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7] 환경호르몬/ 내분비교란물질이란 무엇이며 왜 문제인가

환경호르몬, 교란되는 미래
내분비교란물질이란 무엇이며
왜 문제인가
김록호/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
지금부터 6백만년 지구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최종 소비자로서 군림했던 동물은
티라노사우러스 같은 육식공룡이었다. 수백만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세계의 웬만한
과학 박물관에는 화석과 유골을 전시해 놓을 수 있을만큼 수적으로 번창했던 그런
거대 육식공룡들이 어떻게 지구에서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만일 지나치게 큰
몸을 가진 공룡이 그 몸의 요구를 감당치 못해 자멸하고 말았다는 내인성 멸종설이
성립된다면 그 이론이 의미하는 바는 자못 의미심장하다. 인류가 오늘날 이룩한 산
업화를 공룡의 거대한 몸집으로 비유해 본다면 산업화를 무한히 추구한 결과로 인
류라는 동물종이 멸망하게 되리라는 가설도 성립하지 않을까?
인류가 더 늦기 전에 산업화가 야기한 환경문제를 직시하고 지속가능한 범위 안에
서의 제한된 개발을 유지하지 않을 경우, 인류는 제2의 공룡이 될 수 있다는 가설
은 핵전쟁에 의한 인류멸망론과 함께 20세기 말의 인류를 괴롭혀 왔다. 다행히 지
난 10년간 핵확산금지 및 환경파괴금지에 관한 국제협약이 속속 조인되고 실행되어
인류자멸론에 근거한 우려를 많이 감소시켰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라고나 할까?
수년 전부터 생물다양성 손실,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와 더불어 새로 등장한 환
경문제의 하나가 속칭 ‘환경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환경성 내분비 교란물질’
의 재앙에 관한 것이다. 컵라면 용기를 채운 더운물에서 환경 호르몬의 일종으로
의심받고 있는 스티렌이 검출되었다는 일본 신문의 보도를 국내 언론이 인용 보도
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도 환경성 내분비교란물질에 관한 대중의 관심이 커가고 있
다. 지난 6월 1일 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환경성 내분비교란물질에 관한 토론회에
의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내분비교란물질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게 되었
다.

내분비교란물질이란?
‘내분비교란물질(Endocrine disruptors)’이란 생명체의 정상적인 호르몬 기능에
영향을 주는 합성, 혹은 자연상태의 화학물질을 말한다. 미국 환경보호부(EPA)는
내분비교란물질을 ‘항상성(homeostasis)의 유지와 발달과정의 조절을 담당하는 체
내의 자연호르몬의 생산, 방출, 이동, 대사, 결합, 작용, 혹은 배설을 간섭하는 체외
물질’이라고 폭넓게 정의하였다.
이들은 크게 △약물성 내분비교란물질, △자연성 내분비교란물질, △환경성 내분비
교란물질(속칭 ‘환경 호르몬’) 등 세 집단으로 대별된다.
역사적으로 내분비교란물질 가운데 처음 알려진 것은 호르몬 약품이다.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DES(Diethylstilbesterol)이다. 이 물질은 강력한 합성여성호르
몬인데 임상실험에서 약효와 안전성이 채 확인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1948년부터
1972년까지 유산 방지의 목적으로 임산부에게 널리 투여되었다. 그러나 이 약을 복
용한 산모에게서 태어난 여아가 사춘기 나이가 되면 그 나이에 매우 희귀한 질암이
다수 발생하고 남아에게서도 성기 기형이 다수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내분비교란물질로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을 식물에스트로젠(Phytoestrogens)이라
고 하는데 콩, 사과, 버찌, 딸기, 밀, 강낭콩 등에 함유되어 있다. 이 물질들은 호르
몬으로서의 역가는 매우 미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콩으로 만든 두유 속
에 함유된 식물에스트로젠의 농도는 갓난아이들의 혈중 에스트로젠 농도보다 1-2
만배 높으므로 두유를 먹고 자라는 갓난아이들에게 생물학적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는 우려가 최근 미국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식물에스트로젠이 함유된 식품을 많이
섭취하면 유방암이 예방된다는 보고도 있다.
또 다른 내분비교란물질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합성화학물질이다. ‘내분비교란물
질’이면서 동시에 ‘환경오염물질’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환경성 내분비교란물
질(Environmental endocrine disruptors, EDD)’이라고 지칭한다. 경우에 따라서
‘환경호르몬’, ‘내분비 장애물질’, ‘내분비 저해물질’, ‘호르몬교란물질’이
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오늘날 환경문제를 말하면서 내분비교란물질이라고 하
면 거의 예외없이 환경성 내분비교란물질을 지칭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이옥신,
피시비, 디디티, 기타 농약 등 합성화학물질들은 화학적 구조가 생명체의 호르몬과
비슷하여 생명체에 흡수될 경우 정상적인 호르몬의 기능을 혼란시키는데 그 결과
성기의 기형, 생식기능의 저하, 행동의 변화, 암의 발생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의
혹을 받게 된 것이다.
환경성 내분비교란물질에 생명체가 노출되는 근본적인 원천은 폐기물 소각장, 화학
공장, 그리고 음식물의 잔류 농약 등이다. 산업시설에 의해 배출된 화학물질이 먼저
대기, 수질, 토양 등의 환경을 오염시키고 다음으로 오염물질이 물고기, 축산물 등
생물체에 축적된 다음 최종적으로 사람이 소비하는 음식물을 통하여 인체 내로 들
어오는 것이다. 또한 음식을 포장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플라스틱으로부터 내분비교
란물질에 노출되기도 한다.

