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환경범죄 국내법으로도 처벌 가능

주한미군 환경범죄 국내법으로도 처벌 가능

-소파는 환경범죄 보호협정이 아니다


여영학 환경법률센터 소장, 법무법인 한결 구성변호사 yhyeo@hllaw.co.kr


주한미군이 파묻은 독극물로 나라 땅 곳곳이 병들고 있다. 미군이 내다버린 독성물질로 범벅된 흙과 지하수,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웃들의 잇따른 죽음을 떠올리며 미군기지 부근의 주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기형아 출산과 정신질환을 유발하고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다는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가 경북 칠곡의 미군기지에 수백 드럼 묻혀 있다는 그 끔찍한 첫 소식은, 불행하게도 빙산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미군기지의 고엽제·독극물 매립 의혹은 경기도 부평과 부천, 동두천의 미군기지에 이어, 파주의 비무장지대, 전북 군산과 강원도 춘천의 미군기지에까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매향리 미군폭격장 사건과 용산기지 포름알데히드 방류, 녹사평역 기름유출 따위의 주한미군 환경범죄가 줄을 이었던 십여 년 전의 상황에서 한 뼘도 나아진 게 없다. 나아지기는커녕 도리어 더 나빠졌다. 맹독성 물질 수백 드럼이 묻힌 미군기지가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며칠 새 수십 년 묵은 여러 건의 제보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걸 보면 아직 어둠 속에 묻혀 드러나지 않은 사건은 또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고엽제보다 미군이 더 두려운 정부
국민들의 불안은 깊어가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칠곡 미군기지 ‘캠프 캐롤’ 고엽제 매립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한국 정부와 주한미군의 협상만 봐도 그렇다. 현장을 지켜본 한나라당 의원조차 “협상이 굴욕적이었다.”고 개탄했다. “(미군이) 우리나라 땅을 쓰고 있고, 우리 영토를 오염시켰는데 굽실거릴 이유가 뭐 있느냐. 이래서 대한민국 주권을 지키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미군은 능구렁이처럼 음흉하면서도 교활했고,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배알도 없는 사람처럼 한심했다. 고엽제 매립 보도로 한국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이렇게 내뱉었다. “기록을 검토하는 중인데 캠프 캐롤에 고엽제가 저장되어 있다거나 이동되었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캠프 캐롤 조사를 위해 열린 소파(SOFA) 환경분과위원회 회의 때 우리나라 환경부 협상팀은 토양을 채취하자는 안을 갖고 들어갔지만, 미군의 반대로 무산됐다. 한나라당 의원의 말마따나 “그러면 협상장을 박차고 나왔어야 할 상황”이었다. ‘새로 관측정을 뚫어 지하수의 수질을 조사하자’는 제안마저 거부당하고 말았다. 끝내, 드럼통이 있는지는 땅 속에 레이더를 쏘는 지하투과레이더(GPF) 조사를 해보면 되고, 지하수는 기존에 뚫어놓은 관측정으로 하면 된다는 미군의 고집은 아무도 꺾지 못했다. 미군은 수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레이더 기기 단 3대로, 그것도 주말과 공휴일은 쉬어가면서 느릿느릿 조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하수도 16개 관측정 중 6곳에서만 시료를 채취해서 미국으로 보내겠다는 것인데, 적어도 한 달 이상 걸릴 예정이란다. 장비와 인력을 충분히 투입하면 금세 끝낼 수 있는데도 시간만 끌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레이더로는 토양오염을 조사할 수도 없다. 그래놓고 공동조사단의 일정도 공개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정부의 관료와 공무원들이 이번 고엽제 사태를 대하는 태도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첫 보도가 나온 것은 지난 5월 13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피해가 없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한 것도, 정부가 현지에 ‘긴급’ 조사단을 파견한 것도 5월 20일이다. ‘총리실 내에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적극 대처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온 것도 그날이다. 미군의 증언이 보도된 뒤 일주일이나 지나 ‘철저히 조사하라’느니 ‘조사단을 급파했다’느니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적극 대처하겠다’느니 하며 호들갑을 피운 속내도 짐작하기 어렵다.


호들갑 뒤에 이어진 ‘적극 대처’의 행적은 더욱 한심하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중대범죄에 관한 미군 전역자의 구체적인 증언이 나왔는데도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에게 항의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냥 ‘그게 사실인지’ 묻기만 했다. 급파된 환경부 공무원들은 고엽제가 묻혔다는 미군기지 내부가 아니라 바깥의 주변을 둘러보았을 뿐이다. 한미 공동조사 합의를 대단한 성과인 양 떠들었지만, 정작 실제 공동조사를 위한 협상은 ‘굴욕적’이었다.


뒤이어 드러난 인천 등지의 미군기지 유독 폐기물 매립 의혹에 대해서 정부는 그야말로 무대책이었다. 5월 말 인천시는 국무총리실과 환경부, 국방부에 부평 미군기지 내부에 대한 한미 공동조사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답변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칠곡 미군기지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어 여력이 없고, 아직 계획이 없다.’는 변명뿐이었다.


