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한국 녹색당 2.0 시대

한국 녹색당 2.0 시대


세계의 녹색당, 자전거보다 나은 발명품이 될 수 있을까?  - 한재각  18
환경운동이 녹색당에 이르기까지   - 서형원 22
녹색당, 무엇을 꿈꾸는가?   - 하승수 26


우리나라 기성정당 가운데 탈원전·재생가능에너지 확대를 당의 강령 차원으로 가진 정당이 있는가? 없다. 이 한 질문과 답 속에 한국의 현실과 미래가 압축돼 있다. 한국은 현세대의 편리를 위해 미래세대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세대 착취정치 국가다. 핵전기는 현세대가 쓰고 핵폐기물의 안전한 보관과 핵발전소의 해체는 미래세대가 책임지게 하는 정치구조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두 번의 동일한 실패담을 안고 한국 녹색당이 새롭게 꾸려지고 있다. 이른바 2.0시대다. 버전이 높아진 이유는, 우리나라 정치환경이 시민 참여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정치생태계의 변화가 1차 요인이고, 녹색정치세력들이 그 동안 준비해온 자체 동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이 2차 요인이다. 한국 녹색당 2.0시대가 현실화하려면 당장 내년 총선에서 정치적 실체로서 국민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한국 녹색당(준), 그들은 어떤 정치세력인가? 우리를 대의할 실력 있는 정당정치세력이 될 수 있을까? 정치적 지지를 요구하는 그들의 전언을 듣는다.

 


세계의 녹색당, 자전거보다 나은 발명품이 될 수 있을까?


한재각 녹색당 발기인·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enerz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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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기억하라며 이탈리아 녹색당원들이 수도 로마 하원의사당 앞에 누워 반핵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


다시 녹색당이 주목받고 있다. 1972년 호주 타즈매니아에서 최초의 녹색당이 출현한 이래, 서구에서 녹색당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무엇보다 1996년 독일의 녹색당이 사민당과 함께 적록연정을 이루어냄으로써, 집권세력으로 녹색당은 철부지 환경운동가들의 몽상이 아니라 현실적 정치세력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녹색당을 창당하고 정치에 개입하려는 노력들이 존재해왔지만,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그러나 2011년 가을, 다시 한국에서 녹색당을 창당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해외 녹색당 현황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녹색당은 서구에서 나타났던 철지난 유행은 아닐까? 전 세계적 차원에서 나타난 정치, 경제, 사회, 환경적 위기의 해결을 모색하는 데에 녹색당은 과연 의미있는 접근이 될 수 있을까? 의도는 좋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별 쓸모는 없는 발명품이지는 않을까? 녹색당으로 우리는 세계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과연 자전거보다 나은 쓰임새가 있을까? 이런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 다른 나라의 녹색당의 현황을 살펴보는 것이다. 해외 녹색당의 성공 또는 실패사는 우리 녹색정치의 현실성을 가늠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유럽 녹색당은 이미 집정 성공시대 열어
전 세계 녹색당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를 찾으라고 하면 주저없이 독일 녹색당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녹색당 실험이 1990년대 말에 사민당과 함께 적녹연정을 통해서 집권할 정도로 발전할 것이라 예상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 녹색당의 의제는 핵문제와 같은 환경 의제로부터 녹색일자리의 창출이나 최저임금제도의 개혁과 같은 다양한 사회경제적인 의제로까지 확대되었다. 녹색당이 환경당으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녹색당의 성장을 위해서도 이는 필요한 일로 보인다.


