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골드만상 수상 환경영웅들 / 골드만환경재단

골드만 환경상
‘환경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은 199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민사회의 지도자이자 박애주의자인 리처드 골드만과 그의 아내 로다 골드만에 의해 시작됐다. 지금까지 72개국 126명의 풀뿌리 환경활동가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자는 세계의 환경단체와 환경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추천된 후보자들에 대한 국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매년 6대주에서 1명씩 선정된다.
역대 수상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환경현안의 한가운데 놓여 있었던 사람들이다. 미국 러브커넬 사건, 인도 보팔참사, 돌고래 혼획 사건, 국립북극야생보호구역에서의 유전시추 사건, 소성장호르몬(rBGH) 검출 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수상자들 중 일부는 해당국가의 환경부 장관에 임명되기도 하는 등 지금까지 8명의 수상자가 공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1년 골드만상 수상자였던 케냐의 왕가리 마타이는 환경부 차관이 되었고 2004년에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한국인으로는 1995년 최열(환경재단 상임이사) 당시 환경연합 사무총장이 수상했다.




샌프란시스코, 2008년 4월 13일 = 올해로 19회를 맞는 골드만 환경상 시상식이 열렸다. 매년 각 대륙별로 풀뿌리 환경영웅들에게 수여되고 있는 이 상은 환경분야에서 가장 큰 상이다. 2008년에는 상금이 15만 달러로 늘어났다(지난해까지 12만5천 달러).
2008년 수상자들 역시 그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 주민들의 환경과 생활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의 이익에 맞서 용감하게 싸워온 풀뿌리 지역운동 지도자들이다. 올해의 수상자에는 석유오염으로 황폐화된 지역의 환경복원과 정의를 위해 세계적인 거대석유기업 셰브론에 맞서 싸우고 있는 에콰도르의 2인방,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한 지역에서 공연과 공동체를 기초로 한 구제활동을 통해 위생과 깨끗한 물 시스템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온 모잠비크의 음악가이자 활동가, 또한 귀중한 습지대를 보호하기 위해 활동해온 푸에르토리코의 할머니, 콜롬비아 전통농법을 활용해 메마른 땅을 비옥한 농지로 바꾼 멕시코의 원주민 농부, 벨기에의 처음이자 유일한 국립공원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벨기에의 환경운동가, 석유와 핵의 이익으로부터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를 지키기 위해 애써온 러시아의 한 여성이 있다. 골드만상 창시자인 리차드 골드만은 “올해의 수상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운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공동체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주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마땅히 우리의 주목과 칭찬을 받을 만하다.”라고 치하했다.  


글·사진 / 골드만환경재단 www.goldmanprize.org, 역 / 나언성 onsongstar@gmail.com 조은미 jiwooma@gmail.com
환경운동연합 국제연대 번역자원봉사 네트워크 <그린허브> 회원



헤수스 레온 산토스


북아메리카 / 멕시코
지속가능한 발전


“이제 전통적인 농업방식이 생물종다양성 보존에 더욱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때다. 이는 더욱 장려돼야 하며 환경을 보존하고 지킬 건강한 식품을 생산하는 방법으로 높이 평가돼야 한다.”


