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 바람과 햇빛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지리산 두레마을

바람과 햇빛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지리산 두레마을


에너지도 이제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재생가능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생태공동체가 국내 최초
로 탄생했다. 지난 10월 3일 두레공동체는 경남 함양의 지리산 자락에서 지리산 두레마을을 새롭
게 열고 풍력(500와트)과 태양광(200와트)을 병용할 수 있는 발전기 3대를 세웠다. 두레마을이
여태껏 생태공동체를 통해 대안의 삶을 제시해 왔다면 이제 한발 더 나아가 삶의 기저를 이루는
에너지원을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바꾸기 위한 에너지 전환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바람이나 햇빛이나
이번 발전기 설치는 중국 북경의 중앙민족대학교의 임진철 교수와 (주)협정의 정소진 사장이 만
나 협의함에 따라 이루어졌다. 중소형 풍력발전기가 널리 보급된 중국 내몽고의 풍력연구소 제품
을 도입했다. 이 발전기의 특징은 전천후로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이른바 풍력-태양광을 병
용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바람이 많을 때는 프로펠러가, 햇빛이 강할 때는 태양전지판이 작
동한다. 이 발전기는 초속 1.5∼2미터의 바람만 있으면 풍력기가 작동하는데 이는 미국, 덴마
크, 핀란드산 발전기의 경우 초속 3∼4미터 되어야 작동하는 것에 비해 훨씬 효용성이 높은 것이
다. 대략 500와트의 풍력발전기를 하루 10시간 정도 돌려 축전지에 완전 충전하면 일주일 동안 4
인 가족을 기준으로 조명, 텔레비전, 라디오 등의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두레마을
의 계획대로 앞으로 10년에 걸쳐 100세대의 마을을 형성한다면 지금 상태로는 전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더 많은 발전량이 필요할 때는 소형 풍력발전기를 계속 이어서 설치하면 되므로 큰 문제
가 없다는 것이 업체의 설명이다.
정 사장은 재생가능에너지에 관해서 사업적 관심이 많다. “사업을 위해 지난해 3월에 실제 내몽
고 지역을 방문해 확인했습니다. 검증작업을 벌였지요. 기업의 신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앞으로 대량보급을 위해 중국 연구소 측과 연계해 기술을 도입하고 국내에 합작 생산체제를 갖
출 예정입니다.” 그에 따르면 현재 두레마을에 세워진 3기 외에도 군포YMCA, 오산의 주유소에
도 각각 1기씩 건설됐거나 건설 중이다. 정 사장은 또 “올 연말까지는 1킬로와트 용량을 갖춘
발전기가 가능할 걸로 예상”하고 있고 “앞으로 북한으로 사업범위를 확장할 생각”이라고 사업
계획을 밝혔다.

두레공동체의 문제의식
생태마을로서 그 내용을 풍부히 채우려는 이러한 새로운 노력은 공동체 나름의 문제의식에서 비
롯됐다. 현대사회의 온갖 문제 중 하나는 바로 화석연료와 원자력 에너지로 이것들은 많은 성과
를 가져왔음과 동시에 정치경제적 불평등과 빈부격차, 에너지를 둘러싼 무력충돌 등의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후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초래, 전지구가 환경적·생태적 위기
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인식이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운동이 절실하고 그러기 위해서
는 에너지 문제에 대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두레연구원의 황보영조 박사는 “사
람들이 사는 곳은 어디나 햇빛이 비치고 바람이 불고 식물이 자랍니다. 땅속 어느 곳이나 항상
열기를 품고 있고 물이 풍부한 곳도 많습니다. 이러한 생태에너지는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를 가
리지 않고 골고루 제공되는 것이지요. 또한 석유 같은 화석연료처럼 서로 많이 가지려고 전쟁을
일으킬 필요도 없고 원자력처럼 방출 문제나 폐기물 처리로 골치를 앓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사하라 사막 4만평방킬로미터에 비치는 태양에너지만 이용해도 현재 인류 전체 에
너지 소비가 충족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은 석유로부터의 해방이 구체성과 현실성이 있음을 짐
작케 한다.
그는 또한 에너지 전환운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노력임을 강조한다. “국가와 거
대산업체가 소규모 분산적 재생가능에너지에 자발적으로 관심 갖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시
민들의 실천과 그 운동의 힘이 밑으로부터 올라와 거대한 압력으로 작용해야만 국가도 이에 부응
하는 움직임을 보이게 됩니다. 덴마크, 스웨덴, 독일 등과 같은 선구적인 나라들의 경우를 보더
라도 생태에너지 확산운동을 통해 정부의 정책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시민운동의 확산이 매우 절실합니다.”
이제 지리산 두레마을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자연의 에너지를 근간으로 소박한 삶의 터전을 만들
어 나갈 꿈에 부풀어 있다.