칠곡 미군기지의 토양과 지하수 오염실태에 관한 조사보고서를 미군으로부터 넘겨받고서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정부의 행태 앞에서는 입을 다물 수가 없다.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인기 한나라당 의원이 ‘고엽제 매립은 대한민국 영토에 관한 문제이면서 주권과 생존권 문제 아니냐.’며 보고서의 공개를 요구하는데도 ‘소파(SOFA) 규정상 한미 양측이 합의해야 하기 때문에 안 된다.’며 입을 다물었다.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까지 무시해야 할 만큼 미군이 두려운가. 정부가 내세우는 소파 규정이란 ‘미군반환 공여지 환경조사와 오염치유 협의를 위한 절차합의서’(이른바 ‘부속서A’)인데 ‘국내법상 효력도 없는 그 부속서A의 규정을 이유로 기지 오염실태 자료의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확정된 지 오래다.

 

한미 소파(SOFA)를 핑계 삼지 마라
정부 관계자와 일부 정치인들은 ‘한미 합동조사 결과를 보고 소파 개정 문제까지 고민해봐야 한다.’거나 ‘고엽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현행 소파에 미비하거나 부족한 점이 있으면 보완하거나 고칠 필요성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되뇐다. 7, 8년 전에도 여러 번 했던, 하나 마나 한 소리다. 물론, 우리 정부의 관계 공무원과 정치인 여러분들이 한미 소파에 정말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소파 개정 여론이 들끓던 2000년대 초 외교부와 환경부 공무원들은 앞 다퉈 ‘한미소파만큼 환경조항이 잘 되어 있는 나라가 없다.’고 떠들었다. 2003년 5월 정부 관계자들은 ‘지위협정 개선경과’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한미 양측의 합의에 따라 미군기지 반환 시 환경문제 처리절차가 체계적으로 갖추어지게 되어 반환기지의 환경치유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찬도 했다. 당시 국방부 장관과 외교통상부 장관까지 나서서 ‘미군 쪽이 환경문제에 깊은 관심과 성의를 보여주었다.’며 미군을 추어올리기에 바빴다.


그 시절 소파 개정 여론에 대한 미국쪽 인사들의 눈초리는 사나웠다. 2005년에 방한한 미국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반환기지 정화는 미군의 책임이 아니라며 ‘국제법인 소파 기준이 있는데 어떻게 한국 국내법이 국제법에 우선할 수 있느냐.’고 눈을 부라렸다. 이듬해 주한미군사령관 벨은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를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처리한다면 그것은 양국 간의 동맹관계를 저해할 중대한 도전’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우리 정부의 관료와 공무원들은, 소파 개정에는 냉소적이면서도, 소파 규정 때문에 미군기지 내부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는 손도 댈 수 없고, 기지 반환 후에도 오염정화 비용을 미국에 요구할 수 없는 것처럼 뒷짐을 진다. 일부 언론도 멋모르고 같은 소리를 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행 소파 규정이 미군의 반환기지 오염 제거 책임을 면제하고 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2004년 소파 환경분과위원회 미군 측 위원장 대니얼 윌슨을 비롯한 몇몇 미국인들이 밝힌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다. 우리 정부의 관료들 중에도 그런 미국인들의 견해를 추종하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법부의 해석은 사뭇 다르다. 헌법재판소는 미군의 면책 근거로 오해하고 있는 소파 제4조 제1항에 대해 ‘이 규정은 미군에게 공여지(기지)를 오염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거나 환경오염을 방치한 상태로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법원도 ‘환경오염 등 적법하지 못한 사용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면제된다는 취지의 규정은 아니다.’는 점을 확인했다.


‘소파 규정 때문에 미군기지 내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이나 행정권이 전혀 미치지 않으며, 미군기지 내에서 벌어지는 환경범죄도 우리가 조사할 수 없다.’는 해석도 섣부르다. 2002년 대구지방검찰청은 미군기지 캠프 워크에서 일어난 기름유출 사건의 불기소이유서에 ‘미군기지 내의 기름탱크 등에 대해서도 한국의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라 신고하여야 한다.’고 썼다. 또 검찰은 한강에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한 미군 장교 맥팔랜드를 우리나라 수질환경보전법 위반죄로 기소했고 법원은 유죄판결을 했다. 미군 공여지에도 대한민국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행정권이 미친다는 점을 전제로 한 처분이고 판결이다. 주한미군에게 엄연히 ‘공공 안전을 고려하여 시설과 구역을 운영할 의무’, ‘한국의 법령을 준수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현행 소파와 관련 부속협정의 해석으로 보아 당연한 결론이다.
미군기지는 식민지 시대의 ‘치외법권’이 아니다. 그러니 주권국가 대한민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자들이여, 미군의 환경범죄를 수사하라! 한국의 법령에 따라 미군당국에 대해 조사와 정화조치를 명하라! 미군이 가지고 있는 관련 자료의 제출을 명령하고, 제공받은 정보를 공개하라! 굴종으로 안보와 동맹을 구걸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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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의 독성물질 매립 의혹들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월 2일 민ㆍ관ㆍ군 공동조사단은 화학물질 매립 의혹이 제기된 부천시
옛 미군부대 캠프머서에서 현장조사를 벌였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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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매립 의혹을 받고 있는 경북 칠곡 미군기지 ⓒ대구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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