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농부들

달랑게 텃밭농 10년차 시민 fabulous@naver.com

 

사람이 농사를 짓는다는 생각, 참 오래된 상식인 듯하다. “농사지은 이의 노고를 생각하면….” 밥상머리에서 밥 한 톨이라도 흘리거나 남기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쉰 내 나는 찬밥을 차마 못 버리고 물로 헹궈 풋고추 고추장에 찍어 한 끼 때우시던 모습을 ‘엄마의 원형 이미지 중 하나’로 품고 있는 이들도 아직은 많다. 먹을 게 흔해졌어도 “사람이 농사지은 걸 아깝게 여겨야 사람”이라는 생각, ‘참사람’다운 생각이다.

사람이 농사를 짓는다는 상식은, 그러나 오래된 편견이다. 벼, 보리, 밀, 호밀, 옥수수, 귀리, 수수, 기장, 율무, 땅콩, 목화, 결명자, 피마자, 목화, 참깨, 배추, 무, 시금치, 호박, 상추, 당근, 파, 양파, 당근, 우엉 감, 사과, 수박, 참외, 밤…! 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농산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현화식물, 그러니까 꽃을 피워야 열매 맺는 작물들이라는 것이다.

2005년 미국 국가과학재단(NSF,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은 ‘현화식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우성의 식물군이며 경제적으로도 가장 중요하다.’며 27만 종의 현화식물 분류 프로젝트를 승인한 바 있다. 농업에 이용되는 식량작물들 거개가 꽃을 피워야 열매를 맺는 식물이니까 엄청난 예산이 들어도 승인한다는 뜻이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환경호르몬에 의한 인체오염으로 정상 정자의 수를 유지하고 있는 남성의 수가 줄고 있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하면 글로벌 환경오염시대에 꽃들의 안위가 걱정된다. 그런데 꽃 피는 식물들에게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꽃이 어찌 벌, 나비를 따르리오?”라는 춘향전의 아니리 한 대목이 있다. 몽룡이 절 따라 오라고 유혹하자 춘향이가, ‘날개 달린 벌, 나비가 꽃을 찾아와야지 어찌 꽃더러 절 찾아오라 하느냐’고 짐짓 생태학적 진실을 알려주는 척, 연애를 받아주는 대목이다. 꽃들은 스스로 수정할 수 없다. 열매를 맺으려면 암수가 수분을 해야 하는데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이 현화식물들의 생태 특성이다. 이 생태가 위협받는 시대라는 게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다.

‘꿀벌들이 실종되고 있다.’는 고발을 담은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의 저자 로완 제이콥슨은 꿀벌의 실종이 환경생태오염 때문이라는 증거를 저서 곳곳에서 풀어놓고 있다. 꿀벌을 비롯한 곤충이 지구상 모든 현화식물 80퍼센트의 수분을 시키고 있는데, 그 80퍼센트의 85퍼센트를 책임지는 글로벌 독과점 수분자가 꿀벌이다. 과일농사는 그 비중이 더 높아 90퍼센트에 이른다 한다. 벼는 밀과 더불어 세계 2대 주곡인데 둘 다 꽃 피는 식물, 그러니까 벌과 같은 곤충이 없으면 열매를 못 맺는 식량작물이다. 우리가 농사라고 말하며 떠올리는 무논의 벼도, 과일이라고 말하며 떠올리는 사과나 배, 수박과 감 등 모두 벌, 나비의 무임금노동에 의해 얻어진 것이다.

무임금노동이 맞다. 식물과 곤충이 수분과 꿀 등을 교환하는 것은 저희들끼리의 자연사이지, 사람이 그들의 수고에 대가를 지불하는 건 아니다. 수분을 시킨 뒤라도 농작물로 이용되는 현화식물들을 돌보는 자연의 손길들이 쉬는 건 아니다.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제초작업은 고된 중노동이다. 유기농업이 생산자의 이익을 높이고 소비자의 안심을 얻으면서 급속한 성장세에 있다. 유기농쌀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감사해야 할 존재가 왕우렁이다. 우렁이는 본래 물속이나 물과 접한 식물과 수서곤충을 잡아먹을 뿐, 물 밖의 것은 손도 안 댄다. 그래서 무논에서 한창 벼가 자랄 때 벼는 안 다치게 하면서 효과적으로 다른 풀들을 제초한다.

우렁이만 제초를 잘 하는 건 아니다. ‘오리농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리 또한 부지런한 제초꾼이자 벼멸구나 메뚜기 같은 해충 사냥꾼이다. 자라난 잡초를 뜯어먹고 논 속의 잡초종자도 찾아 먹으며 무논을 쏘다녀 벼 잎과 줄기에 붙은 해충을 털어내 익사시킨다. 벼물바구미나 메뚜기는 좋아라

 

해충방제 전문가는 또 있다. 무당벌레는 엄청난 식욕을 자랑하는 진딧물 포식자다. 지구를 살리는 불가사의한 7가지 존재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기도 한 무당벌레는 하루에 70마리, 한 평생 5000마리 이상의 진딧물을 잡아먹는다. 놔두면 진딧물이 수액을 빨아먹어 망칠 유기농업을 살리는 건 그러니까 전세계에 퍼진 4천여 종의 무당벌레 일족인 셈이다.

논에서 농사짓고 허공에서 농사짓는 곤충과 새들-야생조류도 현화식물의 수분을 돕고 해충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오리는 새다, 당연히!-이 조명을 받고 있지만, 더 근본적인 대지의 경작자는 따로 있다. 지렁이는 땅속에 사는 생물의 총무게 중 8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만큼 흙 있는 곳이라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진화의 성공 모델인 셈이다. 지렁이는 흙속의 유기물을 섭취하면서 함께 흙을 먹고 분변토라고 불리는 최고급 유기토양을 배출한다. 지렁이똥이 얼마나 되겠냐고 얕잡아 본다면 안목이 없는 것이다. 왜 그들의 수가 많다고 미리 말했겠는가. 1헥타르당 거의 40여톤에 이르는 분변토를 지렁이는 만들어 낸다. 지렁이똥흙이 좋은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그 자체가 아주 고급 유기질비료다. 그러니 식물이 잘 자랄밖에! 다른 하나는 지렁이가 먹이를 먹으면서 흙도 함께 먹어 다시 배출하는 과정에서 흙을 갈아엎는 경운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은 지렁이의 위대한 수고를 한 마디로 정리했다. ‘지금 식물들이 뿌리를 내린 흙은 지렁이 체내를 몇 번이고 통과했던 것들이다.’ 그러니까 지렁이가 흙밥을 먹고 질 좋은 흙똥을 안 쌌으면 오늘날 식물들의 번성도 없었을 거란 뜻이다.

농사를 사람이 짓는 거란 생각은 반만 진실이다. 온전한 진실은 농사는 자연의 농부들과 사람이 함께 짓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차 팔아 밥 사먹자는 식량자급률 바닥인 나라에서 자연의 농부들을 제대로 대접할 리 없으니 이중의 위기다. 그러니 ‘진짜 참사람들’은 자연의 농부들이 지어준 농사에 감사하고 자연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이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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