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가야 할 길이 있다

[특별기획] 가야 할 길이 있다

2013 박근혜정부 출범과 환경운동


이시재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사회학자(전 한국환경사회학회 회장) seejaelee@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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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상황의 변화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국민들은 변화보다도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잘 살아보세’라는 약속을 선택하였다. 변화는 두렵고, 앞날이 막막한 세대와 계층에게 공허한 기대감을 주었을 것이다. 50대의 불안한 미래 전망이 그들로 하여금 변화에 대한 공포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약간의 재산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야당후보를 찍었다가는 세금폭탄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심어 주었을 수도 있겠다. 2008년 이후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고용불안이 가속되고 장래 생활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자, 작은 기득권이나마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했을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공포감과 불안감을 준 것은 정치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편 이번 선거의 결과는 그 동안 일자리에서 쫓겨난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 자유언론을 지키려다 거리로 밀려난 언론종사자들, 강정마을에서 공권력에 대항해서 싸워온 주민들, 고압송전탑 아래서 일상생활의 평화를 상실하고 전국을 다니며 호소하고 있는 밀양의 농민 등등, 지난 5년간 배제와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희망을 한꺼번에 앗아가 버렸다. 정치가 바뀌면 언론의 자유도 회복되고, 부당한 해고도 없어지며, 억울하게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제자리를 찾아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텔레비전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언론의 세계가 권력에 너무나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등장함으로써 우리의 생활세계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구조적 상황이 발생하였다. 2012년은 중국, 일본, 북한에서 다 같이 정치지도자가 교체되었으며, 박근혜정부의 등장으로 동아시아의 정치지형은 당분간 심한 갈등을 면치 못하게 될 것 같다. 일본의 민족주의 대두와 군사화, 중국의 거대국가의 굴기와 패권주의 등장, 북한의 모험주의 정부의 출범 등으로 우리의 삶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당분간 큰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군사적 힘에 바탕한 평화를 내세우는 박근혜 정권이 과연 중국의 횡포와 일본 우익 정치의 애국주의에 맞설 수 있을까? 그리고 북한의 모험주의적 정권을 평화와 화해의 길로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는 국가주의, 군사주의, 패권주의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의 냉전체제의 해체와 평화구축, 시장경제를 매개로하는 경제교역, 한류와 같은 문화교류가 한꺼번에 역류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동아시아의 민중의 성장, 자율적 사회공간의 확대, 시민의식의 발전을 또 하나의 길항하는 세력으로서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 5년간은 이 두 개의  세력이 한국, 중국, 일본에서 파열음을 낼 것이다. 

갈등하는 세력의 길항은 변화의 촉매가 될 것이다. 2012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시민들의 힘은 괄목할 만큼 성장하였다. 이러한 시민세력의 힘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민주당 정부를 비롯하여 여러 정치세력들이 탈핵 정책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탈핵시민들의 힘을 정치과정에 끌어 들이지 못한 정치구조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시민의 힘이 착실하게 발전해가는 일 자체를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중국에도 기층농민, 시민, 그리고 중산층의 힘의 결집이 이루어져 국가영역과는 독립된 ‘사회’영역이 날로 발전해 가고 있다. 중국의 심각한 소득분배 불균형, 지역 간 불균형, 소비대중의 성장 등으로 국가에 의한 인민통제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다. 특히 인터넷과 통신기술의 발달과 보급으로 자율적인 시민과 집단이 생겨나고 있다. 2011년 11월 광조우 부근에서 일어난 우칸사건은 주민들에 의한 자치요구를 정부가 수용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이와 같이 향후 5년 내에는 강고한 중국 공산당의 지배 변화에 적응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많은 희생이 따르겠지만 시민적 공간의 확대가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가? 이번 선거에서 비록 패하기는 하였지만, 한국의 87년 체제의 저력을 우리는 볼 수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장악된 언론이 큰 문제이지만, 87년 체제는 저항의 메카니즘을 내장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만큼, 그에 대한 저항도 성장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독재자의 무덤이다.


환경운동,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앞으로 5년간 국가 간 그리고 국가와 시민 간의 갈등이 격화될 것이다. 우리 환경운동은 이 시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환경과 인간을 함께 살리며, 거대구조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운동을 전개해야 하는가?  

지난 대선 기간 중 환경문제는 논쟁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우리의 삶에 큰 위협이 되는 원전문제에 대해서 문재인 후보는 월성과 고리의 노후 원전의 재검토를 약속했지만, 박근혜 후보는 아무런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의 실정이라고 볼 수 있는 4대강사업 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 격렬하게 갈등하고 있는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서도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았다. 환경문제에 관한한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새 정권이  등장하여 기존의 환경문제를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정당화해 주는 측면도 있다. 이제는 우리 내부에서 우리가 중심이 되어 변화를 추동해 내야 한다. 

