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 국회의원, 정부와 국회에 맞짱 뜨다

외톨이 국회의원, 정부와 국회에 맞짱 뜨다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이 강에 고등어만한 은어가 오게 할 수도 있고, 은어 씨를 말라버리게 할 수도 있는 게 정치지.”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도 이 강에 고등어만한 은어가 오게 할 수 있는 정치인은 없을까. 국회 안에서 녹색 희망을 기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그 답을 들으러 일요일 저녁, 국회의원회관 322호로 향했다.

 

지역에서 국회로 옮겨간 환경운동
작은 사무실 안, 일요일 저녁임에도 다들 분주했다. 국정감사 기간이라 자료를 정리하고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틈에 점퍼차림의 그가 있었다. 현장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제가 이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몰라볼 때가 많아요. 보좌진이 국회의원인 줄 안다니까요.”하며 인사를 건넨다.  


유원일. 국회의원으로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사실 환경연합 안에서는 익숙한 이름이다. 금배지를 달기 전 시흥환경연합 회원에서 공동대표까지 역임한 환경운동가다.
그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6년 시화로 이사를 가면서부터다. “냄새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새벽에도 머리가 아파서 잠을 깰 정도였어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그는 무작정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악취를 내뿜는 폐기물 처리업체를 찾아냈고 비슷한 업체가 동네에 7개나 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주민들과 함께 악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환경문제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고 1998년에는 시흥환경연합에 회원으로 가입, 활동하기 시작했다. 주민들과 함께 오이도 갯벌 매립을 막고 시화호로 유입되는 오수관로 중 부실시공으로 잘못된 것들을 찾아내 바로 잡게 하는 등 아직도 그 시절, 그 활동들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2007년에는 시흥환경연합 공동대표로 선출됐다.


정치와 인연을 맺은 것은 공동대표에서 물러나면서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공동대표에서 물러나고 때마침 시민진영이 적극 지원하는 창조한국당이 창당했어요. 주변의 권유도 있고 해서 그 당에 시민사회계를 대표해 참여했죠.”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3번을 받은 그는 하마터면 국회에 들어오지 못할 뻔했다. 당시 총선 결과 창조한국당은 비례대표 2석만 차지한 것이다. 그러다 같은 당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그가 의원직을 승계하면서 2008년 12월 17일 국회에 들어왔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18대 국회에 들어왔지만 그것을 만회하기라도 하는 듯 무섭게 활동하고 있다. 국회의원 등록을 하자마자 야당 의원들과 검거농성에 들어가 금산분리 완화를 위한 은행법 개정안, 출총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독점거래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이른바 MB악법 통과를 막아낸 것을 시작으로 쌍용자동차 파업사태 때는 노동자들 대량 해고를 막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고, 미디어법 통과 때는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조계사 앞 천막으로 의원실을 옮기기도 했다. 국정감사 때는 충실한 자료와 날카로운 질문으로 국감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국회 기후변화특위로 활동하면서는 녹색성장기본법에서 핵 발전을 제외시키는 성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출했는데 핵 발전이 포함돼 있었어요. 녹색성장에 핵이라. 얼마나 황당해요.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했죠. 결국 녹색성장기본법에서 핵이 빠졌어요. 환경연합과 김진애 의원의 도움이 컸죠.”


국회의원치고 그처럼 많이 맞은 국회의원도 드물 것이다. 작년 쌍용자동차 사태 때 노동자와 함께 있다가 사측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는가 하면 최근엔 이포보 고공농성장을 찾았다가 4대강사업 찬성측에게 각목으로 폭행당한 일도 발생했다. 국회의원 신분임을 알렸고 현장에 경찰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위험천만한 일을 당했음에도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옮은 일이라면 가야죠. 그게 진정 국민을 위하는 일 아닌가요. 더 위험한 곳에 가서 그들과 같이 있어야죠. 저만 위험합니까. 거기 있는 사람들은 더 큰 위험에 처해있는 거 아닙니까. 제가 방패막이 되어 위로가 되고 그들에게 완충작용을 해주는 게 제 역할 아닙니까.”