헤수스는 멕시코 오악사카 믹스테카 지역의 침식이 심한 황폐한 땅을 비옥하고 경작하기 좋은 땅으로 바꾸기 위해 고대의 토착농법을 적용했다. 그는 농부들이 중심이 된 지역환경단체 <믹스테카소농개발연합(CEDICAM)>과 함께 소농들을 규합했다. 이들은 백만 그루 이상의 토종나무를 심고, 물을 저장하기 위해 수백 마일의 수로를 만들었으며, 토양침식을 막아냈다.
믹스테카 지역은 멕시코의 가장 가난한 주 중 하나로 유엔에 따르면 이 지역은 세계적으로 토양침식이 심한 곳이다. 그 비율이 83퍼센트에 이르고 50만 헥타르가 심하게 침식된 상태였다. 1980년대 들어 화학물질에 잘 견디는 옥수수 신품종을 도입한 후 믹스테카의 많은 소농들은 산출량 감소와 토지 황폐화를 경험했다. 북아메리카 자유무역협정(NAFTA) 및 미국의 옥수수 보조금으로 옥수수 가격은 폭락했고 대다수 농부들은 더 이상 신품종에 맞는 비료와 농약을 살 형편이 못 됐다. 여기에 토양침식까지 겹치자 수천 명의 믹스테카 원주민들은 고향을 등지는 신세가 됐다.
1980년대 초반, 믹스테카의 소농 출신이자 CEDICAM의 공동 설립자인 헤수스는 침식을 막기 위해 사람들에게 녹화를 권장했다. 20년 이상 펼친 이 풀뿌리운동은 긍정적인 성과로 나타났다. 헤수스와 CEDICAM의 도움으로 주민들은 이제 연간 20만 그루의 토종나무를 심고 있다. 이 나무들은 침식을 막고 물이 지하수로 스며들게 하며 탄소를 잡아주고 지역을 푸르게 한다. 또한 토양에 유기질을 공급하고 지역주민들에게는 지속가능하고 깨끗한 땔감거리를 제공한다.
헤수스는 구릉지역의 침식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치는 선사시대의 전통을 복원했다. 고대의 계단식 농업시스템을 구현했으며 또한 주민들이 돌을 사용해 평야에 울타리를 복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덕분에 침식을 막았고 지반이 평평해졌으며 농업 생산량도 향상됐다. 헤수스는 빗물을 저장하기 위해 등고선과 같은 곡선의 수로, 벽, 테라스를 선구적으로 도입해 침식을 막았다.
또한 지속가능한 농업방식을 촉진하기 위해 헤수스는 농부들이 천연의 배합토 비료를 사용하고 지역의 종자를 사용하도록 유도했다. 오늘날 이 지역 대부분의 농부들은 토종종자를 쓰고 있다. 대중교육과 종자를 아끼기 위한 노력 덕택에 이제 이 지역은 유전자조작농산물 청정지대가 되고 있다. 헤수스는 또한 가속화되는 자유무역과 이주에 따른 문화의 변화로 유입되고 있는 가공식품에 반대하며 지역식품과 고유의 식생활을 촉진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많은 소농들은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현대적인 농법이며 전통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식의 소치로 여긴다. 하지만 헤수스는 사람들에게 소농의 역할에 대해 감사하고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소농의 회복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라고 가르친다.
헤수스와 CEDICAM은 이제 12개의 공동체의 1500명 이상의 소농들과 같이 일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1천 헥타르 이상을 녹화했고 2천 헥타르의 농지를 보존했으며 5천 헥타르의 땅을 돌 테라스와 벽으로 보전했다. 예전에는 25~30퍼센트의 땅만이 개간할 수 있는 땅이었으나 지금은 전체 땅의 80퍼센트에서 경작이 가능하다.
반건조지역인 믹스테카에서 일어난 이러한 변화들로 지역주민들의 삶은 크게 개선됐고 떠나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물 보존, 침식 방지기술, 지속가능한 농업에 관한 그의 성공적인 노하우는 이제 멕시코를 넘어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국가, 미국에까지 전파되고 있다.


펠리시아노 도스 산토스


아프리카 / 모잠비크
지속가능한 발전


“우리가 어린 아이들에게 하듯 환경을 사랑하면 환경은 미래세대를 위한 음식과 깨끗한 물을 제공함으로써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고 사랑해줄 것이다.”


