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들이 펴낸 환경호르몬 보고서 2006 _ 박은수



“알고 계셨습니까? (컵라면에) 물 넣고 10분만 지나도 치명적인 독극물이 라면 국물에 섞인다는 사실을.” “더 이상 환경안전지대는 없습니다, 이젠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경기도 용인의 한 편의점 안, 한 무리의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들이닥쳤다. 깜짝 놀란 종업원에게 이들은 컵라면과 다이옥신 등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에 대해 끈질기게 설명했다. 잠시 후 편의점 안 컵라면 코너 옆에서는 컵라면과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알리는 작은 캠페인이 진행됐다.

오해하지 마시라. 어느 환경단체 활동도, 봉사활동점수를 얻기 위함도 아니다. 컵라면이면 사족을 못 쓸 나이에 컵라면이 위험하다고 거리로 나선 이들은 말한다. “우리가 직접 실험해서 눈으로 봤거든요. 우리만 알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당돌하기까지 한 이 10대들은 한국외대 부속 외국어고등학교 생물동아리 ‘바이오매니아’ 소속 학생들. 30여 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바이오매니아는 각종 생물 실험을 위주로 활동하는 동아리로 주로 자신들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과 오염’에 관한 실험을 벌여왔다. 강낭콩과 페인트, 시멘트, 장판, 카펫, 실리콘, 원목, 합판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새집증후군이 생물체에 끼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실험, 검정말이 술, 담배, 물, 삼푸, 쌀뜨물 등의 환경조건에서 어떤 변화를 보여주는지에 대한 실험, 효과적인 천연재료 탐색 및 염색 방법 탐구 등 다양한 실험을 진행해왔다.



컵라면 용기 우려낸 물로 강낭콩을 기르면?
2006년 이들이 야심차게 선택한 첫 주제는 ‘컵라면’. “저도 많이 먹었어요. 맛있잖아요. 그런데 먹을 때마다 꺼림칙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았어요. 신문이나 방송 보면 컵라면 용기에서 유해한 환경호르몬이 검출된다고 그러잖아요.”(배은결 양, 고2) 컵라면 용기가 정말 위험한지, 생명체에 어떤 피해를 가져다주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는 그들. 그렇게 실험은 시작됐다. 한 달 동안 컵라면에 대한 자료를 수집, 이를 토대로 실험은 진행됐다.

먼저 스티로폼 컵라면 용기와 종이 컵라면 용기 각각 2개, 끓는 물을 넣어 우려낸 스티로폼 용기와 종이 용기 각각 1로 강낭콩 화분을 만들었다. 이들 화분에 매일 일반 물을 주고 성장을 기록했다. 또 다른 스티로폼 컵라면 용기와 종이 컵라면 용기로 만든 강낭콩 화분에는 동일한 조건 하에서 각각의 용기에 끓는 물을 넣어 우려내 식힌 물을 주었다. 스티로폼 용기가 환경호르몬 화학물질들을 조금 더 많이 함유하고 있고 뜨거운 물을 넣었을 때 녹아나오는 정도가 점점 증가할 것이란 가정 하에 내린 방법이었다. 이들의 실험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바이오매니아에 따르면 실험을 시작한 지 10일째 다른 화분의 강낭콩은 싹을 틔운 반면, 스티로폼 컵라면 용기에서 우러나온 물을 준 강낭콩은 싹을 틔우지 못했다. 실험 14일 후 일반 물을 준 강낭콩은 10센티미터가 넘게 자랐으나 스티로폼 컵라면 용기 물을 준 강낭콩은 일반 강낭콩 크기의 2분의 1이 조금 넘었다. ‘컵라면 용기 자체가 유해하기보다는 끓는 물을 넣으면 유해물질 성분이 그 물에 우러나와 유해하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유해물질의 영향이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식물에게도 미세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인체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이 내린 결론.