녹색당은 창당 이후 꾸준히 정치적 지지도를 높여갔고 있다. 한때 독일 통일과정에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1990년대 초반 총선에서 침체기를 거쳤지만, 그 다음 총선에 적록연정을 이룰 정도로 지지도가 회복되었다. 나아가 2013년에 실시하게 될 총선에서 사민당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면서 ‘녹적연정’(녹색당이 중심이 되어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을 통해서 총리를 배출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작년 가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녹색당은 100년 전통의 사민당의 지지율과 동일한 24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감은 결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었다. 올해 초에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이 가장 보수적이라는 남부 독일의 바뎀 뷔르템부르크 주에서 주 총리를 배출한 것이다. 한국의 울산 지역에 비유될 정도로 독일 자동차산업의 메카인 지역에서 녹색당의 선전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번에 이뤄낸 녹색당의 승리는 지역주민들의 반개발 투쟁과 전 세계적인 반핵투쟁이 조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주정부를 집권한 녹색당은 ‘적은 차, 작은 차, 다른 차’라는 모토 하에 새로운 자동차산업정책을 제시하자 주 내의 자동차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녹색당이 현대 문명의 핵심인 자동차산업을 어떻게 바꿔낼지에 대한 기대와 함께,  2017년까지 핵발전소를 폐쇄하라는 별도의 법안을 제출한 녹색당의 도전은 전 세계 녹색당원의 눈과 귀를 잡아당기고 있다.


이제 눈길을 돌려 프랑스와 영국 녹색당의 약진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자. 독일이 이루어낸 탈핵 선언과 대조되는 프랑스의 높은 원자력 발전 비중은 프랑스 녹색당의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다. 독일만큼이나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프랑스 녹색당의 정치 실험은 최근에서야 27년 만에 처음으로 상원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한국인들에게는 공교로운 일이지만, 첫번째 녹색당 상원의원이 한국 출신으로 프랑스 가정에 입양된 고아였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얼마 전에 한국에 방문하여, 때마침 개최된 한국 녹색당 발기인대회에서 축사를 하기도 했다.


한편 내년 4월에 예정된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게 될 녹색당 후보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에 치뤄진 당내 경선 과정에서, 에바 졸리 유럽의회 의원은 “프랑스도 20∼25년 뒤 완전히 원전을 없애야 한다.”고 공약하면서 후보로 선출되었다. 나아가 프랑스 녹색당이 탈핵 문제를 내년의 대선과 이어지는 총선에서 핵심적인 의제를 만들기 위해서 나서고 있다. 세실 뒤플로 대표는 올해 10월에 “원자력 발전 중단에 대한 정책 동의 없이는 2012년 대선에서 사회당과 연대할 수 없다.”고 밝혔으며, 대선 후보인 에바 졸리 역시도 후쿠시마 핵사고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프랑스 내 원전 폐쇄에 대한 녹색당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2012년 대선은 물론 총선에서도 사회당과 연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결선투표제를 지니고 있는 프랑스에서 녹색당의 요구를 사회당이 쉽게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년 대선에서 프랑스의 핵정책에 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소수 정당이 진입하는 것을 가로막는 최악의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는 영국에서도 녹색당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영국 녹색당이 선전한 지역은 런던으로부터 남쪽에 위치한 브라이튼으로서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해당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 도시에서 유럽의회 의원이기도 했던 캐롤라인 루카스(Caroline Lucas)는 최초로 녹색당 소속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이 도시의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은 33퍼센트의 지지를 얻어 22개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영국 최초로 녹색당이 시협의회를 이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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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대선에서 19퍼센트 이상을 득표한 마리나 실바 녹색당 후보 ⓒ연합

 

브라질 대선후보 마리나 실바, 미국 대선후보 랄프 네이더
이제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녹색당의 약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과 캐나다에서의 녹색당의 활동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아직까지 중앙정치 제도내에서의 정치적 성과는 그리 크지 않다. 소수당에게 불리한 선거제도로 인해서, 2000년도 대선에서 미국 녹색당 후보로 나섰던 랄프 네이더는 조지 부시 미국 공화당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비난을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미국 녹색당은 이후에도 꾸준히 대선에서 후보를 출마시켜왔다. 또한 1986년에 첫 번째 의원을 배출한 이래 각 단위 의회에서 의원을 배출해왔으며, 2009년 현재 미국 전역에서 대략 160명의 의원들이 선출되어 활동하고 있다.