모잠비크의 한 외진 변두리에서 생태적인 위생에 관한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펠리시아노는 마을주민들에게 지속가능한 발전에 동참하고 빈곤을 떨치고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있다. 니아싸 지방의 많은 주민들은 기본적인 위생시설과 깨끗한 물이 부족한 데다 폐기물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아 질병에 걸리기 아주 쉽다. 펠리시아노 역시 이 지역 출신으로 오늘날 니아싸에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는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그의 밴드 마수코스(Massukos)는 모잠비크에서 물과 위생의 중요성을 홍보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모잠비크에서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극빈층이며 그들은 기본적인 위생시설에 대한 접근도 불가능하다. 니아싸 지방은 이 나라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외진 지역 중 하나다. 펠리시아노는 인간의 분뇨를 관리하는 기술에 대해 마을사람들에게 구제활동이나 음악을 통해 성공적으로 알리고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왔다.
그는 니아싸 지역에서 깨끗한 물과 적절한 위생시설이 없이 자랐으며 소아마비를 앓아 장애를 갖고 있다. 펠리시아노는 니아싸와 같은 지역의 빈곤문제에는 환경과 보건의 문제가 같이 연관돼 있음을 알고 있다. 비정부기구 <에스타모스>의 이사로서 위생시설 제공, 지속가능한 농업 홍보, 삼림화 프로젝트, 혁신적인 에이즈 연구 지원 등의 사업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실천하고 있다. 펠리시아노는 위생과 물 공급의 문제가 다른 개발 프로젝트에 선행해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믿고 있다.
펠리시아노와 <에스타모스>는 비용이 적게 들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생태적 위생’을 홍보하고 있다. 이는 ‘에코산스(EcoSans)’라 부르는 ‘퇴비화장실’을 사용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인분을 양분이 풍부한 농업용 퇴비로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가정은 에코산스를 몇 달 동안 사용하고 난 후 흙이나 재를 넣고 구덩이를 메워 그대로 8달 동안 내버려둔다. 그 동안 그 가정은 화장실을 다른 구덩이로 옮긴다. 방치한 동안 모든 해로운 병원균들은 없어지게 되고, 양분이 풍부해진 비료를 파내서 농지에 뿌리면 된다. 이 퇴비는 자연적 비료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토양의 물 저장 능력도 증가시킨다. 이러한 생태적 위생을 이용하고 있는 가정들은 질병 발생도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작물 생산량은 100퍼센트 향상됐고 흙의 보유력도 개선됐다. 생태적 위생이 도입되기 전에는 많은 마을에서 합성비료를 비싸게 구입해서 써야 했다.
펠리시아노와 <에스타모스>가 2000년에 니아싸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로 그들은 수백 개의 마을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깨끗한 물과 생태적 위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성과를 거뒀다. 외진 마을들의 부족한 기반시설을 고려할 때 이는 대단한 성취라 할 수 있다.
펠리시아노가 이끄는 마수코스 밴드는 위생에 대한 메시지를 음악에 담아서 니아싸 지역을 비롯, 모잠비크 전역과 외국에서까지 공연을 펼치고 있다. 모잠비크의 풍부한 공연전통을 접목해 주민들에게 음악과 연극을 합친 적절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2007년 7월 마수코스는 영국에서 『범핑(Bumping)』이라는 앨범을 발매했고 세계음악, 아트, 댄스축제(WOMAD) 등에서 공연한 바 있다.



마리나 리크바노바

아시아 / 러시아
환경정책


“단지 우리는 바이칼을 지킬 수 있을 뿐이다. 단지 연대하고 차이를 극복함으로써 바이칼을 지킬 수 있으며 우리의 아이들과 또 그들의 자손들을 위한 환경을 지킬 수 있다.”