보조실험으로 진행한 담배연기, 쓰레기 소각 연기, 살충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일 밀폐된 공간에서 담배연기를 쐬어준 강낭콩은 점점 색깔도 연두색에서 누런색으로 변해가고 결국 시들어버렸고 살충제의 경우 아예 싹조차 트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모두들 충격이 컸죠.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캠페인을 시작한 거예요.”(유지안 군, 고 2) 밤낮없이 찾은 자료에 발칙한 상상력을 더해 친환경 컵라면 용기도 직접 디자인했다. 스티로폼 컵라면 용기 재질의 대부분이 지용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지용성 독극물질인 다이옥신 등 환경호르몬이 쉽게 포함되는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에 착안, 완전 수용성이고 구입 및 조작이 용이한 한지를 이용한 용기를 만든 것이다. 완전 수용성인 한지를 이용하면 다이옥신 등 환경호르몬의 침투를 막고 여기에 다이옥신의 결합체를 파괴하고 해독작용을 활발히 하는 것으로 알려진 녹차의 비타민C 및 식이섬유, 카테킨 성분들을 적절히 한지 용기 원료에 첨가한다면 배로 안전한 용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더 이상 환경안전지대는 없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 주변에 다이옥신 등 환경호르몬에 대한 위험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이를 모르는 분들이 많아 깜짝 놀랐어요. 컵라면, 담배 등 우리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위험성은 더욱 심각한데 아무런 인식 없이 매일 환경호르몬을 접하고 있음이 안타까워요.” 시간과 열정을 쏟은 실험이었기에 아쉬움도 컸다는 이들에게 쏟아져 나온 한결같은 이야기다. 이어 어른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이어졌다.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이 없는 것 같아요.”(유지안 군), “후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이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배은결 양), “어른들은 자신이 환경에 대해 일으킨 일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요. 바로 앞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을 먼저 했으면 해요.”(박나영 양, 고 2)

지난 1998년 컵라면 용기에서 유해 환경호르몬 검출 파동 후 8년이 지났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이들의 실험은 컵라면 용기 등에서 다이옥신 등 유해 환경호르몬 검출이 된다는 가정 하에 진행된 실험이다. 어른들의 보고서에 비하면 상당 부분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이들의 실험방법이나 결과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환경호르몬에 관해 논란이 끝나지 않은 이상 100퍼센트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도둑맞은 미래』의 저자들은 말한다. “우리와 다음 세대를 위협하는 많은 화학물질은 우리의 몸으로 들어올 길을 찾고 있다. 안전하고 오염되지 않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 발칙한 30명의 10대들이 펴낸 ‘환경호르몬 보고서 2006’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끝나지 않은 컵라면 용기 유해 논란
지난 1998년 컵라면 용기에서 스틸렌다이머 등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었다는 조사 발표는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당시 식약청은 처음엔 ‘실험 결과 불검출’이라 발표했다가 시민단체로부터 잘못된 실험방법이란 비난이 일자 ‘재실험 결과 검출’이란 발표로 국민들의 혼란과 충격은 배로 컸다. 이에 식약청은 업체에 컵라면 용기를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말 것을 용기에 표기 의무화하고 국민들에게는 10분 안에는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으니 그 안에 먹으면 괜찮다는 식의 홍보로 상황을 애써 마무리했다.

그 후 8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 환경부는 컵라면 용기 환경호르몬 검출 논란으로 관심이 높아진 환경호르몬 문제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중장기 조사연구사업 계획을 수립, 매년 대기, 수질 등 환경매체에 대한 잔류실태조사, 붕어 및 황소개구리에 대한 생태영향 조사 등을 추진해오고 있다. 관련업계에선 스티로폼 용기가 아닌 종이 용기 등 친환경 소재 용기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컵라면 용기에 대한 환경호르몬 검출과 유해성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서울환경연합 이지현 국장은 “최근 SBS의 환경호르몬 위험에 대한 프로그램에서 보듯이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컵라면 용기 유해 논란 당시 식약청은 10분 안에 먹으면 된다, 용기를 긁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기에 현재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며 “100퍼센트 안전하다고 결론 나기 전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관련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일상생활에서 환경호르몬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몇 가지를 제안한다. ▲플라스틱 제품 사용 줄이기 ▲플라스틱 용기 전자레인지 사용 피하기 ▲스티로폼 용기 사용하지 않기 ▲유기농 농산물 이용 ▲합성세제, 향수, 화장품 등 성분 확인 후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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