한편 최근 캐나다 녹색당은 연방의회에서 첫 번째 의석을 획득했다. 지난 5월에 실시되는 연방선거에서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에서 출마한 엘리자베스 메이 녹색당 대표가 보수당 현역의원을 물리치고 연방의회에 진출했다. 2008년 총선 이후 무소속의 의원이 녹색당에 입당하면서 의석을 가졌던 전례가 있었지만, 자력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한 것은 처음이다. 캐나다 녹색당은 브리시티 콜롬비아 주를 비롯하여 몇몇 지역에서 강한 지지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2퍼센트 이상의 득표율을 가진 정당에 재정을 지원하도록 한 새로운 정치관계법은 캐나다 녹색당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캐나다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3.91퍼센트를 획득했다.


녹색당의 역동성은 남미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최근 콜롬비아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의 득표력은 현실 정치의 향방에 영향을 주었다. 콜롬비아 녹색당 후보 안타나스 모쿠스가 작년(2010년) 5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21퍼센트의 지지율을 얻어 결선 투표에까지 진출하였으며, 6월의 결선 투표에서는 27퍼센트의 지지율을 얻은 것이다. 또한 브라질에서도 녹색당이 무시할 수 없는 현실 정치세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녹색당의 마리나 실바 대선 후보가 19.4퍼센트를 차지함으로써, 집권 노동자(PT)당 후보는 집권에 필요한 50퍼센트 득표에 실패했다.  아마존에서 태어난 흑인 여성인 마리나 실바 후보는 PT당의 룰라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까지 역임했었다. 그러나 아마존 개발정책에 반대하여 PT당을 떠나 녹색당에 합류한 후에 대선 후보로 나서서 PT당을 위협한 것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녹색당도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창당한 바 있는 호주의 녹색당은 작년 총선의 결과로 상원에서 9개의 의석을 가지고 있으며, 처음으로 하원에서 1석을 확보했다. 녹색당의 하원 진출은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최근 집권 노동당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세를 도입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녹색당의 제안과 압력이 주효했다(그러나 이 법안은 배출권 거래제를 전제로 한 탄소세를 규정하는 것이어서 호주 내 ‘녹색좌파’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녹색당은 신규 우라늄 개발·수출을 하려는 노동당 계획을 두고 갈등도 빚고 있는 상태다.

 

아시아 최초 녹색당은 몽골에서 비롯
마지막으로 가까운 일본, 대만 그리고 몽골에도 녹색당이 활동하고 있거나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전국적인 반핵여론 속에서 일본의 녹색당은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불리한 정치제도 속에서도 일본의 녹색정치세력은 다양한 형태로 선거에 참여하여 2007년 도쿄 참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확보하기도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만 녹색당은 일찌감치 1996년에 창당하였으며, 2008년에 총선에 도전하였으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집권 경험이 있는 민진당이 환경의제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 대만 녹색당이 겪고 있는 한 장애물로 보인다. 또한 1990년에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녹색당을 창당한 몽골은 2009년에 처음으로 국회에서 1석의 의석을 차지하였으며, 그 해 말에 있는 대통령 선거에 후보를 세울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아프리카와 중동 등의 여러 지역에서도 녹색당이 창당·활동하고 있다.

 

자전거 타고 가는 녹색당 시대
지속불가능한 미래로 치닫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재조정하려는 노력은 녹색당이라는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아직까지 이 발명품은 자전거보다 지구를 구하는 데 쓰임새가 적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녹색당 실험은 이제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으며, 조만간 자전거의 쓰임새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자전거 만세! 녹색당 만세!”