시베리아에 위치한 바이칼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담수호 중 하나다. 그러나 권위적인 러시아 정부와 빠르게 성장하는 석유와 핵에 기반한 경제는 이 아름다운 자연을 위협하고 있다. 바이칼호 출신의 환경운동가 마리나는 이 지역을 산업발전이 야기할 수 있는 잠재적 환경재앙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호수 유역을 파괴하는 송유관의 경로를 바꾸도록 요구하고 우라늄 농축시설의 건설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깊은 호수인 바이칼은 ‘러시아의 갈라파고스’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얼지 않은 담수의 20퍼센트를 저수하고 있는 이 호수는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어서 1700종의 고유동식물을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희귀한 담수동식물군이 서식하고 있다. 지역사회는 물론 전 세계 자연애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1996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2002년에 러시아 정부는 동시베리아에서 시작해 바이칼호 분지를 지나 태평양의 석유터미널까지 2566마일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송유관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러시아 국영석유회사인 트란스네프트는 기름유출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바이칼호로부터 800미터 이내 거리에 관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바이칼환경물결(Baikal Environmental Wave)> 의 공동회장이자 공동설립자인 마리나는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호수를 보호하기 위해 4년간의 투쟁을 시작했다.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도 그녀는 수천 명이 참가하는 시위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전 국민의 캠페인을 이끌었다. 2만여 명의 서명을 얻어냈으며 여러 국제기구와 연대했다. 마침내 2006년 4월, 푸틴 대통령은 송유관을 호수의 수로에서 떨어진 곳에 설치하도록 경로 재조정을 지시했다. 이는 러시아 시민사회와 환경운동의 크나큰 승리로 기록된다.
하지만 바이칼호에 대한 위협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06년 말 러시아 정부는 바이칼호에서 80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인 앙가르스크 근처에, 이미 핵 시설이 있는 곳에 국제우라늄농축센터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다른 나라로부터 운송해온 우라늄을 농축하고 그것을 재사용할 수 있도록 되돌려주는 것이다.  
러시아는 다른 나라로부터 방사성물질을 받아들여 처리하고 장기간 보관하고 매립하려는 유일한 나라다. 갓 시작된 이 산업은 환경적으로 그리고 건강에 아주 심각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우라늄 찌꺼기는 농축 이후에 모래의 형태로 남는데 아주 해로운 방사성과 유독한 우라늄 헥사플루오라이드로 구성돼 있다. 이 찌꺼기는 밀봉 컨테이너 바깥에 저장된다. 이런 컨테이너들은 화재로 인해 위험한 상태에 놓이거나 우라늄 헥사플루오라이드가 공기 중으로 새어나가 불소산을 형성할 수도 있다. 이 방사성 모래가 지면에 남아 있거나 마르게 되면 바람에 날려 식물에 천착되고 그렇게 먹이사슬에 침투할 수 있다. 강과 호수로 씻겨 들어가 물을 오염시킬 수도 있다. 마리나와 <바이칼환경물결>은 이에 대해 독립된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하고 재심사를 요구하고 있다.
2007년 7월 마리나는 앙가르스크에서 비핵캠프를 주최했다. 캠프 참가자들에게 어떻게 방사성 찌꺼기가 러시아로 수입되는지, 핵 물질을 운송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대중에게 알려진 핵발전 계획 정보가 얼마나 부족한지 등에 대해 알려주고, 특히 시민사회단체가 그 계획을 중단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교육을 실시했다.
최근 그녀는 아들이 급진적 정치집회의 한 사건에 연루되며 그녀의 환경운동마저 연관시키려는 음해세력 때문에 곤경에 처해 있다. 그녀는 지금 자신과 아들의 결백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중이다.  


파블로 파하르도 멘도사, 루이스 얀자


중앙·남아메리카 / 에콰도르
원유와 채굴


“이 싸움에서 나는 오늘 깨끗한 환경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내일 인류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래를 위해 맞서는 것, 이것이 내가 하려는 것이다.”
-파블로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권리와 정의를 위해 계속해서 싸울 것이다. -루이스”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환경재앙의 하나를 겪고 난 후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루이스와 파블로는 세계적 거대석유기업을 상대로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유례없는 법정싸움을 이끌고 있다. 1964년부터 1990년까지 텍사코사는 40만5천 배럴의 원유와 4억7600만 배럴의 폐수를 에콰도르 아마존 유역에 직접 버렸다. 이 지역 주민들이 환경오염으로 인해 건강상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역주민들은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큰 규모일지 모르는 환경소송을 걸고 완전한 환경정화를 요구하고 있다. 루이스는 <아마존방어전선(Amazon Defense Front)>을 공동창립했고 2001년 셰브론이 인수한 텍사코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에서 북에콰도르 아마존 유역의 주민 3만 명을 조직했다. 이 소송을 이끄는 대표 변호사 파블로 역시 피해를 입은 지역사회 주민 중 한 사람으로 원고를 대변하고 있다.
1970~1980년대에 텍사코는 에콰도르에서 많은 석유기반시설을 건설했다. 당시 굴착과정에서 생긴 폐수와 침전물들은 수로에 버려지거나 1천 개가 넘는 구덩이에 방치했다. 1992년에 텍사코는 전문가들과 원주민들이 ‘기념비적 환경재앙’이라 부르는 엄청난 피해를 남긴 채 에콰도르를 떠나버렸다.
오늘날까지 3만 명의 지역민들은 오염된 물을 마시고 있다. 많은 쓰레기 구덩이가 계속해서 강과 하천,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는 상태다. 어떤 지역에서는 모든 수자원이 오염돼 강에 물고기가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다. 원고 측은 독성물질 장기간 노출로 심각한 건강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오염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피부병, 호흡기질환, 생식기장애, 암 발병률 등이 급격하게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에콰도르의 다른 지역에 비해 최고 7배나 높은 것이다. 그들은 또한 지역의 황폐화로 80만 헥타르가 넘는 삼림이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셰브론은 이 지역의 환경오염과 관련된 건강상 문제가 과거 텍사코가 유발한 오염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그들은 더 이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1993년 루이스는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변호사팀과 함께 텍사코에 대해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뉴욕에서의 첫 번째 소송은 기각됐고 항소심은 에콰도르에서 진행되고 있다. 2003년 5월 파블로의 법률팀이 이끄는 3만 명의 원고인들이 셰브론에게 완전한 정화를 하는 데 필요한 돈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며 에콰도르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2007년 3월 판사는 명령을 통해 손해배상평가를 지시했다. 독립된 전문가들이 평가를 수행했고 2008년 4월 발표된 보고서를 보면 그 금액이 83억 ~160억 달러로 결정됐다. 에콰도르 정유산업에 대한 루이스와 파블로의 노력은 이미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사건이 환경과 인간에 장기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널리 알렸고 이는 에콰도르 정부가 좀 더 강력한 환경보호법을 제정하도록 이끌어냈다. 그들이 해낸 일은 심각한 위험을 동반한 것이기도 했다. 루이스와 파블로의 가족과 많은 친구들은 살해위협과 협박에 시달렸다. 실제 파블로는 형제 중 한 명이 살해되는 위협을 겪기도 했다.



