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매연 담배연기 그리고 법원 _ 여영학


포근한 겨울 낮, 오늘처럼 바람까지 잦아든 날 오후쯤 되면 서울의 빌딩가는 시꺼먼 먼지 덩어리로 뒤덮인다. 승용차를 한두 시간만 세워두어도 차 유리에 검댕이 두텁게 엉겨 붙는다. 그러니 공기 중에 떠다니는 그 검댕, 매연, 먼지를 진종일 들이마시며 사는 이곳 사람들이 병에 걸리지 않고 버티는 게 용하다. 서울의 대기오염 정도면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대기오염으로 병에 걸려 죽을 확률이 몇 배 더 높다는 전문가들 얘기가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이 지경이 되어도 다들 태평이다. 도리어 자동차는 나날이 늘어만 가고 바람길을 막아서는 마천루들은 찻길 양쪽으로 마치 대밭의 죽순처럼 치솟아 오른다. 천 몇 백만 서울시민들은 어쩔 도리 없이 죽음의 재를 들이마시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 중 누군가는 끝내 호흡기질환으로 병원에 실려 가고 또 누군가는 영문도 모른 채 폐암으로 스러져가겠지만 말이다. 환경부고 서울시고 할 것 없이 누구도 근본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 담배소송은 기각됐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가리기 어려운 것인가
ⓒ함께사는길 이성수

개연성 인정한 일본 법원
이렇게 팔짱만 끼고 있는 정부, 한심한 행정기관을 향해 소리친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 서울보다는 그래도 대기오염이 덜해 보이는 일본 아마가사키, 나고야, 도쿄 등지의 주민들이 그들이다. 도로 가까이에 살면서 그 도로의 자동차 배기가스 때문에 병에 걸린 그 지역 주민들이 소송을 낸 것이다. 재판은 대부분 피해 주민들의 승소로 끝이 났다. 일본 법원은 국가와 도로관리공단에게 적지 않은 액수의 손해를 배상하게 한 데 그치지 않고, 일정 수준을 넘는 배기가스를 배출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까지 덧붙였다. 그 바람에 행정부는 도로변 대기오염 실태를 조사한다느니, 도로에 진입할 수 있는 도로를 제한하는 조치를 검토한다느니 해서 난리가 났고, 지방자치단체에 따라서는 아예 도로 너비를 줄이기도 한 모양이다.
10년이 넘도록 지루하게 이어진 일본의 재판에서 핵심이 된 공방의 쟁점은 역시나 인과관계 문제였다. 주민들의 호흡기질환이 정말로 도로의 자동차 배기가스 탓이냐 하는 것이다. 피고들이 들고 나오는 단골 메뉴는, 가령 이런 것이다. ‘호흡기질환은 대기오염뿐 아니라 알레르기나 흡연 따위의 다른 원인에 의해서도 발병할 가능성이 있는데 피해주민들의 호흡기질환과 같은 피해가 그런 대기오염으로 인한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느냐, 대기오염물질은 공기 중에 흩어지는데 과연 자동차 매연이 피해주민들 거주 지역 대기오염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느냐.’
이런 쟁점에 대해 일본 법원의 판단은 분명했다. 명확한 자연과학적인 증명이 아닌 역학조사 결과만으로도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는 거였다. 또 그 지역에서 배출된 매연이 그 지역의 오염 정도를 결정한다고 보아야 하고, 대량으로 배출하는 자가 오염에 더 많이 기여하기 때문에 자동차 매연이 주거지역 대기오염의 주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일본의 도로변 대기오염 판결 가운데 가장 최근 사건인 2002년 도쿄 주민들의 소송에서도 법원은 ‘대기오염 피해자들이 자동차 배기가스로 말미암아 기관지염 같은 병에 걸렸다.’고 해 인과관계를 비교적 간단하게 인정했다. 피해자인 원고들이 도로 부근 자동차 매연의 영향 범위 안에 살았다는 사실과 그들이 그 지역에 사는 동안 또는 그 직후에 기관지 천식에 걸렸거나 그런 증세가 악화되었다는 사실만 증명이 되면, 원고들이 도로에서 발생한 자동차 매연 때문에 기관지질환에 걸린 것으로 보아야 할 ‘고도의 개연성이 있다고 사실상 추정된다.’고 했던 것이다.