 

 

 

 

 

환경운동이 녹색당에 이르기까지


서형원 과천시의회 의장, 전 환경운동연합 정책기획실장 ecop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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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부산녹색당 발기인 대회 ⓒ녹색당


김정욱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의 실천은 정년퇴임을 한 후에도 젊은 환경운동가들의 정신을 바싹 들게 한다. 그가 없는 4대강 살리기 운동은 생각하기 어렵다. 전문가로서 치열하게 거대한 개발사업들의 진실을 드러내왔다는 것 외에, 그가 1991년 부활한 첫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환경후보로 출마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김정욱 서울시의원 후보는 강남구 압구정동·청담동에 출마해서 2등을 했고 당선자는 유조선회사 사장을 하던 민자당 후보였다.


녹색당 창당을 눈앞에 둔 지금 환경운동을 중심으로 녹색정치의 흐름을 짚어보면서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환경운동가들은 녹색의 가치와 비전을 담는 새로운 정치에 도전하는 일을 망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도전은 여의도와 광화문이 아니라 지역 현장, 풀뿌리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다. 생명을 지키는 일에 관해서라면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았던 환경운동은 기성의 정치집단과 쉽게 화합할 수 없었으며 구체적인 정책과 현안에 집중하면서도 삶의 방식 전체를 전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실천은 평화, 여성, 풀뿌리, 정치개혁 등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다양한 운동과의 연대로, 또한 지구적 실천으로 확장되어 진행되었다.

 

문제의식과 배경
근대 정치, 혹은 민주주의는 오로지 인간, 현세대, 자국민을 대변하는 데 머물러 있다. 녹색정치는 이를 지구시민, 미래세대, 뭇 생명의 정치로 확장함으로써 미래로 가는 길을 열겠다는 실천이다. 환경위기를 비롯하여, 평화, 인권, 무역과 금융 등 지구 규모의 문제들이 국가라는 틀에 갇힌 정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또 한편으론 풀뿌리 생활공간에서 벌어지는 먹을거리, 복지, 육아와 교육, 경제공동체 등의 실천들이 국가 중심 정치의 낡음을 보여주고 있다.


환경운동의 정치 참여는 녹색정치의 큰 흐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전체는 아니다. 녹색정치는 생명가치, 페미니즘, 비폭력 평화, 풀뿌리민주주의, 다양성의 옹호 등 여러 가치의 연대를 의미한다.


민주화대투쟁을 통해 열린 공간에서 1988년 최초의 대중적 환경운동단체인 ‘공해추방운동연합’(이하 공추련)이 창립했고, 1993년 4월에는 공추련을 포함한 전국 8개 지역환경운동단체의 연대로 ‘환경운동연합’이 창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환경운동단체인 ‘녹색연합’은 1991년에 창립한 ‘배달환경연구소’와 ‘푸른한반도찾기시민의모임’, 그리고 ‘녹색당창당준비위원회’가 통합하여 1994년 4월에 창립되었다. 90년대 이후 전국 거의 모든 지역에 자생적인 환경운동단체가 생겨나 지금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초기 환경운동에는 1987년의 독자적인 진보 대통령후보운동에 참여한 이들을 포함해 한국 정치의 민주화를 이끈 활동가들이 상당수 참여했으며, 해외 녹색정당에 대한 책을 번역하여 학습하는 등 한국의 낡은 정치구조를 넘어설 대안으로 녹색정치에 대한 관심이 뚜렷했다. 1991년 부활한 지방자치선거는 지구적 사고를 실천할 ‘지역’이라는 공간을 정치적으로 재발견하게 해주었다. 환경운동은 초기부터 독자적인 정치 지향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녹색당이라는 모델과 지방자치의 부활이 이러한 적극성을 실천으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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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를 통한 풀뿌리 녹색정치의 시도
지방자치 부활 이후 지방정부 및 지역토호세력이 주도하는 개발사업이 본격화되었다는 점은 환경운동이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다. 더 나아가 환경운동은 녹색의 새로운 정책과 모델을 지역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초기 환경운동가들이 1991년 첫 지방선거에 독자후보를 낸 이후, 환경연합은 1995년, 1998년 지방선거에 각각 수십 명의 ‘친환경후보’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참여했다. 1995년에는 송학선 당시 환경연합 반핵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경기도 과천시장 후보로, 이재용 대구환경연합 집행위원장이 대구 남구청장 후보로 출마했다. 송학선 후보는 아쉽게 낙선했지만 이재용 후보는 당선되었다. 이재용 후보는 미군기지 기름유출 문제 해결 등을 통해 녹색구청장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1995년과 1998년의 선거 참여는 대체로 환경문제에 식견이 있는 후보들을 단지 추천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당선자들 대다수가 기성 정당에 흡수되거나 개인의 정치 활동에 머물렀다.


