳐 놓기 시작했다. 북에서 DMZ를 가로지르며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사천강은 개성공단의 공장 폐수로 오염되어 재두루미 서식처를 위협했다. 북으로 내달리다 끊어진 철도를 이어 붙이고, 도로를 깔고 송전선로와 탑을 놓는 사업은 오랫동안 개발에서 한발 비껴있던 DMZ 생태계를 강타했다. 남북전쟁 이래로 막혀있던 한강 하구의 물길을 뚫으려는 야욕은 이름을 달리하면서 불쑥불쑥 출몰했다. 자유로의 개통으로 기지개를 켠 파주 서남부의 개발축은 수백만 평에 이르는 신도시와 수십만 평의 LG필립스를 낳았다. LG 첨단산업단지, LG 협력공단 등 LG왕국의 영토는 날로 늘어가고 있다. 

이런 흐름은 수도권의 폭주를 제어하던 법률을 무력화시키면서 밀려왔다. 바야흐로 개발의 폭풍이 휘몰아쳐온 것이다. 이토록 대규모의 개발이, 이토록 빠른 속도로 내질러져 가히 지도를 바꾸어가고 있는데, 여기 대대로 살아오던 이들은 속수무책 쫓겨나면서 단말마 같은 저항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 ‘개발이 되면 살기 좋아진다.’는 무섭도록 단순한 논리에 휘둘린 세상 여론은 여기서도 활보했다. 발 빠르게 개발의 떡고물을 챙기려는 지방 권력과 유지들의 바람잡이 또한 어김없었다. 


내가  ‘팔자에 없는 환경운동가’로 길을 떠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여기 아름답던 산하가 시뻘건 황무지로 변해 신도시 아파트촌으로 내몰리던 날, 추억을 강간당한 자의 분노가 나를 떠밀었다. 그로부터 햇수로 8년. 그동안 ‘고향이 아니었으면 진즉에 때려치웠을 것’이라는 심사가 들 정도로 나름대로 애써왔지만 지금 무서운 기세로 파헤쳐지거나 좀먹어 들어가지 않은 곳을 떠올려보기는 쉽지 않다. ‘나는 어떤 환경운동을 해야 하는가?’ 이 화두를 놓은 적은 없지만 한없이 민망하고 무력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를 기분에 젖어들 때가 많다.   

이제 멀쩡한 산을 찾아볼 수 없다. 내로라하는 산자락에는 공장이다 채석장이다 쓰레기 처리장들이 곳곳에 스며든 터에 5개의 골프장이 추진되면서 법과 제도로 보장된 녹지축마저 허물고 있다. 그러나 골프장을 체육시설로 규정하고 손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폭을 넓혀주는 법률로의 개정 이후, 산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골프장을 막아내는 싸움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채석이 금지되었던 높은 산꼭대기마저 채석단지로 내줄 수 있도록 관련법을 슬그머니 개악했다. 

‘미군기지 관련 특별법’은 파주시 전역을 현행법이 규정한 절차를 건너뛰고 개발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이러한 ‘묻지마 개발’의 광기는 지난해 이화여대에 ‘선 승인, 후 절차 이행’ 개발을 허용한 쿠데타 행정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중앙 정부의 낙하산식 개발계획에 함구하고 편승해왔던 지방권력은 ‘대통령 표창’으로 칭송되었지만, 수십 년간 미군기지로 빼앗겼던 땅을 반환받으면서도 원주민들은 애초의 땅보다 더 많은 땅을 또다시 얼굴을 달리한 기득권층에 빼앗길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누구를 위한 개발, 누구를 위한 법 개정이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 애초에 법은 개발을 통해 이득을 보는 이들의 이해관계를 보장하기 위해 맹렬하게 힘이 맞부딪히는 전쟁터다. 그에 비하면 그 전장에 나가는 우리의 무장은 소박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전쟁에 나갈 이들을 불러 모으고 무기를 벼리는 일로 밥상을 챙기듯 부스럭거린다. 이제는 내 뼈를 묻을 자리를 남겨두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매 순간 밀려오는 맹목과 불합리에 휘둘리지 않고 힘껏 대응하는 것이 살아있음의 증표라고 느끼고 있어서일 터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지금 우리는 어떤 환경운동을 해야 하는가? 


이현숙 파주환경연합 의장직무대행 paju@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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