이그나스 숍스


유럽 / 벨기에
국토보전


“적어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해주기를 바라는 것을 하자. 만약 인구가 과밀하고 번영한 지역에서 생물다양성과 자연보호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왜 낙후된 지역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가? 이것은 우리 손에 달린 문제다. 소중한 우리들의 세상에 신호를 보내자!”


벨기에 북동쪽에 위치한 림부르크 지방에는 광대한 소나무숲이 있다. 또한 꽃이 만발하는 초원이 있고 희귀한 동물들도 많이 살고 있다. 1901년 석탄이 이 지역에서 발견된 이래 거의 한 세기 동안 림부르크에서는 석탄산업이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1990년 들어 일곱 개의 탄광이 문을 닫았고 4만 여명의 사람들은 실업자로 전락했다. 일자리는 매우 필요한 상황이었으며 몇몇 기업은 인근 지역인 호게 켐펨에 공장을 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공지(空地)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며 보존과 개발 사이의 갈등도 생겨났다.
산업화의 압력에 대응해 가장 큰 석탄회사와 벨기에에서 가장 큰 자연보호단체인 <나투르푼트>는 1990년에 이라는 단체를 설립한다. 단체의 목적은 지역의 대지를 보전하고 계속해서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발전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1997년 이그나스와 그의 친구들은 과 함께 일하며 벨기에의 첫 국립공원을 조성해 림부르크의 경관을 영구보전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햇다. 그들은 장차 공지를 보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태관광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입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6년 동안 RLKM, 이그나스와 그의 친구들은 정부에 로비를 펼쳤고 국립공원 캠페인 기금을 마련했다. 이그나스의 리더십 아래 그 후 4년이 넘도록 정부, 유럽농촌기구, 지역발전기금, 도농발전기금, 유럽연합, 지역유지, 민간 부문 등으로부터 9천만 달러를 돈을 모을 수 있었다. 2004년도에 이그나스는 의 임원이 됐고 공원의 미래를 보존하는 마지막 발걸음을 선두지휘했다.
2006년 초, <유럽환경연합회>는 호게켐펨(Hoge Kempem)국립공원을 공식 개방했다.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원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 이내에 산다. 공원 개방 이래 지금까지 40만 명의 사람들이 방문했다. 국립공원 개방으로 5년 후 기대되는 경제적 수입은 매년 4800만 달러에 이른다. 이 공원으로 지역사회에 400개의 직업이 창출됐고, 자연은 보전됐으며, 경제적 수입까지 가져다주었다. 공원으로 가는 다섯 개의 입구가 만들어졌고, 자동차 주차장, 캠프 부지와 안내 부스가 생겼으며 산책길과 자전거길도 조성됐다. 하이킹과 자전거 장비를 빌려주거나 판매하는 가게뿐 아니라 기념품 가게와 카페테리아도 들어섰다. 현재 국립공원 무료입장 정책은 그대로 유지한 채 늘어난 수입으로 이후 3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부가적인 관광지도 만들 계획이다.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국립공원을 만들고 기금을 조성한 이그나스의 모델을 유럽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다른 회원국가들에게 본보기로 삼을 계획이다.
그의 모델은 자연을 이용하고 관리하는 데 있어 성공적인 공공-민간 부문의 파트너십이 어떻게 지역발전의 자산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이그나스는 의 임원으로서 국립공원의 관리와 그에 관련된 개발, 또 벨기에의 다른 보전프로젝트들을 계속해서 감독할 것이다.