환경연합이 ‘녹색자치위원회’를 구성하여 참여한 2002년의 네 번째 지방선거의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환경연합은 녹색정치 지향, 생활정치 실현의 목표를 공식화하며 현직 환경운동가들을 중심으로 50명의 독자후보를 출마시켰고 기초의원 후보 39명 중 15명이 당선되었다. 후보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정당후보들과 비교적 공정한 경쟁이 가능했었기에 환경후보들의 당선 비율이 정당 후보들보다 높았다.


전국적 여성단체인 ‘한국여성민우회’도 처음으로 기성정당을 통하지 않고 독자후보를 냈으며 세 명이 당선되었다. 환경연합과 민우회, 그리고 지역시민운동 단체의 당선자들 상당수는 이후 녹색당 창당을 추진하는 녹색정치준비모임에 참여했다.


중앙정치에서 환경운동단체들은 직접 참여보다는 정책 제안과 부패·반환경 후보 낙선운동을 중심으로 참여해왔다. 참여의 열기와 영향력은 작지 않았다. 96년 총선, 97년 대통령선거에는 여러 환경단체들이 정책을 제안하거나 평가·공개하는 활동과 친환경후보 선출 캠페인 등을 펼쳤다. 2000년 총선에 전국의 시민단체들이 연대하여 펼친 낙선운동은 유권자들의 폭발적인 참여를 이끌었고 낙선대상자 86명 중 59명을 낙선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대부분의 환경단체들은 낙선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갯벌간척사업과 같은 반환경 정책을 추진하는 후보들을 별도의 낙선대상자로 지목하며 활동하였다.

 

녹색당 설립과 풀뿌리 정치를 위한 시도와 실패
초기 환경운동가들 상당수는 녹색당 설립을 곧 실현할 과제로 생각하고 있었다. 녹색연합에는 녹색당 창립을 추진하는 그룹이 참여했고 녹색자치 실현을 4대 강령 중 하나로 채택했으며, 환경운동연합 또한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녹색자치를 실현한다는 강령을 채택하고 있다.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단의 환경운동가를 중심으로 ‘녹색평화당’이 창립되었다. 녹색평화당은 7개 시도의 정당 투표에서 2.26퍼센트의 지지를 얻었으나 의석을 얻지 못했으며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 일각의 노동운동세력과 함께 ‘녹색사민당’을 결성하여 참여했으나 역시 실패하고 해산하였다. 환경·시민사회운동의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점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2003년 4월에는 지방의원들과 환경, 여성, 평화, 풀뿌리운동의 활동가, 회원들이 참여하는 ‘녹색정치준비모임’이 창립했다. 이 모임은 빠른 창당을 추진하기보다 녹색정치운동의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 및 다양한 그룹의 참여를 확대하는 일에 주력했으며, 녹색당다운 의사결정과 청년의 정치참여 등 정치적 실험을 진행했다. 2004년 6월에는 ‘초록정치연대’로 창립하고 2005년 2월 교토에서 결성된  ‘아시아태평양초록정치네트워크’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초록정치연대는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통해 정치세력화 하고자 했으나 결국 참패했다. 초록정치연대가 주축이 된 ‘풀뿌리초록정치네트워크’의 후보는 21명에 그쳤고 2명만이 당선되었다. 2004년 정당공천제가 도입되어 무소속 후보들이 8~11번의 기호를 부여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환경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이 정치활동을 꺼리고 정치중립을 표방하게 되면서 새로운 참여주체를 발굴하기 힘들어진 것도 큰 원인이었다. 초록정치연대는 해산했으나 회원들 일부가 ‘초록당사람들’로 전환하여 새로운 정치문화를 위한 실천을 이어왔으며, 현재 녹색당 창당의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2008년 9월부터 준비를 시작한 “풀뿌리좋은정치네트워크”는 지역운동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2010년 지방선거에 참여했다. 17명의 후보를 내어 3명의 당선자를 내는 데 그쳤으니 역시 기존 정치의 장벽을 넘지 못한 셈이다. 환경연합은 세 명의 녹색후보를 추천하여 두 명이 당선되었지만, 그나마 이미 출마한 후보를 추천하는 데 그쳤다.