 

4대강사업 반대는 국민의 뜻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달라진 게 있을까. “불편한 게 많아졌어요. 국회의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사람들이 어려워해요. 예전에 ‘형’, ‘동생’하던 사람들마저 ‘의원님’ 하는데 전 참 불편합니다. 전 달라진 게 없는데 벽이 생긴 것 같아요. 또 행동도 예전보다 자유롭지 못하죠. 자리가 자리이다 보니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원하는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다는 것, 또 환경 운동하는 후배들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좋아요. 4대강문제만 하더라도 ‘신분’ 덕을 많이 봤습니다.”
그는 국회보다는 현장에 더 많이 나가고 정치인보다는 시민들을 더 많이 만난다. 최소 일주일에 두 번은 현장 어디든 다니며 사람을 만난다. 또 일부러 택시를 타 귀동냥을 하기도 한다. “정치인은 무엇일까요. 국민의 소리를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아서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정치인 아닐까요? 국회의원은 관료가 아닙니다. 국민의 바람과 생각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제도화하고 개선하고 미래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국민의 생각을 보지도 못하고 만나지 못하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이 밥을 원하는데 빵을 갖다 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4대강사업을 막아내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사실 그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도 아닌 정무위원회 소속이다. “연간 9조8000억 원이 소요되는 대형국책사업이라면 적어도 수십 년 전부터 예산을 준비해왔어야 합니다. 세입은 더 발생하지 않았는데 세출이 발생한다면 빚내서 한다거나 다른 예산에서 빼온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4대강사업 할 정도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지 수십 년 전부터 검토했어야 합니다. 불과 2, 3개월 만에 해치운다는 것은 너무나 큰 후유증을 낳을 수 있어요.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옵니다. 사업을 한다는 과정 하에서 환경, 식수 등의 문제들이 발생하는 겁니다. 막아야죠.”


특히나 현장을 보고 주민들을 만나온 그다. “김해 한림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2년 전에 3억5000만 원 빚을 냈어요. 근데 나가라고 하는 겁니다. 외지인인데다가 1년밖에 농사계약을 하지 않았다고 보상도 없었어요.
그 사람, 자살했어요. 삼락지구에서 농사짓던 늙으신 어르신의 서글픈 눈빛도 잊을 수 없어요. 그들의 눈물 위에 4대강사업을 하는 겁니다.” 정부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환경부장관이 단양쑥부쟁이는 흔한데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국토해양부가 파괴하면 환경부가 막아야 하는데 이놈의 정권은 어떻게 된 게 국토해양부가 파괴하면 환경부가 나서서 거들고 있어요. 균형을 맞추는 게 없어요. 절름발이 정부, 외다리 정부에요.”


현재 그는 환경연합 등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4대강사업 국회검증단 구성에 찬성했으며 국회 안에서도 검증단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무대응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국민이 선택을 잘못 한 것입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을 비롯해 보수적인 의원들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어요. 균형이 깨져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토건주의, 콘크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의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았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과 우리 환경 운동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국회와 정부에 알리는 일이 내가 할 몫입니다.”

 

환경운동의 이름으로
“진짜 너무 외롭고 힘듭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뜻밖의 말을 건넨다. “속에서 열불 날 때 많아요.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엉뚱한 소리만 한다고 하고 안 먹힐 때도 많고. 힘들죠. 무엇보다 진심으로 환경을 생각하고 환경의 가치가 미래의 최고 가치라고 공유할 만한 사람이 국회 안에 많지 않아요. 그게 제일 외롭습니다.” 그래서 그는 환경운동하는 후배들이 정치에 많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도 환경운동은 정치와 멀리해야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정치를 반녹색으로 보는 겁니다. 솔직히 그동안 정치가 그래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녹색을 녹색으로 바꿀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는 그런 시각에 대해 이런 말로 답을 대신했다. 


18대 국회도 반을 넘었다. “일단은 남은 임기 동안 ‘녹색’을 많이 알리고 싶어요. 시민운동가로서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후배들이 국회에 들어왔을 때 잘할 수 있다, 그런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습니다. 시민운동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습니다.” 국회 안이든 밖이든 여전히 환경운동을 하며 현장을 누비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직 국회 안에서 그는 외톨이다. 하지만 그는 환경운동의 이름으로 은어씨를 말려버리려는 정부와 국회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 이 강에 고등어만한 은어가 오는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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