두레마을은

1971년 김진홍 목사는 서울 청계천에서 활빈교회를 세우고 빈민선교를 시작, 76년 판자촌 철거
로 남양만으로 이주하면서 병든 자, 가난한 자, 고아, 무의탁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중심으로 삶
의 공동체를 처음 꾸렸다. 79년 제1차 두레마을 창립을 계기로 본격적인 농촌선교와 지역운동이
태동, 교회갱신과 사회개혁을 이루는 운동으로 발전했고, 그간 2차 두레마을, 두레선교회를 창립
하고 구리, 대구, 괌, 벤쿠버, 프랑크푸르트 등지에 두레교회를 설립했으며 중국 연변, 미국 베
이커스필드,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 두레마을을 세우며 오늘에 이르렀다. 두레공동체운동은 기독
교 복음의 힘이 세상 구석구석에 미치도록 하는 복음운동임과 파괴된 인간을 공동체적 인간으로
회복하는 사람 살리기 운동임을 표방하고 있다.
www.doorae.or.kr


이상백 기자 leesb@kfem.or.kr








인터뷰 / 두레마을 대표 김진홍 목사

창조, 질서, 보전이 두레공동체의 화두


“지금 세계는 환경적·생태적 위기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태공동체운동으로 이 문제에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생각입니다.” 1971년 청계천 활빈교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두레공동체를
창립하고 이끌어 온 김진홍 목사(62·두레교회)의 지리산 두레마을 개원에 즈음한 소회다. 이 마
을은 외부 에너지 공급 없이 완벽한 자급자족 체계를 갖추는 것이 목표다.
-공동체에서 재생가능에너지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국내에서 최초입니다. 어떻게 평가하시는
지.
“식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고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인
적인 삶을 통해 실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30여년간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공동체운동을 해 왔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나
갈 생각입니다. 지금은 풍광병용발전기만 설치되어 있습니다만 앞으로 소수력발전, 축분을 이용
한 바이오매스 등을 이용할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축산을 하게 된다면 폐수가 문제가 될 텐데요.
“축분을 충분히 이용해 바이오에너지로 활용하고 폐수로 환경이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충분한 연구와 자문을 거쳐 친환경적으로 해 나갈 겁니다. 이 마을 설립의 목표가 생태계를 보전
하면서 공동체를 꾸려 가는 것이니까요.”
-산머루주 맛이 괜찮습니다. 앞으로 주민들의 수익사업은.
“이곳에 있던 13만평의 땅을 사들여 산머루농장을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여기에다 주민들이 계
약재배한 것까지 수매해 머루주와 머루즙으로 가공·유통시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순이익이 한
1억 정도 났습니다. 주변의 국유지도 활용한다면 충분한 수익이 있을 걸로 예상합니다. 지리산
자생약초재배도 계획 중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성경의 말씀과 이를 바탕으로 한 서구
문명이 주도해온 현대사회의 온갖 환경적 폐해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닌지.
“그것은 해석의 문제입니다. 이제까지의 서구신학이 정복, 공격, 파괴를 대변해 온 것이 사실입
니다. 하지만 이제 신학에서도 창조신학, 생태신학, 환경신학, 여성신학과 같은 새로운 조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대적 위기에 맞닥뜨린 기독교의 새로운 반응입니다. 그 말씀의 의미를
‘잘 보전하고 지켜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거지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불교에서 더
잘 드러납니다. 서양이 이제 동양의 사상으로 눈 돌리고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창조, 질서,
보전 이 세 가지가 두레공동체의 화두가 될 겁니다.”
-공동체가 어차피 대규모가 될 수 없다면 이 공동체가 일반대중들에게 갖는 사회적 의미는.
“메시지 전달이겠지요. 이런 소박한 삶을 꾸리며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하나의 전형
을 제시하는 거지요. 그리고 앞으로 이곳에 청소년수련원을 만들면 작지만 체험의 기회도 제공
할 수 있을 겁니다.”
김 목사는 지난 세월 동안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역시 사람과의 관계였다며 사회운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동지와 신뢰를 쌓아나가는 것임을 거듭 강조하며 말을 마쳤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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