3.11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이 시작된 것이다. 거대과학의 바벨탑과 같은 원자력발전의 신화가 깨졌다. 더 이상 원자력은 안전하지도 못하며, 비용이 저렴한 에너지도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지금의 동아시아 정치구조 하에서 후쿠시마의 교훈에도 한국과 중국에서는 강력한 원전드라이브가 나올 것이다. 일본은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원전재개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원전을 기본으로 하는 에너지체계를 옹호해 왔다. 원전을 중심으로 하는 이해집단이 너무나 강고하게 박근혜 정부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설계수명이 지난 고리원전1호기, 월성원전 1호기의 폐로를 요구하고 있지만 신정부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우리의 탈핵전선은 크게 후퇴하였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시민들의 반핵의식도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2013년 이후 우리의 탈핵전선을 재검하고 신발끈을 다시 매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박근혜 정부는 4대강사업과 같은 거대 토목사업을 일으킬 가능성은 적으나 4대강사업 문제에 대한 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4대강사업에도 연루된 이익집단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탈핵·반토건 싸움은 박근혜정권 하에서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작년 여름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사고는 독성 화학물질에 우리가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 주었다. 석면피해, 방사능피해 등 우리 생활의 도처에 위험물질이 도사리고 있다. 경제성장과 발전은 위험과 리스크와 비례하여 증가하고, 그것은 복합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중 하나가 원인규명도 쉽지 않는 독성물질로 우리의 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구미의 불산누출사고는 화학물질 그 자체의 위험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다루는 제도장치가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들은 사회적 재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미의 불산누출사고는 대량의 방사능 누출사고의 예고편과도 같다. 고리, 영광, 울진, 월성의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위험소통의 부재라는 특징을 갖고 있어서 박근혜 정부에서도 여전히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다. 

박근혜 정부도 금년에는 세계경제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2003~2007년 연평균 4.3퍼센트, 2008~2012년 연평균 2.9퍼센트의 저성장 기록). 경제의 저성장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기술발전, 자원고갈, 자본의 국제이동, 서비스경제화 등으로 저성장구조가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 저성장은 고용과 소득의 감소를 가져오고, 사회적 경쟁과 갈등을 격화시킬 가능성 또한 크다. 이러한 갈등은 앞으로 수년간 쉽게 예측되는 현상이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박사가 말하였듯이, 그러한 현상의 사회적 결과는 ‘죽음의 행진을 촉진’할 것이다. 

이 어려운 삶과 생활사가 이어지는 시기에 우리 환경운동은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제시하고 저성장시대에도 지속가능한 삶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급작스런 변화를 도모하기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성장시대에 지속가능성이 있는 생활혁명을 추구해야 한다.

인간의 행복은 소비와 욕망의 함수관계라고 한다. 욕망을 크게 가지면 소비를 아무리 늘려도 행복할 수가 없다. 욕망과 함께 소비를 줄이고, 소비를 통하지 않고도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대안적 삶의 양식을 우리 환경운동에서 제시해야 한다. 불요불급한 것을 사지 않고, 생활의 규모를 줄이고, 에너지를 아껴 쓰는 생활양식, 가까운 거리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필요한 만큼 소비하고, 가능하면 자기가 먹는 야채는 스스로 생산하여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서 행복을 추구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후쿠시마 이후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환경운동, 시민 도반을 구하자! 결집시키자!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환경운동은 크게 세 가지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하나는 원자력발전과  4대강사업과 같은 거대프로젝트에 대한 우리의 운동이 지속되고 강화되어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국가의 존재와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의 변화와 맥이 닿는 운동이 될 것이다.  

둘째는 시민들의 생활을 방위하는 생활환경운동을 전면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정치경제체제의 유지라는 명분하에 우리의 생활은 심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말하자면 강정마을 사람들과 같이 우리의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진행되었다. 생활을 지키는 것이 바로 체제를 바꾸는 전략이다. 

셋째는 우리가 21세기 새로운 문명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제시하고 널리 확산시키는 운동을 해야 한다. 이 운동의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우리 자신들의 생활혁명을 통해서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는 이상과 같은 운동의 목표를 갖고 있지만,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의 형성이 절실하다. 우리 환경운동의 결실은 많은 시민들이 이에 동참하고 어깨를 나란히 전진할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시민들을 널리 결집하는 것, 이것이 새해 환경운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로부터 우리 앞에 가야 할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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