이 선거는 당락이라는 결과에서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풀뿌리 지역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해온 후보들은 득표력을 보여주기 시작했으며, 정치와 거리가 멀었던 풀뿌리운동의 주민들이 선거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집권당의 철옹성 같던 대구에선 작은 마을도서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지역여성들의 힘으로 22.3퍼센트를 얻었으며, 서울 도봉구에서 의정비 반환소송에 승리한 풀뿌리활동가들이 주도한 선거는 25.5퍼센트를 기록했고, 그 밖의 여러 지역에서도 20퍼센트 안팎의 지지를 얻었다. 중선거구제인 기초의원 선거에서 보통은 모두 당선권인 득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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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경기녹색당 발기인 대회 ⓒ녹색당

 

녹색당의 창당과 이후 전망
올해 녹색당 창당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풀뿌리에서 출발하여 풀뿌리주도의 정치를 만든다는 지금까지의 시도가 결국 기존 정치가 설치한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치를 추구하면서도 정당 설립에는 부정적이었던 사람들이 녹색당 설립에 앞장서게 되었다. 풀뿌리정치를 위해서도 우선은 정당설립과 중앙정치에서의 영향력 확보라는 진입장벽을 넘어서겠다는 전략을 채택한 셈이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녹색당 추진을 되돌릴 수 없는 일로 만들었다. 최근에는 먹을거리의 방사능 오염 문제로까지 확대되어 생활, 생명의 위기를 넘어설 정치에 대한 요청이 더 절박해지고 있다. 현재 창당준비위원회 상태인 녹색당은 2030년까지 탈핵 에너지전환을 실현하는 법안을 내놓고 내년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정부를 통해 정점에 도달한 토건성장의 정치가 자연환경은 물론 복지사회의 미래까지 위협하는 문제로 등장했다는 점도 녹색당의 역할을 요청하고 있다. 단순히 더 민주적인 정부를 만드는 일을 넘어, 탈핵, 탈토건, 녹색전환의 의제를 실현하는 정치 실천이 긴요해진 것이다.


환경운동은 지금까지 모든 정부와 불화를 피할 수 없었다. 민주화는 새만금 갯벌의 생명과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에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환경운동은 완전히 새로운 정치를 통해서만 우리 사회의 녹색전환을 꾀할 수 있다.

 

 


녹색당, 무엇을 꿈꾸는가?

 

하승수 녹색당 사무책임자 ha-ha96@hanmail.net

 


한국에서 녹색당이 창당된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아마도 20~3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하는 유일한 정당이 되지 않을까 한다. 지금의 정치세력들은 당장의 선거에만 매달려 있다. 길게 고민해 봐야 국회의원 임기인 4년, 대통령 임기인 5년 정도의 시간을 놓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들은 몇 십 년 이상이 걸려야 풀 수 있는 장기적인 문제들이다. 기후변화나 핵발전과 같은 문제들이 그렇다. 꼭 환경문제가 아니더라도 교육문제도 몇 년 노력한다고 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어느 사회에나 최소한 20~30년 후의 미래에 대해서까지 책임 있는 얘기를 하는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청소년, 청년들이 피해를 입는다. 당장 투표율이 높은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정책들을 쏟아내는 정당들만 넘쳐나면, 미래세대는 여러 가지 부담만 떠안게 된다. 핵발전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의 세대는 전기를 싸게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세대는 핵발전소를 해체하고 핵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 부담만 떠안게 되는 것이 핵발전이다. 그런데 핵발전 확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뒤처리 문제까지 고민하는 정당이 없다면, 20~30년 후의 미래는 암울해진다.