▒ 담배와 폐암, 역학적 인과관계는 인정됐지만 개별적 인과관계는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피해자가 무슨 수로 입증하나
얼마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담배소송 기각 판결이 있었다. 외국에서도 제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 했던 담배소송의 역사에 견주어보면 우리나라 법원이 내린 결론을 섣불리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만 판결이 내세운 논리에는 군데군데 앞뒤가 맞지 않거나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운 면이 있다. 공해소송에서 받아들이는 ‘공해소송의 입증책임 완화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결 이유와 역학적 인과관계는 인정되지만 개별적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한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판결은 그 동안 공해소송에서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덜어주고자 적용해온 ‘개연성 이론’을 짧게 소개한 다음 ‘이 담배소송에서는 입증책임을 덜어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 근거를 요약하면 이렇다.
‘공해소송에서 인과관계에 관한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공해소송에서는 가해행위와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의 고리를 모두 자연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가해기업은 기술적·경제적으로 피해자보다 원인조사가 용이한데다가, 자신이 배출하는 물질이 유해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할 사회적 의무를 부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사회 형평을 고려해서 가해기업이 배출한 어떤 물질이 피해자에게 도달해 손해가 생긴 사실만 입증되면 가해자 쪽에서 그 무해함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보면 원고들이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의 고리를 모두 자연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곤란하거나 불가능한 것은 맞다. 그러나 피고들이 폐암 발병에 대한 원인조사를 하는 것이 원고들에 비해 더 용이하지도 않고, 피고들에게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음을 입증할 사회적 의무가 있음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 그러니 이 사건에는 입증책임 완화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판결에서는 어째서 케이티앤지와 대한민국이 폐암 발병의 원인을 조사하는 게 원고들에 비해 용이하지도 않고, 인과관계 없음을 입증할 사회적 의무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인지, 수긍할 만한 설명이 없다. 고작 의사의 소견밖에 들을 수 없는 개인이 무슨 수로 막대한 돈과 권력을 지닌 거대기업과 국가권력의 연구능력을 따라잡는다는 것인지, 담배가 무수한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앗아가는 현실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인지, 법원의 생각을 헤아리기 어렵다. 당사자의 입증이 없다는 이유로 법리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도 납득하기 어렵다.
또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자연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게 곤란하거나 불가능하긴 하지만, 그 입증책임을 완화할 수는 없다.’는 판결의 논리대로라면, 결국 ‘원고가 승소하는 것은 곤란하거나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만다. 어딘가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 일본은 자동차 매연과 호흡기질환 사이에 고도의 개연성이 있음을 들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역학적 인과관계 부정한 판결
판결은 또,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역학적 관련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원고 흡연자들의 폐암 발병과 흡연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가 입증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 판결이유가 들고 있는 한 가지 근거는 일리가 있다. ‘역학적 인과관계는 집단을 대상으로 하여 다른 요인들이 모두 같다는 가정 아래 추출한 특정 요인과 질병 사이의 통계적 관련성일 뿐인데, 그것을 특정 개인의 구체적 질병 원인을 규명하는 개별적 인과관계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판결이 거기에 덧붙인 또 한 가지, ‘폐암과 같은 비특이성 질환은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므로 흡연 이외의 다른 원인으로 걸릴 수 있고 비흡연자한테도 발병할 수 있다.’는 근거는 통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판결은 ‘발암환경과 유전적 소인의 상호작용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해서 개인의 유전적 소인을 감안하지 않은 채 특정 발암환경에 노출되었다는 것만 가지고 그 개인에게 폐암이 발병한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고까지 못을 박아놓는다.
그런 논리대로 하자면,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병이나 어떤 오염물질 이외의 원인으로 걸릴 수 있는 병에 대해서는 애당초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다른 원인에 의한 발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피해자가 무슨 수로 입증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되면 대기오염 따위의 환경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구제받을 방법은 없는 것이다. 1980년대 온산공단 근처에 살다가 호흡기질환, 피부병, 눈병에 걸렸던 주민들이 제기한 ‘온산병’ 사건이나, 매향리미군폭격장 소음피해 사건에서 법원이 주민들의 피해를 인정했던 데에는 다름 아닌 역학적 증명이 바탕이 되었다. 역학적 방법에 의한 인과관계 입증의 길을 차단하는 듯한 이번 판결의 논리는 종전의 이런 판결과도 모순된다. 무엇보다 담배판결의 이러한 견해는 수많은 사건에서 인과관계의 역학적 증명을 뚜렷이 인정한 일본 법원의 대기오염 판결과는 사뭇 대조를 이룬다.

시대의 소명과 법원
이른바 ‘개연성 이론’과 ‘역학적 증명’ 따위의 법리를 맨 처음 만들어낸 것은 일본의 법원이었다. 공해소송에서 손쉬운 사법구제의 길을 열어놓으려면 피해자들의 입증 책임을 획기적으로 덜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시대의 소명을 깨달은 판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즈음 일본에서는 공장에서 내뿜는 오염물질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병들어 가는데도 정치권은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피해 주민들이 법원으로 몰려들었다. 1970년 무렵 일본의 판사들은 그런 현실을 더 이상 무책임하게 팽개칠 수 없었다. 그런 자각 아래 일본 법원은 이타이이타이병과 미나마타병 등의 피해자들이 낸 공해소송에서 역사적 판결을 하게 된 것이다.
오염물질 때문에 질병 따위의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다시 말해 가해행위와 손해발생 사이의 원인-결과 관계를 증명하는 데에는, 과학적이고 엄밀한 입증이 아니라 개연성 입증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개연성 이론이다. 또 전염병의 원인을 해명하는 데 사용되어 온 역학의 통계적 방법으로 연구한 결과, 문제의 오염물질이 그 질병의 원인이 된 것으로 밝혀졌다면 그것으로 소송에서도 인과관계가 입증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역학적 증명도 같은 맥락이다.
환경오염으로 말미암아 질병에 걸리거나 고통 받는 사람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는 일은 시대의 소명이다. 법원이 그러한 소명에 화답하려면 메마른 논리에 앞서 사람들의 고통과 현실을 깊이 통찰하는 지혜를 지녀야 한다.

여영학 yhyeo@hklaw.co.kr
환경법률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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