로사 힐다 라모스


도서지역 / 푸에르토리코
대지보전


“습지는 신의 창조물 중 가장 정교한 것 중 하나다. 풍요롭고 안전한 삶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인간이 생각해낸 어떤 것도 범람하는 강물을 고요하게 하는 습지의 힘을 대신할 수 없다. 쿠차릴라스 습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잃고 싶지 않은 축복이다.”


오염물질을 발생시키는 공장은 산후앙 지역의 저소득층의 주거지역 카타뇨를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쿠차릴라스 습지와 맹그로브숲은 홍수를 방지하고 주민들에게 공지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수중생물과 철새들에게도 중요한 서식지다. 로사는 카타뇨의 높은 호흡기질환 발병률 때문에 오염유발 산업을 중지시키는 활동을 벌여왔다. 이후 미국 환경보호청(EPA)을 설득해 오염유발 벌금 수백만 달러를 받아내 쿠차릴라스 습지보호를 위해 사용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1990년대, 쿠차릴라스 습지에 인접한 인구 3만5천 명의 지방도시 카타뇨는 푸에르토리코연방(미국 자치령-편집주)에서 호흡기질환과 암 발병률이 최고 높은 곳이었다. 푸에르토리코전력당국(PREPA)이 운영하는 석유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공기오염이 근본원인이었다.  
어머니가 1990년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로사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호흡기질환과 암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로사와 다른 지역사회 지도자들은 1991년 <오염에 반대하는 지역사회연합(CUCCo)>을 설립했고 그해 로사와 는 EPA의 행동을 촉구하며 그들의 불만을 직접 보건부와 <주환경질위원회>에 전달했다. 로사와 의 끈질긴 요청에 EPA는 공청회를 열었고 그 결과 전력당국이 깨끗한 공기와 수질을 위한 연방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렇게 해서 전력당국은 1만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3년까지 발전소의 유독물질 배출량은 줄어들지 않았다. 로사와 는 마침내 전력당국을 연방정부에 고소했다. 결국 전력당국은 카타뇨 주민들의 호흡기질환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명됐고 700만 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이 사건은 푸에르토리코 시민들이 규제당국과 직접 협상을 통해 이 섬의 환경정의를 지켜낸 획기적인 첫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카타뇨와 경계에 있는 490헥타르의 쿠차릴라스 습지는 생태적으로 그리고 지역사회에도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는 보호구역이 아니었다. 로사와 는 EPA를 설득해 벌금 중 340만 달러를 습지 매입과 보호에 쓰도록 설득했다. 물론 이 기금으로 습지 전체를 살 수는 없었다. 2004년 후반 카타뇨에 있는 공장에서 수질 관련법을 위반한 바카르디(Bacardi) 기업은 습지 중 약 백만 달러에 상당하는 4헥타르의 땅을 양도했다. 2007년에는 이와 유사한 협정으로 월마트가 십만 달러를 내놓았다. 2007년까지 로사와 의 노력으로 사들인 습지는 120헥타르에 이르렀고 이 곳은 앞으로 영원히 보전할 수 있게 됐다.
로사의 노력으로 2004년 8월 마침내 푸에르토리코의 칼데론 지사는 행정명령으로 쿠차릴라스 습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지사의 지시에 따라 관련 위원회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공청회를 계획하고 있다. 이는 습지자연보호구역 지정을 위한 마지막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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