녹색당은 최소한 20~3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하고 책임지려는 정당이다. 그래서 녹색당이 창당되면,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미래에 희망이 생긴다. 20~30년 후에 지금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기후변화나 핵폐기물 때문에 머리를 싸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만들려는 것이 녹색당의 목표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이런 목표를 가진 정당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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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풍력 발전 단지 ⓒ함께사는길 이성수 / 고리 핵발전소 단지 ⓒ함께사는길 이성수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녹색당의 정책은?
녹색당은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국제적인 네트워크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 녹색당의 정책은 한국의 상황에 맞게 만들어질 것이다. 녹색당의 특징은 당내에서도 풀뿌리민주주의를 강조하기 때문에, 어느 누가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원들의 참여 속에 정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녹색당도 그런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녹색당이기 때문에 주장할 수밖에 없는 정책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30년까지 핵발전을 중단하자’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매우 현실적인 얘기이다. 당장에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하자는 것도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이다.


수명이 끝나는 핵발전소는 위험하게 수명연장을 하지 말고, 문을 닫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전기 소비 증가를 억제하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서 핵발전소를 더 짓지 않고도 살아보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전기를 낭비하는 나라도 없으니, 알뜰하게 살면 꼭 필요한 곳에 전기를 쓰면서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람, 햇볕 등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해서 대안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독일은 2022년까지 핵발전을 완전히 중단하기로 했고, 그 대안으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기로 했다. 스위스, 벨기에도 그렇게 한다. 우리나라만 못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 목표시점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핵발전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얘기하는 곳은 녹색당밖에 없을 것이다.


핵발전에서 벗어나는 것은 행복해지는 길이다. 전기를 펑펑 쓰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핵발전으로 인한 불안이 없어지고, 우리 모두가 미래세대를 위해 노력한다는 공동체의식도 생길 수 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길이다.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그리고 사고가 나면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핵발전을 안고 사는 것보다는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이런 것처럼 녹색당은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고, 그 행복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향한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길다. OECD평균보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연간 500시간 가까이 길다. 1년에 2달 정도를 더 일하는 셈이다. 이래서는 행복하게 살기가 힘들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 어차피 고도성장의 시대는 지났다. 지금처럼 ‘장시간 노동’을 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일자리를 나누고 개개인의 삶에서 여유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서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이 적정한 노동시간을 일하면 인간다운 삶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거문제도 풀어야 한다. 높은 월세부담으로 인해 특히 청년세대들이 고통받고 있다.


녹색당은 환경 부문에 국한된 정당은 아니다. 청년세대의 일자리 문제, 노동시간 단축과 생활임금(living wage) 보장 등은 전 세계 녹색당의 공통된 관심사이다. 그것이 사회가 행복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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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녹색당 발기인 대회. 발기인들과 축하를 위해 참석한 프랑스 녹색당 소속 장뱅상플라세 상원의원 ⓒ함께사는길 이성수

 

여성, 청년, 풀뿌리 정당
녹색당은 다른 정당들과 문화가 다르다. 우선 녹색당은 여성들이 많이 참여할 뿐만 아니라, 정당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정당이다. 정당의 대표, 의원 같은 사람들 중에 여성들이 많은 게 전 세계 녹색당의 특징이다. 녹색당에서는 남녀가 동수로 참여하는 ‘남녀동수대표제’같은 것이 정착되어 있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한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한국의 녹색당도 그런 것을 실현하고 있다. 아마도 여성들이 당 내부 선출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남성 중심의 정당들이었다.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편 녹색당은 청년들의 정당이다. 청년들이 주인으로 참여하고 청년들의 지지가 많은 정당이 녹색당이다. 그것은 녹색당이 청소년과 청년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유도 있지만,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이 많이 참여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정당문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요즘 유럽에서는 해적당이라는 새로운 정당이 나오고 있지만, 녹색당이 처음 나올 때에 해적당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청년들이 자기 목소리로 정치의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의 녹색당도 그런 정당을 지향한다. 청년들에게 대의기구의 일정 부분을 할당할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조직을 만들고  자신들의 관심사에 기반을 두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정당이 될 것이다.


한편 녹색당은 풀뿌리 정당이다. 몇몇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정당이 아니라 풀뿌리의 당원들, 그리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주인인 정당이다. 지역 차원의 정책은 지역의 사람들이 만들고, 전국적인 정책도 당원들의 참여 속에 만드는 정당이 녹색당이다. 때로는 치열한 토론도 벌어지지만 수평적인 토론문화를 통해 합리적 결론을 끌어내는 곳이 녹색당이다. 내부에서 당원들의 직접참여가 보장되는 것은 물론이고, 추첨제처럼 최근에 관심을 끄는 새로운 민주주의 시도들도 담아내는 곳이 녹색당이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700명의 공직자 중에서 100명은 선출로 뽑고, 600명은 추첨제로 뽑았다. 누구든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추첨제가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존 정당 중에 어느 정당에서 이런 시도를 해 볼 수 있을까? 아마도 녹색당이 유일하게 새로운 민주주의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정당일 것이다. 우리도 이런 정당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녹색당의 계획
녹색당을 창당해서 내년 총선에서는 녹색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하는 절박한 이유들이 있다. 새만금, 4대강으로 파괴된 환경을 복원하고, 더 이상의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서도 녹색당 같은 정치세력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더 시급한 것은 핵발전 문제이다. 지금 정부는 핵발전소를 추가 건설하는 데 목을 매고 있다. 현재 21개가 가동중이고, 7개가 건설절차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최소한 6개 이상을 더 건설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이 계획을 막고 ‘탈핵’으로 방향을 틀지 못하면, 한국사회는 영원히 핵발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핵발전 확대를 막으려면 녹색당이 내년 총선에서 의미있는 득표를 하고, 그것을 통해 국회에 진출을 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정당들과 정책연대를 통해 ‘탈핵’이라는 정치적 결정을 끌어내려고 한다.


지금 녹색당을 창당하기 위한 첫발걸음은 떼었다. 지난 10월 30일 창당발기인대회를 하고, 본격적으로 당원모집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정당법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이상한 조항을 두고 있다. 5개 시·도에서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집해야 정당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같은 나라는 정치를 본격적으로 하려고 하면, 누구든 정당을 만들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숫자로 장벽을 쌓아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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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녹색당 발기인 대회 ⓒ녹색당


그래서 그동안 녹색당 같은 정당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녹색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 지금 생애 첫 번째 당원이 되려는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기존 정당들에 대해서는 불신이 크지만, 녹색당을 통해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보겠다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고 있다. 이 시민들이 희망이다.


희망을 만드는 데, 무임승차는 없다. 누가 대신해 주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대신 만들어줄 수 없다. 녹색당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선택이다.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 블로그(http://kgreens.org), 카페(http://cafe. daum.net/Kgreens) 를 통해 녹색을 지향하는 시민은 누구든 참여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10월 30일날 여러 발기인들의 토론을 거쳐 확정된 녹색당 창당발기취지문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이 문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녹색당을 만드는 과정을 즐거운 과정이 될 것이다.


“미래의 시간은 녹색의 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전환을 기획하고 실천하면서 우리의 우정과 믿음을 키워, 끝내 멈출 수 없는 환희로 서로를 북돋을 것이며, 즐거움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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