내분비 교란물질이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
내분비교란물질은 생명체의 내분비계의 정상적 기능을 방해한다. 내분계는 생명체
내부 기관의 상호교신에서 화학적 전달자(Chemical messenger)로 작용한다. 내분비
계의 주된 목적은 성장과 발달 등의 신체기능을 통제, 조절하는 것이다. 이 목적은
극소량으로도 상당한 생물학적 효력을 촉발시키는 강력한 생물학적 활성 물질인 호
르몬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현재까지 인체에는 1백여 종류의 호르몬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호르몬은 뇌, 갑상선, 난소, 고환, 그리고 다른 내분비 샘에서 방출되
어 혈류를 타고 목표 세포와 기관에 가서 다양한 기능을 활성화시키고 조절한다.
내분비계는 뇌하수체, 송과선 등의 고위 통제기관과 갑상선, 부갑상선, 부신, 난소,
고환 등의 하위 기관이 일련의 신호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호르몬 분자는 혈류를
따라 돌면서 세포들의 수용제(receptors)와 결합하여 세포에서 매우 특수한 반응을
촉발함으로써 발달, 성장, 생식, 행동, 기타 세포반응과 신체기능을 유도한다. 호르
몬이 수용체에 결합하여 세포반응이 일어나는 관계는 열쇠가 열쇠 구멍에 들어가
자물쇠가 열리는 관계와 유사하다.
야생동물에 관한 연구는 내분비교란물질이 동물의 생식과 발달에 심각한 장해를 일
으킨다는 사실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었다. 알려진 내분비교란물질에 고농도로 노출
되었을 때 동물 생태계에 나타난 현상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동성짝짓기를 하고 알을 포기하는 청어갈매기, 둥우리로 귀소하지 않고 새끼를
버리는 독수리, 수달의 급격한 감소, 암컷처럼 행동하는 수탉, 밍크새끼의 높은 사
망률 , 사산되는 양, 지중해에서 죽은 천마리의 얼룩 돌고래,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
으로 죽었지만 PCB와 DDT의 조직 내 농도가 높았던 항구 물개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한국해양연구소의 이수형 박사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남해안
일부 지역이 플라스틱 첨가제, 산업용 촉매, 살충제, 살균제, 목재보존재 등으로 널
리 쓰이는 TBT(tributyl tin)에 의하여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으며 그 결과 굴의 생
식기능에 교란이 일어나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였다는 보고가 나왔다. 그러나 우
리나라 생태계에 환경성 내분비교란물질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지 그
로 인한 생명체의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등에 관한 연구는 아직 나와 있지 않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증거는 환경오염 사고나 약물 재해로 인한 직접적 증거
와 정자수 감소, 호르몬관련성 암의 증가, 성기 기형의 증가 등 간접적 증거가 제시
되어 있다. 어려서 자랄 때 미국 오대호의 물고기를 많이 먹은 산모들에게서 태어
난 아이들 가운데 출생시 뇌의 크기가 작고 운동신경장애 등의 계속되는 발달장애
를 경험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네덜란드의 환경이 오염된 지역의 산모에게
서 태어난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행동과 학습의 장애가 많고 면역기능이 저하되어
있다. 캐나다 북극지방의 이누이드 족 엄마에게 태어난 아이들은 면역기능에 장애
가 더 많아 중이염을 많이 앓는다.
영국의학잡지(Brithsh Medical Journal)의 1992년 논문에 의하면 1940년에는 밀리리
터당 1억1천3백만 마리이던 남성의 정자수가 1990년에는 6천6백만마리로 45% 줄었
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사정된 정액량도 25% 적어져서 유효 정자수는 50%나 감
소했다. 3년 후 뉴잉글랜드 의학잡지(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실린
논문에서도 파리의 정자은행에 보관된 30세 프랑스 남성의 정액을 분석한 결과
1973년 밀리리터당 8천9백만마리이던 정자수가 1992년에는 6천만 마리로 감소하였
고 정자의 수뿐만 아니라 정자의 운동성도 감소한 것이 확인되었다. 연구자들은 내
분비교란물질의 하나인 환경 에스트로젠이 그 원인일 수 있다고 암시하였다.
1962년에서 1981년 사이에 영국의 정류고환(남성 성기기형의 일종) 환자가 두배로
늘어났다. 미국 국립 암연구소는 1973년에서 1991년 사이에 전립선암이 1백26% 증
가했다고 발표했다.
50년 전 미국 여성이 평생동안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20명당 한명 꼴이었으나 오늘
날에는 8명에 한명 꼴이다. 환경 에스트로젠 가운데 하나인 DDT와 PCB에 노출된
여성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1992년과 1993년에 미국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의 월프(Wolff) 박사에 의하여 보고되었다. 이처럼 현대 인류의 질병
추세에 관한 연구에서 달리 설명되지 않은 현상들, 즉 정자수의 감소추세, 유방암,
전립선암, 고환암의 증가 추세, 불임과 기형아의 증가, 주의력 결핍 및 학습 장애
어린이의 증가 등은 현대의학의 수수께끼들이다. 이 현상들이 과연 환경오염물질의
내분비교란 기전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환경호르몬은 없다는 주장은 억지
내분비교란물질과 관련된 가설에 관해서 반박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1994년과
1996년에
제작년월: